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품으로 되새기는 202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함.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이정아 기자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즐겨 착용한 연보라빛 원피스와 나비 스카프. 이정아 기자
연보라빛 원피스를 입은 김복동 할머니(가운데)가 2013년 5월 25일 오후 일본 오사카 동센터에서 열린 일본 순회 증언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왼쪽)와 증언하고 있다. 오사카/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를 정도로 불편했던 할머니의 눈을 보호해준 안경과 선글라스. 이정아 기자
2012년 10월 3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104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안경에 참석자들이 비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목욕용 바가지와 오이향 비누, 틀니와 소금, 수건은 깔끔했던 할머니의 먼 여행길에도 늘 동행했던 물건들이다. 이정아 기자
허리춤을 고정하는 옷핀과 십원짜리 동전들을 담은 손지갑. 동전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차멀미가 덜하다고 느낀 할머니는 수요시위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이것들을 꼭 쥐고 있었다. 이정아 기자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과거에 썼던 의료보험증, 수첩 등과 함께 오래된 가방에 보관했던 할머니의 증명사진. 이정아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 이정아 기자
아흔세번째이자 마지막 생신이었던 2018년 4월 26일 오전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자신의 방에서 축하하러 온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2019년 5월 4일 기록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김복동 할머니의 빈 방. 이순덕·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고 길원옥 할머니도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평화의 우리집은 2020년 10월 말 문을 닫았다. 이정아 기자
2021년 8월 13일자 <한겨레>9면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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