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이런 홀로: 나 혼자서도 잘 산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번엔 녹슬어 코팅이 다 벗겨진 화장실 문고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먼저 동생 부부의 최후 병기였던 전동 드릴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생각보다 비싸서 손이 떨리지만 ‘나 혼자서도 잘 산다’의 잇템이 아니겠나 스스로 타협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고장난 전등을 바꿔 끼우다 보니
전동드릴이야말로 필수품이구나
혼자도 문제없이 사는 법 배운다 몇 주 전 일이다. 화장실 문에서 ‘끼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사람이 한번 무언가를 인식하게 되면 그것만 신경 쓰이게 된다. 그 뒤로 화장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문은 ‘끼이익’ 비명을 질러댔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비명의 원인은 ‘경첩’이었다. 화장실 겸 욕실을 건식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샤워하거나 빨래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경첩에 물이 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경첩은 녹이 슬어 갔다. 살면서 경첩을 자세히 볼 일이 있을까. 그때 난생처음으로 경첩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깜짝 놀랐다. 붉은색 녹과 곰팡이의 합작품으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직접 고친다…고 했는데 사람은 생전 처음 일을 겪어볼 때 판단을 잘해야 한다. 어설픈 지식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기름칠을 하면 매끈매끈해져서 괜찮지 않을까 하는 몹쓸 생각을 했고 ‘구리스’로 알려진 윤활제를 떠올렸다. 성격이 매우 급한 나는 인터넷에서 윤활제를 구입했고 이틀 뒤에 도착해 곧바로 경첩에 윤활제를 분사했다. 결과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것이다. 더 망했다. 녹이 적당히(?) 있는 경첩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사망한 것 같은 경첩에 윤활제는 오히려 독이었다. 끈적한 윤활제와 녹이 합쳐져 경첩은 더욱더 ‘끼이익’ 소리 높여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경첩을 바꿔보기로 했다.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직접 등판한 이유는, 문화방송(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경수진이 공구를 이용해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걸 너무 인상 깊게 봐서였다. 나도 내 힘으로 우리 집(전세) 곳곳을 수리하고 싶었다. 다행히 화장실 문 맨 위쪽의 경첩은 최악의 상태가 아니어서 어느 브랜드의 경첩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곧바로 인터넷으로 경첩을 주문했고 하루 만에 도착해 즉각 경첩 교체 공사에 나섰다. 작업은 간단했다. 나사를 돌려 헌 경첩을 뜯어내고 새 경첩을 맞춰 끼우면 된다. 문이 쓰러지지 않게 위에서부터 차례로 하면 된다. 오케이. 방법을 숙지했다.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첩 1개당 6개의 나사가 붙어 있었다. 물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맨 위쪽의 경첩이더라도 녹이 좀 슬어 있었기 때문에 나사를 돌릴 때 힘이 필요했다. 조금 더 힘을 줬더니 돌아갔다. 그렇게 6개의 나사를 빼서 오래된 경첩을 뺐고 새 경첩을 구멍에 맞춰 끼운 뒤 하나씩 나사를 돌려 고정시켰다. 더 이상 나사가 돌아가지 않겠다 싶을 정도까지 돌렸다. 그렇게 3개의 경첩 중 하나를 끼웠다. 그 손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남들이 못 한 것을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너무나 컸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나는 두번째 경첩도 순조롭게 교체를 마쳤다. 남은 건 화장실 바닥과 가까운 맨 마지막 경첩이었다. 그런데 이건 보통 경첩이 아니었다. 녹이 슬다 못해 거의 썩어버린 경첩이었다. 나사를 돌려도 헛돌 뿐이었다. 전동 드릴이 없던 난 집에 굴러다니던 일반 드라이버를 이용해 나사를 돌렸는데, 1시간을 넘게 낑낑거려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나의 경첩 교체기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여전히 경첩은 ‘끼이익’ 소리를 냈다. 마지막 경첩을 고친 건 동생 부부였다. 나의 도전기를 동생에게 자랑삼아 말했는데, 동생은 마지막 경첩을 고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조만간 집에 놀러 와 고쳐주겠다고 했다. ‘너희들이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이냐. 나도 못 고치는데’라며 속으로 비웃었던 나는, 그들이 우리 집에 도착해 최고급 전동 드릴을 꺼내는 순간 반성했다. 동생 부부는 망치와 전동 드릴을 이용해 마지막 경첩을 교체해줬다. 망치를 쓴 건 경첩이 녹이 슬다 못해 문에 아예 붙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동생 부부는 나한테 눈빛으로 욕하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혼자 하지 말고 사람을 불러.” 혼자서도 잘해야 어른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알아서 했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가장 첫번째 일은 형광등, 지금은 엘이디(LED)등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쩔쩔매면서 전등이 나간 상태로 며칠을 버틴 적도 있었다. 그것도 어느 날 용기를 내어 한번 해보고 손맛을 느낀 뒤 지금은 자유자재로 한다. 처음 형광등을 갈았을 땐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다음은 샤워기 교체다. 샤워기 물이 ‘쏴쏴쏴’가 아닌 ‘쫄쫄쫄’이었을 때 아파트 수도관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관리실에 말했다가 우리 집만 문제인 것을 듣고, 그때 처음 샤워기도 교체되는 걸 알았다. 누군가는 내가 한심하다 볼 수 있겠지만 그땐 진짜 몰랐다. 이 또한 교체하고 물이 ‘쏴쏴쏴’로 나오던 그때 그 희열도 잊을 수 없다. 여름맞이 에어컨 청소도 마찬가지다. 곰팡내가 느껴지는 에어컨을 도대체 어떻게 청소한다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갔을 때 친절한 유튜버 선생님들이 계셨고, 그대로 따라 하고 상쾌한 바람이 나왔을 때 또 어른이 되는 카드를 적립했구나 감탄했다. 처음부터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계속 어른이 되어가는, 그리고 혼자서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새롭게 배워갈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형광등을 갈았을 때의 주저함이라든지 경첩의 무모함은 점점 옅어지면서 혼자서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번엔 녹슬어 코팅이 다 벗겨진 화장실 문고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이 또한 ‘똑같은 제품의 문고리를 사서 나사를 돌리면 혼자서 바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먼저 동생 부부의 최후 병기였던 전동 드릴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생각보다 비싸서 손이 떨리지만 ‘나 혼자서도 잘 산다’의 잇템이 아니겠나 스스로 타협 중이다. 달려라 도비
이런 홀로: 필자 ‘유주얼’에 이어 ‘달려라 도비’가 새 필자로 참여합니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의 희로애락을 풍성하게 들려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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