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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등록 2021-08-19 04:59수정 2021-08-19 16:27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5.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는 현상에 있다고 꼬집는다. 스테퍼니 아네스티스(Stephanie Anestis)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는 현상에 있다고 꼬집는다. 스테퍼니 아네스티스(Stephanie Anestis)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이자 예일대 사법연구소 소장이다. 1969 런던 출생.

대니얼 마코비츠는 예일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사법, 도덕 정치 철학, 행동경제학에 기초한 철학 기반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대니얼 마코비츠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인적 자본에 불평등이 생길 발생하는 독특한 문제를 포함해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 법조계와 학계에서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그는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자기 자신을 비롯해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불평등 문제의 원인은 능력대로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 자체이며, 이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마코비츠는 20 동안 연구한 ‘능력주의’를 중심으로 세계화 자본주의 불평등이 세습 구조로 안착하는 방식을 파헤치는 <엘리트 세습>(The Meritocracy Trap) 을 2019년에 출간하였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유수의 언론이 주목했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고 있다. 외의 저서로는 2008년에 프린스턴대학교 출판사에서 펴낸 <현대 법률 윤리: 민주주의 시대의 적대적 옹호>(A Modern Legal Ethics: Adversary Advocacy in Democratic Age), 2012 언론재단에서 출간한 <계약법 법적 방법>(Contract Law and Legal Methods) 이 있고 하버드대학교 출판사에서 <스노볼 불평등: 능력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Snowball Inequality: Meritocrac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가 나올 예정이다.
경쟁을 강요하는 질서는 멈출 줄 모른다. 경쟁을 돌파한 이들은 그 안전한 지위를 세습하고자 성실히 노력한다. 이 질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 체질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안팎을 이뤄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는 현상에 있다고 꼬집는다. 능력대로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경쟁과 노력의 틀이 어떻게 강력한 덫으로 사회를 발목 잡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어로 <엘리트 세습>이라 출간된 <능력주의 덫>을 쓴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와 지난 5월27일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안희경(이하 안) 도널드 트럼프 등장 이후 엘리트에 대한 원망이 세계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일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3년째 이어지는 노란 조끼 저항도 그 한 흐름이고 한국에서도 점차 주요한 사회 불만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먼저 이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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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엘리트를 원망하는 이유

대니얼 마코비츠(이하 마코비츠) 저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중산층들이 고군분투한 지난 20년 동안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고 주장하면서 일련의 결정들을 내려왔습니다. 그 첫번째가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은 재앙이 됐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습니다. 이번에는 군대나 정치 엘리트들이 아니라 금융 엘리트들이 주축이 됐습니다. 그들의 금융 공학은 그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고 경제는 거의 폭파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끔찍하게 만드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 후 적어도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 엘리트들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정치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며 유로는 안정될 것이고 유럽연합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승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현실화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일들 속에서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말해왔고, 단지 현실이 그들이 틀렸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정책은 사회 전체가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만 유리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요.

첫째는 엘리트가 만든 엘리트에 대한 분노로군요.

마코비츠 그리고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트들은 스스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우리 중 한명이 되지 못한 것은 당신 잘못이다’라고 말해왔어요. 이는 깊은 분노를 유발합니다. 왜냐하면 아예 그 어떤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열외로 밀어낸 것이니까요. 당신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특권을 누리는 것보다 더 나쁩니다. 실제로 이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기에 더 악의적입니다.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한 시각으로 분별하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엘리트라면, 당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세요.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보다 사정이 좋지 못한 이주민 또는 유색인종의 잘못도 아닙니다.” 스테퍼니 아네스티스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한 시각으로 분별하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엘리트라면, 당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세요.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보다 사정이 좋지 못한 이주민 또는 유색인종의 잘못도 아닙니다.” 스테퍼니 아네스티스

제가 엘리트라는 말을 접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는데요, 교복 브랜드로 그 뜻을 알았습니다. 자연스레 공부 잘하는 사람, 공부 많이 한 사람을 떠올렸고요. 많은 이들이 엘리트 하면 똑똑하고 이끌어주는 사람으로 여기며 존중할 마음을 내는데요, 돈이 거의 모든 가치를 잠식한 이 시대에 누가 진정한 엘리트일까요?

마코비츠 이제 엘리트는 특정 대학에서 특정 종류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차지합니다. 미국에는 15개 정도가 있죠. 영국에는 3개 내지 5개, 프랑스에는 두 대학 정도 있고, 한국의 경우는 서울대학교입니다. 전세계를 가로질러 두어개 대학들이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최고의 은행들, 최고의 다국적 기업, 최고의 국제 언론 기관,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거대 정부 기관들, 비정부기구(NGO)들. 국가 공무원에서부터 대기업, 유엔, 유럽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소수의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수입과 지위와 권력에서 불균형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 문제인가요? 역사적으로 정부나 기관에 등용된 엘리트들, 현대사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들이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마코비츠 두가지 이유로 문제입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가계 소득을 보면 하위 50%보다 상위 1%에 속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기회의 평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남보다 앞서 나가려면 먼저 당신의 부모가 저 앞에 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성공할 기회를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또 다른 이유는 엘리트들이 이런 직업을 차지할 때 일어나는 결과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기술과 그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단련해온 방식이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도록 엘리트 진입 경로를 정교하게 재설계했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생각해봅시다. 요즘 미국에서는 사라진 방식이지만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어지는 기업 운영 방식인데요, 평범한 생산직 노동자도 평생 고용이 보장되고 회사 관리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매끄러운 계층 구조를 갖췄고 모두가 회사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비교적 급여도 높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존엄을 느끼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했죠. 오늘날은 이런 회사들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엘리트들뿐입니다. 미국 경영 컨설턴트들이 ‘회사’라는 개념을 새롭게 심어주고 기업을 재정비하려고 개발한 방식입니다. 그들은 모든 중산층 일자리에서 통제력과 재량권을 빼앗아 소수의 경영진이 회사를 도맡아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당신이 엘리트라면 두가지를 생각해보세요. 첫째, 엘리트가 되기까지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이 곧 당신이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 실제로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삶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일을 잘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민자들의 잘못도 여성과 페미니즘의 잘못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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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과 하급 노동자, 오직 두 부류

한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엠비에이(MBA)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통용됐습니다. 미국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석사 받은 사람들이 고액 연봉으로 채용됐고, 경영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마치 기업을 살리는 묘약처럼 받들어졌어요. 돌이켜보면 회사 경영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인식을 부속품 조립처럼 사고하게 한 전환점 같습니다.

마코비츠 만약에 당신이 지금 미국 아마존에서 일하고 있다면 팔찌나 벨트를 차고 있을 것입니다. 물류 창고로 들어서면, 어디로 걷고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1시간 안에 몇 박스를 채우는지 보고됩니다. 거의 인간 로봇으로 변환된 거죠. 내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재량권이 없습니다. 승진할 자리가 없기에 위로 올라갈 방법도 없습니다. 직장에는 당신 같은 사람들과 경영진, 두 부류만 있죠. 경영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이나 그에 걸맞은 곳에서 학위를 받아오는 길뿐입니다. 엘리트들이 경제를 재설계했고, 사회적 격차가 엄청난 오늘의 시스템을 양산한 것이죠. 덕분에 미국에서 상위 1% 부자들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60년대에 비해 2.5배 많아졌습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는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중산층이 장밋빛 꿈을 꿀 수 있던 시기입니다. 당신이 말한 기업 문화가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엘리트의 역할과 이들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정치적으로는 어떤 파장을 불러올 수 있나요?

마코비츠 극단적일 만큼 해롭습니다.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두가지 양태를 유발했습니다. 하나는 기관들에 대한 불신, 전문 교육에 대한 불신입니다. 만약에 전문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사회를 위해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기들만을 돌본다면 당신은 그 교육에 대해 매우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여부와 같은 것이죠. 백신이 안전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이런 전문가들을 불신할 때, 결과는 백신에 대한 망설임으로 이어집니다. 공공보건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감염을 막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두번째, 불신과 분노를 외부인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엘리트 대신에 이민자나 유색인종을 탓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포퓰리즘의 두가지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제도·전문성·법치에 대한 불신, 그리고 원주민우선주의·인종주의·민족주의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스템이 바로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의 현 정부가 4년 전 출범할 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청년 세대는 무엇이 바뀌었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엘리트의 부패와 특권도 싫지만,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공정함이 필요할까요?

마코비츠 엘리트가 중산층을 무시할 때, 중산층은 엘리트가 제시하는 공정에 대한 논리들, 그러니까 하위 계층에 대한 사회적 고려에 대해 불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왜 맨날 약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나도 많이 어렵다.” 만약에 당신이 미국에 사는 백인 중산층이라면 서류미비 이민자인 유색인 노동자보다는 특권이 있습니다만 부자와 비교하면 그 어떤 특권도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산층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네, 우리는 한번에 두가지 정의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산층을 위한 정의와 취약한 이들을 위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둘 사이에 긴장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부분을 어떤 방향으로 잡아 나갈지 정확히 알기란 어렵지만, 첫번째 단계는 두가지 문제가 모두 현실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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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간호사를 예로 든다면…

당신은 세상이 1% 대 99%로 나누어졌다고 생각하나요? 여러 학자들은 그보다 20% 대 80%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경제 문화적 지위 세습, 사회이동성이 막힌 구조가 설명된다고요. 뒤집어 말하면 20%가 가진 기득권에 대한 조절이 있어야 불평등 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는 말이고요.

마코비츠 만약 사회에서 누가 기본적인 경제사정이 풍족한지 묻는다면, 1%는 너무 작은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보다 많은 가구들이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30%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경제권력을 정치권력으로 바꿔낼 수 있는 지위를 가졌는지 묻고자 한다면 1%는 너무 많은 사람일 수 있어요. 그것은 1%의 상위 10분의 1 중에 1%, 그리고 다시 상위 5분의 1일 수 있습니다(상위 0.0002%). 그래서 오늘날 이 세계에는 정치학자들이 과두정치라고 부르는 별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1 대 99냐, 20 대 80이냐, 이 두가지 범주는 모두 합리적이지만 어떤 답을 얻으려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난 5월27일 화상 인터뷰에 응한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
지난 5월27일 화상 인터뷰에 응한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

불평등 해결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가 교육입니다. 모든 자원을 자녀의 진학에 쏟아붓죠.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점점 더 많은 헬리콥터 부모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코비츠 작년에 하버드는 지원자의 3.4%를 받아들였어요. 30명 중 1명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하버드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될 것 같다 싶은 모든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로펌의 90% 이상이 상위 5~10위 로스쿨 졸업생입니다.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다면 바로 맨 앞에서 출발하겠죠. 가족이 모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스템이 이를 매우 필수적인 과정으로 만듭니다.

작년 9월에 한국 정부는 지역 학생들을 우대해서 선발하는 공공의대 설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의대생과 그들의 부모들은 매우 분노했어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지방 학생에게 특혜를 주냐고요. 그래서 모두가 묻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우리 사회가 보상하는 시스템이 갖는 연관관계를 검토해 봐야 하지 않나 하고요.

마코비츠 한국에서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란 엄청나게 어려웠죠. 응시자 중 1~2%만이 합격했습니다.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통과한 사람들은 당연히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려면 많은 행운이 필요합니다. 자원이 필요하죠. 먹을 것이 되었건 무엇이건 간에 필요한 것을 얻고자 시간을 보내기보다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능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생각해볼 것이 실은 가장 근원적인 부분인데요. 당신이 매우 힘들게 노력해서 잘 해냈다는 것 자체가 꼭 공동체에도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한국도 비슷하지만, 미국은 의사와 의료 보조인력이나 간호사와의 소득 차이, 사회적 지위 차이가 매우 큽니다. 물론 사회는 의사에게 깊이 의존하는 방식으로 의료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의사의 역할은 지금보다 줄이고 간호사, 영양사, 공공의료 인력의 역할을 키우도록 구성할 수 있어요. 저는 우리가 의료체계를 의사 중심에서 모든 의료 종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체계로 이동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건강관리 체계를 가지리라 생각해요. 공공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비용도 저렴해지고 불평등을 덜 만들죠. 물론,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기술을 수련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최고의 자리가 지금보다는 덜 중시되도록 사회의 가치 우대 중심을 이동한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나아지리라 봅니다.

중간 관리직업 또는 작은 식료품점을 열어서 꾸려가는 일은 아예 없거나 소멸하고 있어요. 대신 아마존의 임원이 되거나 시간제 노동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죠. 경제의 중간, 사회의 중간을 재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중산층 학교와 가난한 학교에 더 많은 돈을 쓰고, 부유한 학교 입학생을 극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중산층 노동자들을 훨씬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기술혁신도 필요합니다. 가령 ‘피어 프로덕션 소프트웨어’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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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왜 덫인가

언젠가 방송에서 본 여학생의 말이 떠오릅니다.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하루 20시간 가까이 공부만 했다고 해요. 그 학생이 말하길, 어느 정도만 해도 한달에 300만원을 벌 수 있는 노동환경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결국 교육문제는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코비츠 그 학생과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죠. “나는 돈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안전하고,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됩니다.” 문제는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많이 얻는 것뿐이라는 것이죠. 적당히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직업, 이런 직업이 전에는 중간 관리 직업이었고, 작은 식료품점을 열어서 꾸려가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중간에 있는 일은 지금 아예 없거나 존재하더라도 소멸되고 있어요. 대신에 우리는 아마존의 임원이 되거나 시간제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책이 해야 할 역할은 경제의 중간을 재건하고 사회의 중간을 재건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어려운 과업입니다.

‘능력주의 덫’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코비츠 현실이 두가지 이유에서 덫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들만 성공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엘리트 진입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기 때문에 덫이고요, 그럼으로써 실질적인 이로움, 강력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로 가는 데 거의 모든 사람들을 배제하기 때문에 덫입니다. 덫의 또 다른 의미는 엘리트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머물려면 경쟁 속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덫에 빠진 것이죠. 나머지는 배제하고 부자는 함정에 빠뜨리는 덫입니다. 아무도 이 덫에서 진실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탈출하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 덫, 함정입니다.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마코비츠 단순하게 엘리트 대학들에서 지금과 달리 가난한 가정에서 입학 후보자를 더 많이 찾겠다는 방법으로 교육이 평등하게 될 수 있다 여긴다면, 이는 헛된 희망입니다. 엘리트 학교들이 그대로 소수로 남아 있다면, 거기엔 기회를 제공할 자리가 제대로 없는 것입니다. 중산층 학교와 가난한 학교에 더 많은 돈을 쓰고, 부유한 학교의 입학생을 극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입니다. 그것이 첫번째 할 일이에요.

두번째는 직장에서 고도의 기술 직업보다 중산층을 위한 중간 숙련 직업을 늘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면 엘리트 노동자, 고도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들은 훨씬 더 생산적이 되고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중산층 노동자는 도입된 로봇으로 대체됩니다. 중산층 노동자들을 훨씬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기술혁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작업자들이 전문 관리자 없이도 조정할 수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니까 피어 프로덕션 소프트웨어(peer production softwar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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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 없어도 공장이 돌아갈 수 있게

피어 프로덕션이라 하면 위키피디아 같은 오픈 소스로 개인들의 협업을 통해 생산된 결과물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피어 프로덕션 소프트웨어는 생소합니다.

마코비츠 많은 경영진이 없어도 공장이 돌아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기술혁신으로 노동 조건을 더 평등하게 할 수 있고, 협업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부 정책은 한편으로 교육을 훨씬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며 다른 한편은 노동 현장을 훨씬 평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정책은 서로를 강화하고 우리를 함정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거예요.

지난해 한국에서 유일하게 번역·출판된 대니얼 마코비츠의 책 &lt;엘리트 세습&gt; 표지.
지난해 한국에서 유일하게 번역·출판된 대니얼 마코비츠의 책 <엘리트 세습> 표지.

우리가 스스로 어떤 기득권을 갖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남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기보다 타인에게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 안에 있는 능력주의 사고 체계를 검토해볼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데요. 그러나 스스로를 반추하고 성찰하기가 어렵습니다. 안내해주길 바랍니다.

마코비츠 만약에 당신이 엘리트라면 저는 당신의 인생에서 두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여깁니다. 첫째는 당신이 엘리트에 도달하기까지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이 곧 당신이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당신이 가져야 할 것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것도 사실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한가지이고요, 다른 하나는 실제로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삶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이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그 일들이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는데도 엘리트 무리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매달리는 건 아닌지요? 그러니까 그 일을 하도록 당신을 추동하는 요인이 그 일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인지 지위에 대한 불안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에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저는 당신이 이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중요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일을 잘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는 당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점도 중요합니다. 아시나요? 만약에 당신이 백인 중산층 노동자라면 당신의 일자리가 점점 더 나빠지는 이유와 당신의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잘못이 아닐뿐더러 또한 이민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잘못도 아니고 여성과 페미니즘의 잘못도 아닙니다. 이는 엘리트의 잘못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와 나머지 사람들 모두는 우리가 어떻게 능력주의와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명확한 시각으로 이에 대해 분별한다면 능력주의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작합시다.

다음 회에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와 함께 한국 사회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자 한다.

문명의 미래를 묻는 사람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이후 인류의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노엄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에세이 <나의 질문>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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