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 테이블에 방송작가의 현실을 고발하고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큐시트를 펼쳐놓고 단어를 고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방송작가들의 비정상적인 노동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2020년 방송작가 2명을 해고한 <문화방송>(MBC)의 결정이 부당해고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지난 3월에 나왔다. 지금 지상파 3사는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의 근로자성 문제로 특별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송 3사는 근로감독 대상 명단과 연락처를 뒤늦게 제출하거나 일부만 제출해 근로감독을 지연시키고 있다.
수십 년을 일하고도 하루아침에 잘리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방송작가, 또 방송사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작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방송 3사가 이제라도 근로감독에 적극 협조하기 바라며, 일곱 번째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하종강 ㅣ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내가 만난 방송작가들…
방송 출연 요청을 받을 때 전화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방송작가다. 드물게 개인적 친분이 있는 피디(PD)가 사전에 직접 연락을 하는 때도 있지만, 그때에도 “자세한 내용은 작가님과 협의하세요”라는 말로 마무리하기 마련이다.
몇 시간 동안이나 녹화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모르되 30분 정도 단발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방송작가들만 만날 수 있을 뿐 조정실에 있는 제작 책임자는 얼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들은 “개편 때마다 피가 마른다”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철마다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개편 때 사라지는 작가들이 많다. 새롭게 시작하는 방송의 내용을 새로 구상하는 일 역시 새로 온 작가들의 몫이다.
몇 해 전, 방송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편성제작국 사무실에서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신설 프로그램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던 제작진 중 한 사람이 문득 나한테 큰소리로 물었다. “하 교수님, 혹시 BTS가 뭔지 아세요?” 내가 얼른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제작진들이 파안대소하면서 말한다. “거봐, 하 교수님도 ‘방탄소년단’ 잘 모르시잖아. 중년 남자들은 대부분 모른다고….” 단 몇 분짜리 코너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 제작진들은 그렇게 며칠 동안 머리를 짜내야 하고 많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들이 작가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으로부터 싹을 틔운다.
방송사를 대표하는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보려고 하는데 제작진부터 노동문제에 관해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한번 와서 강의해달라고 했다. 평소 자신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테이블 두 개를 중심으로 제작진들이 모여 앉았다. 앞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몇 사람이 띄엄띄엄 여유 있게 둘러앉아 있는 반면, 뒤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여러 사람이 다닥다닥 비좁게 붙어 앉아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말했다.
“앞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정규직이고,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군요.”
모두 웃었고 뒤쪽에 앉아 있던 사람 중 몇 명은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으고 소리가 들리지 않게 손동작만으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방송사의 정규직 제작진을 비난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고 애정을 가진 정규직 피디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아침 7시 생방송 뉴스에 몇 차례 출연했다. 6시까지 방송국에 가서 분장도 하고 대본도 맞춰 본다. 아침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작가들은 몇 시에 나올까? 새벽 4시에 나온다. 대기실 시간표에 표기된 내용이 사실인가 싶어 한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정말로 새벽 4시에 나옵니까?” 작가님이 예사롭다는 듯이 짧게 답한다. “네.” 그날 뒤로 나는 내가 출연했던 방송에 자막이 혹시 틀리게 나오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틀리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학교 연구실로 가끔 방송사에서 인터뷰하러 온다. 조금 규모가 큰 프로그램이면 제작진이 여러 명 오기도 한다. 6명의 제작진이 왔는데, 그 사람 중 정규직은 단 두 명뿐이었다. 한 사람에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정규직이세요?” 질문을 받은 사람이 나에게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계약직만 돼도 좋겠습니다.” 방송사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비정규직도 그 사람들에게는 부러운 존재였던 거다.
데일리 프로그램 밤샘근무 중인 방송작가. 방송작가 친구들 제공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비인간적인 이유는 그 노동자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못 가면서 1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못 가 뵈었어요. 휴가 신청했다가 내년에 계약 연장이 안 될까 봐요.” - 서비스직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에게는 휴가비도 50%만 지급됐어요. 아파서 조퇴를 신청하면 ‘집에 가서 영원히 쉬라’고 했습니다.” - 제조업체 파견 노동자
“휴일, 명절도 없이 20년 일하며 최저임금 겨우 받았습니다. 야근 끝나면 택시비 없어서 집에도 못 가고 신문지 깔고 회사에서 잘 때도 있었고, 회사 일 때문에 어머니 임종도 못 지켜 드렸습니다.” - 전산망 관리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을까? 계약 기간이 끝날 때 계속 일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계약이 반복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일 뿐만 아니라 기업경쟁력과 국가 경제에도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방송작가들이 정규직이 되면 제작 책임을 맡은 관리자가 불편해질 수 있다. 작가가 관리자의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쉬워진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다.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가고 생각이 다르면 항의도 할 수 있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동안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지고 그 기간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면 비정상적 상황이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자리 잡았을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인간적 삶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최소한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업과 사회 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 끼어 사망한 ‘구의역 김 군 사건’을 계기로 당시 서울지하철공사는 역사 수리 담당 노동자 418명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한 조치가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비정규직이 업무를 담당했던 2015년에는 2만196건이었던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가 3년 뒤인 2018년에는 3495건으로 5분의 4나 줄어들었다. 당연한 결과다. 노동조건이 열악해 더 좋은 직업을 찾을 때까지 잠시 머무는 직장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발생하지 않지만,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돼 ‘평생직장’이 되면 행복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스스로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공통으로 발생한다. 노동자들이 제안한 몇 가지 개선 방안을 회사가 받아들이자 이러한 개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방송작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방송작가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질을 밀도 있게 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기업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접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