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돌잔칫상에는 실타래와 현찰, 마이크와 청진기, 판사봉 같은 게 올라간다던가. 아이돌 같은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걸 뜻하는 색종이도 추가된 모양이다.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선망받는 직업들만 딱딱 골라잡길 희망하는 어른들의 속셈이란. 하지만 어른들이야말로, 30년, 40년 후의 장래희망을 새로 가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노후 계획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자리에 둘 가능성들을.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안 늙을까 고민한다. 늙더라도 천천히 늙고 싶고, 늙은 걸 들키지 않고 싶어 하며 또 하루를 산다. 그런데 지난해 서점 진열대에서 책 한 권을 만난 뒤로, 내게는 새로운 궁리할 거리가 생겼다. 어떤 사람으로 늙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 이런 질문을 던져준 책은 무루 작가의 수필집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다 읽고서 선반 위에 책을 탁 올려두는 순간까지 머릿속에는 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 계속 꿈틀꿈틀 뻗어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지?
물론 나도 내 노년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때는 있다. 코로나가 안정되어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역 앞에 나온 많은 사람 중에서 아빠와 엄마를 단숨에 찾아낼 자신이 있다. 다만 내 머릿속의 부모님 얼굴은 여전히 중년의 모습인데, 이제 현실 모습은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조부모들의 생전에 가까워져가는 속도는 어째 갈수록 더 빨라지는 것 같아서 종종 속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편으론 이 순간의 부모님 얼굴을 눈으로 익히며, 내가 60대가 되면 저 두 사람을 합하고 2로 대충 나눈 얼굴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양을 지닌 노년의 내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노후 대비랍시고 작은 벌이를 헐어 더 작은 저축은 하면서도, 환갑을 넘긴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기분 좋은 주말엔 어디에 가고, 생일에는 무엇을 챙겨 먹을지. 지금은 어렵지만 노인이 되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반대로 지금 하는 일 중 노인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도.
그러나 사람들이 다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시간만을 생각하며 산다면 삶이 얼마나 멋없을까.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과거의 역사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절대로 살아보지 못할 미래를 위해 우유갑 씻고 전기를 아끼며 살지 않는가. 나이가 들어가도 계속 삶의 지도를 넓혀가며 성장하겠다는 무루의 책을 읽은 뒤, 나는 내게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에 작은 최선을 그려보는 일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두꺼운 유리벽 너머의 세계 같던 미래가 처음으로 내 손에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60대, 70대의 삶을 그려보려니 머릿속에 내가 아는 멋진 할머니들이 차례로 생각났다. 박완서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같은 문학가들이나 배우 윤여정, 유튜버 박막례. 단 것은 달다 하고 쓴 것은 쓰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청양초를 조금 넣고 톡톡하게 끓인 뭇국처럼 따끈하고 시원한 사람. 그렇게 꽤 여러 날을,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생각했다. 그 끝에 얻은 답은 이러하다. “설날엔 떡국을 좀 많이 끓이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그 모델은 예전에 살던 빌라의 주인댁 할머니다. 몇 해 전, 독립해서 맞는 첫 명절을 나 혼자 서울에서 보냈었다. 연휴 직전에 이삿짐을 정리하다 발을 다쳐서다. 그전에도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간 적은 있었지만, 이제 막 홀로살이를 시작했을 참이라 기분이 묘했다. 이대로 혼자인 채로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명절이나 기념일들도 혼자서 보내는 게 기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섣달그믐 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설날 이른 아침에 초인종이 울렸다. 놀라서 현관에 나가보았더니, 문 앞에 곱게 양복을 차려입으신 주인집 부부가 서 계셨다. 할아버지가 모시 보로 덮은 쟁반을 내밀며 말씀하셨다. 1층에 내려와서 같이 먹자고 하려다, 다친 발로 계단 오르내리기가 불편하지 싶어 아침상을 보아 올라오셨다고.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복 많이 받아라, 그릇은 그냥 문 앞에 내놓아라, 설거지하지 말고 그냥 놔둬라, 아프지 말고 어서 나아라, 복 많이 받아라. 두 분은 앞다투어 당부들을 쏟아내고는 계단을 내려가셨다. 그러다 할머니가 생각난 듯이 층계참에서 나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모자라면 전화해, 알았지? 설이니까 할머니가 떡국은 많이 끓여놨어.”
쟁반에 덮인 모시 보를 걷었을 때 목 아래서 뭔가 울컥 올라오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쟁반에는 떡국과 부침개, 불고기가 놓여 있었는데, 그릇마다 달걀지단 고명이 소담스레 올라가 있었다.
단 한 달이라도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밥상을 차리고, 반찬 하나 새로 만들기도 벅찬 날들을. 그럴 때 겨우 완성한 음식에 깨 하나를 톡톡 더 뿌리는 것은, 맛보다는 일종의 자축에 가깝다. 그러니 흰자 따로 노른자 따로 부쳐 곱게 채 썬 지단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정성이다. 접시마다 예쁘게 올려준 달걀 고명에서, 나는 혼자 명절을 쇠는 이웃의 기분을 북돋워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을 느꼈다. 깊숙한 대접 가득 담아주신 떡국도 그 마음도, 내겐 모자랄 일 없이 충분했다.
그날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나도 설에는 떡국도 조금 많이 끓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했다. 홀로 살든 둘이 살든 셋이 살든, 우리는 모두 이 작지만 분명한 세계에 함께 발을 걸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작은 세계 안의 작은 존재들을 보살피고 손을 내미는 어른다움을 내 나이와 함께 키워가고 싶다.
선망받는 삶 기원하는 마음 담아
아이의 돌잡이를 준비하듯
그녀처럼 멋진 할머니 되길 바라며
이번 생일 두번째 돌잡이 차려볼까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서 1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길 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었다. 나이 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우리는 정말 자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서 평소의 대화들을 돌이켜보니, 그건 ‘어디서’와 ‘어떻게’를 헷갈린 이야기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외의 전원주택, 병원이 가까운 시내 아파트, 친구와 나란히 사는 땅콩주택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서로 선뜻 말하지 않는다.
요즈음 돌잔칫상에는 실타래와 현찰, 마이크와 청진기, 판사봉 같은 게 올라간다던가. 아이돌 같은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걸 뜻하는 색종이도 추가된 모양이다.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선망받는 직업들만 딱딱 골라잡길 희망하는 어른들의 속셈이란. 하지만 어른들이야말로, 30년, 40년 후의 장래희망을 새로 가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노후 계획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자리에 둘 가능성들을.
첫돌 이야기가 나올 때면, 엄마는 형편이 어려울 때였지만 내 돌잔치는 제대로 치러줬노라 말한다. 그럼 왜 돌 사진이 한 장도 없느냐 물으면 어물쩍 둘러대며 넘어가고, 내가 돌잡이로 무얼 잡았는가조차 시시때때로 바뀌지만. 어떤 때는 ‘실타래 잡았지. 그래서 네가 건강하잖아’ 하고, 또 어떤 때는 ‘너 붓을 잡았지. 그래서 너는 공부를 실컷 했잖아’ 한다. 그런 기억인지 기원인지 모를 오래된 거짓말을 품고 나는 오늘도 하루만큼 더 늙은 나에게 가까워져간다. 다가오는 생일엔 내가 나를 위한 돌상을 차려볼까. 그 위엔 무엇을 올릴 수 있을까. 인생 두번째 돌잡이를 즐겁게 궁리한다.
유주얼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