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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살피는 인간형, 지금은 ‘포스트남성휴먼’ 시대

등록 2021-08-26 09:13수정 2021-08-26 10:42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6. 조한혜정
조한혜정 교수는 “정말 다 멸종할 것이냐, 다음 세대로 갈 것이냐.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고, 그러면서 긴 인류 진화의 흐름 속에서 지그시 현실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2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조한혜정 교수. 정미숙 사진작가
조한혜정 교수는 “정말 다 멸종할 것이냐, 다음 세대로 갈 것이냐.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고, 그러면서 긴 인류 진화의 흐름 속에서 지그시 현실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2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조한혜정 교수. 정미숙 사진작가

조한혜정ㅣ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문화인류학자이다. 1948년 한국 출생.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주리대학교(컬럼비아)에서 인류학 석사,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대 흐름을 읽고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온 학자로서 제도와 생활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해석적 시대 탐구를 해왔다. 1980년대에는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어갔으며, 1990년대에는 ‘하자센터’를 설립해 입시교육에 묶인 청소년들이 벌이는 ‘반란’을 따라가면서 대안교육의 장을 여는 데 참여했다. 200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적 돌풍에 휘말린 아이들과 청년들 걱정에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대청마루’(범사회적 대화기구)의 대표를 맡아 관민 협력의 장을 열어갔다. 최근에는 공멸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서울과 제주도, 동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새로운 학습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3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다시, 마을이다> <자공공-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 등을 썼고, 공저로 <탈분단 시대를 열며-남과 북 문화 공존을 위한 모색> <왜 지금, 청소년?>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류와 아시아의 대중문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경계에서 말한다>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 <교실이 돌아왔다-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기> <노오력의 배신>이 있다. 최근작으로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라고 질문하며 오늘을 직시하도록 이끄는 <선망국의 시간>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의 문명’ 속에서 행동해왔을 수 있다. 세력을 이룬 생각의 방식이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 했는지도….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는 수천년 문명을 지배해온 사냥꾼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한다. 힘 있는 인간 순으로 더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 여겼기에 망가진 지구이고, 이제 멸종의 시간을 직시하며 함께 살 길로 나서자고 제안한다. 긴 인류의 진화 시간 속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함께 아이 키우고 서로를 보살피던 그 시간을 다시 구현하자고 요청한다. 지난 6월2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선생의 시골집에서 나눈 이야기이다.

안희경(이하 안) 2, 30대는 분노하고 중년은 억울하고 노년은 비참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성장 시대 속 비애일까요?

조한혜정(이하 조한) 참사의 시대였어도 전에는 성장하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었어요. 이제 내 몫으로 올 분배가 없겠다 느끼니까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요즘 제 강의 화두가 ‘망가진 세상에서 책임을 지고 산다는 것’, ‘멸종의 시간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에요.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만든 문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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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지금이 멸종의 시간인가요?

조한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50년 남았다’고 했었나요? 1972년에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모두가 멸종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저도 <선망국의 시간>이란 책을 냈었고요. 제 딸이 그러더군요. 엄마는 다 살았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데 제발 아이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요. 사실, 아이들은 몸으로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망가지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그래선지 다른 생명에게서 위로를 받더라고요. 열살인 제 손자도 오름에 다녀오다가 개가 줄에 묶여 헉헉대는 것을 보고 울며 들어왔어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그 감수성을 아이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인간은 예외적인 존재라서 다른 모든 생물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세대와는 다르죠.

제가 2012년에 윤리학자 피터 싱어를 만났을 때 문명이 망할 것 같냐고 물었어요. 선생은 인간 문명이 망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지만 그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대재앙으로 죽어갈 수많은 생명이 가슴 아프다고 답했습니다. 2014년부터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제러미 리프킨에게 우리 문명의 수명을 물어보았고요. 주도권을 가진 인간들에게 변화하자고 제안하려 한 질문이었고, 다음 세대를 위해 했지만, 정작 어린 친구들을 제외시켰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한 창창한 아이들 앞에서 ‘계속 망한다’고 말하면 정말 폭력이죠. 그래서 ‘기쁨의 실천’이라든가 다른 표현으로 시대를 이야기하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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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교수의 최신작 <선망국의 시간> 표지.

번영을 누려봤기에 나오는 부자의 한숨 소리 같은 걸까요?

조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익숙한 세대라 적응이 안 돼요.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니까 우울합니다. 이제 우리는 파상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폐허를 직시할 힘이 없는 거죠.

파상력은 무엇이죠?

조한 망가지고 깨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힘이에요. 사회학자 김홍중씨가 만든 단어입니다. 망가지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나름의 생기를 만들어내는 힘이랄까요. 멋진 신세계를 꿈꾸며 개성과 창의성을 노래했던 세대로는 히피들이 마지막일 텐데요, 지금은 진보를 향한 열망과 희망이 깨져가는 시간이죠. 시대가 주는 절망을 견디면서 생기를 북돋울 수 있는 ‘기쁨의 실천’을 찾아내야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조한 분명한 것은, 정치와 법, 가족과 문명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특히 국가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해요. 뭔가 할수록 더 상황이 나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만질수록 위험해지고 벤처들은 국가가 자격증 제도로 관리하려 들면서 고사하고 있어요. 쓰레기 분리수거(분리배출)를 하라고 하기 전에 분리수거가 안 되는 포장을 못 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죠. 국가가 그 일을 안 하고 시민들한테 분리수거만 하라고 하니 시간 낭비하면서 죄의식에 시달리게 하는 거예요. 1990년대에는 정부가 ‘산업화엔 늦었지만 정보화에 앞서자’ 하면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가서 그 일을 했죠. 지금 그들은 시장에 있든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을 찾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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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력’을 갖고 새 시스템을

그래도 밑그림이나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조직력과 실천력은 국가에 있는 거 아닌가요?

조한 조직력만 있어서 더 위험하죠. 파상력을 갖고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근대 국가 체제를 놓지 못하고 있어요. 정권 교체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정부의 업무도 민간 위탁이란 명목으로 입찰 선정하고 사기업이 담당하는 차원입니다.

조한 국가가 관리 체제로 책임 소재를 모면하면서 운영하죠. 국가가 강력하던 시간이 끝나고 세계화 경제 속에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이 벌리고, 값싼 물건이 쏟아지면서 무한정 소비가 가능해졌죠. 이 상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났고요. ‘시민사회’는 고립될 수밖에 없어요. 포스트모던,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휴먼의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할 시점입니다.

하나씩 설명해주실까요?

조한 포스트모던은 근대의 핵심인 완벽한 인간관, 그리고 물질 성장으로 진보를 보는 역사관을 해체하려는 경향이에요. ‘대서사도 없고 절대 진리도 없다. 모방할 진리가 없으니, 우리는 패스티시라는 혼성 모방을 할 뿐인 시대를 살아간다.’ 이를 인정하자는 사상이죠. 그리고 소서사를 쓰기 시작하며 분열적인 자아를 봅니다.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근대 자본주의가 망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예요.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은 서양을 기준으로 생각하던 상태를 벗어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서양 텍스트를 가지고 문명을 배웠고 서양을 따라가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죠.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학자들이 여러 개의 중심을 말하면서 자신의 지역을 강조했어요. 저도 1992년에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란 책에서 그 이야기를 했죠. 어릴 때 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현대무용가 호세 리몬의 공연을 보기도 했고 신촌 대학가를 오가며 근대적인 도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동네가 왜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던지요.

선진 문화가 없는 미국 시골이죠.

조한 우리가 항상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가 보니까 다른 거예요. 사이드나 저나 코즈모폴리턴(세계인)으로 성장했기에 격차를 느낀 것입니다. 박사 받고 오니, 사람들이 제게 ‘미국 물을 먹으셨네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서울에 있을 때와 같은데 말이죠. 이런 경험 속에서 서양 중심으로 사유하지 말고 구체적인 우리 현실을 보자고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고민을 나누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어 자생적인 이론을 내고, 구체적인 현장을 관찰하고 실험해야 하죠. 그 속에서 문화와 체계를 바꿔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거대한 틀을 상정하고 동양의 패권을 이야기하는 기성 체제를 보면 절망감이 몰려옵니다. 그렇다면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면 되나?’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포스트휴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사고에서 지금의 성장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결국 지구를 망쳐버렸죠. 이 구조를 확실하게 변화시키는 방향이 포스트휴먼이에요. 도나 해러웨이는 이를 ‘망가진 행성에서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라고 표현합니다.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저는 마음에 들어요.

조한혜정 교수(오른쪽)는 망가진 지구에서 멸종의 시간을 직시하며 함께 살 길로 나서자고 제안한다. 긴 인류의 진화 시간 속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함께 아이 키우고 서로를 보살피던 그 시간을 다시 구현하자고 요청한다. 지난 6월2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한혜정 교수가 안희경 작가(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H6a정미숙 사진작가
조한혜정 교수(오른쪽)는 망가진 지구에서 멸종의 시간을 직시하며 함께 살 길로 나서자고 제안한다. 긴 인류의 진화 시간 속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함께 아이 키우고 서로를 보살피던 그 시간을 다시 구현하자고 요청한다. 지난 6월2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한혜정 교수가 안희경 작가(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H6a정미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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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는 제대로 숨쉬고 있어?

저지른 자로서의 책임인가요?

조한 그보다 책임을 지닌 인간으로 산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봅니다. 지금은 모두 권리를 가진 인간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싸우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권리를 가진 인간이자 보살핌을 하는 인간이에요. 모두가 책임을 갖죠. 그리고 저는 보살핌으로 인간다운 책임을 한다는 차원에서 ‘포스트휴먼’을 ‘포스트남성휴먼’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인간 문명 전개를 보면 보살피는 역할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위계 중심으로 달려온 남성 중심, 사냥꾼 중심의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스트남성휴먼’은 이를 바꾸자는 거예요.

포스트남성휴먼, 탈남성인간이라는 말에서 우리 문명 속에서 공적 능력을 갖춘 남성만이 사회적 인간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되새겨봅니다.

조한 신분제가 생기기 전에 여성과 남성이 아이를 돌보고 소통하고 상생하는 영역이 죽지 않았던 시점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움직여온 세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기본소득을 주든 복지를 늘리든 해법이 없어요. 초기 수렵 채취 사회에서는 공동 돌봄이 있었다고 해요. 부부 중심으로 사냥에 나가는 것이 더 좋으면 다른 사람들이 공동 육아를 하는 제도요. 돌봄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기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가물어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든가 외부에서 쳐들어올 때 방어해야 하니까 남자들이 주로 집을 지었어요. 그 개별 가족을 넘어선 관리 영역이 공적 영역인데 지금은 그 공적 영역이 과하게 비대해지면서 가족은 부부 중심 핵가족만 남은 상태입니다. 마지막 제도가 가장 배타적인 가장 작은 가족 제도인 거죠. 그러면서 시장에는 가장 유리하고요.

구매하는 소비 단위로뿐 아니라 그 이전 노동력 사용에서부터 매우 유리하죠.

조한 누구든 잘하는 사람한테 돈을 주겠다는 임금 체제가 생기면서 여자들도 다 나왔죠. 그래서 여자도 사냥꾼적인 존재가 됐어요. 우리는 모두 돌봄을 받고 자랐습니다. 무력하게 태어나서 사랑받기 위해 애교를 부리면서 3년 내지 7년 동안 길러졌고, 인간으로 자라났습니다.

돌봄에 대해 국가에 요구하는 부분이 커졌습니다. 여성계에서 특히 더 했죠.

조한 사냥꾼으로 사유하는 방식에서 나올 수 있는 요구예요. 지금 자발적 멸종주의자들이 생기고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결정합니다. 한편에서는 ‘국가가 책임져라’라고 요구하고요.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은 그 요구를 너무 싫어해요. ‘인간은 자발적 존재인데 자기가 낳고 왜 국가에 떠넘기냐’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나중에 세금을 낼 존재다’라는 논쟁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아이의 안녕을 총체적으로 생각할 때 지금은 애를 안 낳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죠. 멸종의 시간이면 멸종의 시간을 직시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해법을 찾는 것입니다. 계속 국가가 잘 간다고 상정하고 가족이 건재하다고 상정했을 때 찾는 해법과는 달라집니다.

내 안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하는 건가요? 기존에 말하는 각자도생과는 결이 다른가요?

조한 다르죠. 저도 열심히 글을 썼잖아요. 이렇게 하면 세상이 좋아질 거고 그럼 우리 아이들도 행복해질 거다 하면서요. 하지만 아이와 세심하게 기쁨을 나누는 순간은 많지 않았어요. 계속 붕 떠서 살아온 것 같아요. 발전주의 신화, 국가 신화에 빠져서요. ‘지금 너는 제대로 숨쉬고 있어? 네 아이와 잘 지내고자 무얼 어떻게 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묻는 게 필요합니다. 자기 상태를 직시하려는 청년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 흐름에 주목해야 합니다. 국가가 돈을 갖고 있기에 무시할 수는 없지만 능력이 있다고 믿기보다 우리 삶의 안녕을 궁리하고 모색해서 그 길에서 국가까지 움직이도록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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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봄 쪽 논의들은 사냥꾼적

국가의 시작, 시장의 시작도 유권자인 나, 소비자인 나라고 생각합니다.

조한 그렇기에는 시장이 우리를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요. 물건도 싸니까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고, 이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니까 힘이 있다’는 차원은 약해졌다고 봐요. 그냥 인간다움에서 멀어진 신자유주의 생물체이자 어떤 면에선 기계 비슷하게 된 나의 존재가 무엇이냐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자기결정권을 가진 개체라는 것이 모든 운동의 핵심인데, 그 개체가 사실은 상호의존적인 관계예요. 관계가 끊어진 개인은 고립되고 고꾸라질 뿐입니다. 그 존재를 어떻게 상호 돌볼 수 있는 존재로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죠. 개인의 집합화가 광화문에 나가는 그런 행렬을 넘어서서 다시 아이를 낳고 같이 돌보고 약한 사람을 보살피도록요. 지금 돌봄 쪽 논의들은 사냥꾼적이라고 봅니다. 돌봄은 나도 죽을 것 같은데 아픈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돌봄으로써 내가 낫는 거예요. 남성적인 사냥꾼 원리에서는 내가 상대보다 세야 하고, ‘너는 지금 내 명령에 복종해야 돼’ 하는 지배가 핵심이죠. 그런 인식 속에서는 돌봄도 ‘너 약해? 그럼 내가 돌봐줄게’ 이런 방향으로 갑니다. 아직 다수의 여자들은 ‘어휴 가슴 아프겠다’ 공감하며 일부러라도 위로할 거리를 찾잖아요. 실제로 삶은 공감과 위로가 핵심입니다.

사냥꾼이라는 말에는 동감이 많이 될 것 같은데 사냥꾼 남성이라고 하면 남성과 여성을 보살핌의 범주로 이야기한다 해도 여성이 더 고등하냐는 반감이 나올 수 있는데요.

조한 남성성, 여성성은 여자가 아기를 낳는 것과 관련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원리잖아요. 여자아이들은 계속 엄마 옆에 있으면서 여자로 자랍니다. 남자들은 우리나라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여섯살까지는 엄마랑 안채에서 돌봄을 받고 잘 살다가 일곱살이 되면 할아버지가 있는 사랑채로 가죠. 분리 불안을 느끼며 할아버지를 통해 남성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그때 성년식이 주로 일어나요. 소년은 안 떨어지려 하는데 외삼촌들이 가면을 쓰고 여섯살, 일곱살 되는 애를 데려갑니다. 연극적이죠.

보통 아메리칸 인디언들 경우가 열살 전후에 혼자 야생에서 며칠 있다 오는 의식을 치릅니다.

조한 여자들은 계속 관계를 맺어갔고 남자들은 공적 영역을 만들면서 점점 배타적이 되어왔어요. 사회는 우두머리의 명령을 따르고 전쟁을 치르는 위계 사회로 발전해왔습니다. 문명 전체를 보지 않으면 지금 새로운 방식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문명이라고 얘기했던 그 문명이 정말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건가? 4대 문명의 발상지가 그렇게 우리가 외워야 했던 걸까?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해야 할 때예요. 3천년, 혹은 5천년 사냥꾼의 문명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서요. 페미니즘에서도 초기 7, 80년대에는 남녀가 같이 아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보살핌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했어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권리 운동으로 개별적인 행복을 추구했죠. ‘우리 남편은 부엌에서 같이 요리해’ 이런 가족 위주의 아주 작은 체제에서 여자들이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러면서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포섭됐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효율인데, 가족이 부부 중심으로 되면서 돈벌이와 소비에 최적화되었다는 것인가요?

조한 가족이 신자유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단위가 된 거죠. 가족 자체가 엥겔스가 말한 사유재산을 지키는 단위로 굳어졌습니다. 사유재산을 불리고 상속하면 인생이 충족된다는 착각을 합니다. 남자라고 해서 다 사냥꾼이 아니에요. 남자가 돈벌이를 하고 여자가 가정주부로 있을 때나 사냥꾼 권력을 누렸죠. 지금 모두가 돈만 생각하고 물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코로나 방역에 성공하면서 더욱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커졌는데요.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고 생각하는지요?

조한 이미 선진국이었죠. 이제야 후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났고요. 오히려 내셔널리즘, 우월주의로 가고 있어요. 청년들이 일본과 싸우는 것도 사냥꾼 방식입니다. 경쟁과 적대와 혐오의 질서로 가는 거죠. 문명의 흐름에 사유가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은 진화해서 인공지능(AI)을 만드는 데까지 갔는데 인간관계에서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한국 여성운동에서도 임금이나 공적 영역 속 권리만 얘기해왔어요.

대선 시국인데요. 토론할 수 있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조한 투표로 길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권리를 더 가지면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마을을 얘기하는 것도 스스럼없이 자주 만나면서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안정된 삶의 장에서 친구가 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이 커갈 때 모욕감이 가득한 정치를 넘어 서로를 돌보는 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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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유토피아’에서 희망을 보다

그러면 뭘 염두에 두고 모색해야 할까요?

조한 대전환의 하나는 물적 조건의 혁명입니다. 공유는 굉장히 혁명적이죠. 피케티가 일시적 소유를 얘기했는데 전 그 개념이 좋아요. 청년들한테 그냥 10년 살라고 빈집도 내주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인류사회를 재구성하는 차원으로 모계사회 원리와 부계사회 원리를 통합하는 논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계사회는 부계 혈통을 잇기 위해 여성을 소유하고 위계를 지키려니까 배타적입니다. 혈통을 강조하는 순혈주의가 생겼죠. 모계사회의 분배 양식은 공유적이에요. 이 맥락에서 보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논쟁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어요. 사회복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적 못지않게 돌봄 파탄으로 사회가 망가지고 있으니 시급하게 이뤄야 해요. 특정 시기에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돌봄 능력을 갖도록 훈련받는 사회복무제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제도 역시 생산과 재생산, 상호 돌봄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하고 시행해야 하고요. 결국은 내 존재를 전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핵심인데요, 제가 요새 작은 것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기쁨의 실천을 하자고 합니다. 나무 심으러 같이 가서 밥 해 먹으며 풍성해지는 모습을 사회적 모성, 사회적 영성이란 단어로 연결시키고 있어요. 그동안 이를 무시하고 합리적 인간으로 살아왔던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편협했나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뉴스에서 노원구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마스크 만들고 이웃과 나누는 모습을 봤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남자고 여자고 직장인이고 함께했는데요, 그 동네에 전에도 뭔가 어울리는 일이 있었으니까 스스럼없이 모이지 않았나 싶었어요. 관계가 갖는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조한 그리고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 모인 거죠. 그걸 재난 유토피아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 재난 유토피아에서도 희망을 봅니다. 재난이 닥치자 자율적으로 함께 살 길을 마련하는데 전에 없던 평화와 평등이 그 연대 속에서 펼쳐집니다. 그 지점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이죠.

코로나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조한 잘못 가면 백신 전쟁이 될 수 있어요. 정말 다 멸종할 것이냐, 다음 세대로 갈 것이냐.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고, 그러면서 긴 인류 진화의 흐름 속에서 지그시 현실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새벽이 오는 시간입니다. 재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단계예요.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서로 연결되는 안전망을 이루는 것이 관건이죠. 보살핌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혐오만 살아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돌봄의 힘을 길러냅시다.

다음 회는 마지막 회로 영국 슈마허대학 창립자인 사티시 쿠마르와 우리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문명의 미래를 묻는 사람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이후 인류의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노엄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에세이 <나의 질문>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정미숙 사진작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정미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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