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부재의 무게, 현재의 책임…고 김복동 할머니를 되새기다

등록 2021-08-12 18:08수정 2021-08-13 00:32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품으로 되새기는 202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함.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이정아 기자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함.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이정아 기자

“본인이, 증거가 살아있는데 증거가 없다니 말이 됩니까?”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를 지지하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이 잇따랐던 2012년 7월, ‘국가가 소신을 가지고 국가의 의지와 소신을 가지고 여성을 납치해 인신매매했다는 사실은 없다는 게 일본의 많은 역사가들의 의견’이라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시 시장 집무실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당당히 꾸짖던 날에 김복동 할머니는 연보라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이듬해 일본 각 지역을 순회하는 증언대회에 나섰을 때에도, 서울의 수요시위에서도 할머니는 단정한 이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즐겨 착용한 연보라빛 원피스와 나비 스카프. 이정아 기자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즐겨 착용한 연보라빛 원피스와 나비 스카프. 이정아 기자

연보라빛 원피스를 입은 김복동 할머니(가운데)가 2013년 5월 25일 오후 일본 오사카 동센터에서 열린 일본 순회 증언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왼쪽)와 증언하고 있다. 오사카/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보라빛 원피스를 입은 김복동 할머니(가운데)가 2013년 5월 25일 오후 일본 오사카 동센터에서 열린 일본 순회 증언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왼쪽)와 증언하고 있다. 오사카/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주던 모자와 선글라스도 수요시위의 필수품이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라 쓴 노란 조끼를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명함은 그의 온 삶을 통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그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2019년 1월28일 김복동 할머니가 영면에 든 뒤로도 피해자들의 별세는 이어져, 이제 남은 생존자는 14명.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바로잡으려던 이들이 떠나고 난 뒤 빈자리는, 치열했던 그 삶의 무게를 더해 남은 이들에게 무거운 책임이 되었다. 올해 다시 맞이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먼저 떠난 이의 부재를 되새겨줄 유품들을 톺아보는 까닭이다.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를 정도로 불편했던 할머니의 눈을 보호해준 안경과 선글라스. 이정아 기자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를 정도로 불편했던 할머니의 눈을 보호해준 안경과 선글라스. 이정아 기자

2012년 10월 3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104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안경에 참석자들이 비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2012년 10월 3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104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안경에 참석자들이 비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목욕용 바가지와 오이향 비누, 틀니와 소금, 수건은 깔끔했던 할머니의 먼 여행길에도 늘 동행했던 물건들이다. 이정아 기자
목욕용 바가지와 오이향 비누, 틀니와 소금, 수건은 깔끔했던 할머니의 먼 여행길에도 늘 동행했던 물건들이다. 이정아 기자

허리춤을 고정하는 옷핀과 십원짜리 동전들을 담은 손지갑. 동전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차멀미가 덜하다고 느낀 할머니는 수요시위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이것들을 꼭 쥐고 있었다. 이정아 기자
허리춤을 고정하는 옷핀과 십원짜리 동전들을 담은 손지갑. 동전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차멀미가 덜하다고 느낀 할머니는 수요시위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이것들을 꼭 쥐고 있었다. 이정아 기자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과거에 썼던 의료보험증, 수첩 등과 함께 오래된 가방에 보관했던 할머니의 증명사진. 이정아 기자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과거에 썼던 의료보험증, 수첩 등과 함께 오래된 가방에 보관했던 할머니의 증명사진. 이정아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 이정아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 이정아 기자

아흔세번째이자 마지막 생신이었던 2018년 4월 26일 오전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자신의 방에서 축하하러 온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아흔세번째이자 마지막 생신이었던 2018년 4월 26일 오전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자신의 방에서 축하하러 온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2019년 5월 4일 기록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김복동 할머니의 빈 방. 이순덕·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고 길원옥 할머니도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평화의 우리집은 2020년 10월 말 문을 닫았다. 이정아 기자
2019년 5월 4일 기록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김복동 할머니의 빈 방. 이순덕·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고 길원옥 할머니도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평화의 우리집은 2020년 10월 말 문을 닫았다. 이정아 기자

사진·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21년 8월 13일자 <한겨레>9면 지면.
2021년 8월 13일자 <한겨레>9면 지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1.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2.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3.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4.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정! 말! 대다나다!!” 정영주·이승윤…윤 담화에 혀 내두른 연예인들 5.

“정! 말! 대다나다!!” 정영주·이승윤…윤 담화에 혀 내두른 연예인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