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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규직’ 방송작가 된 뒤에야 비로소 여름휴가를 얻었다

등록 2021-06-27 14:09수정 2021-06-27 15:58

방송작가친구들 릴레이 기고 ③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일과 휴식 경계 뚜렷해지고, 일에 대한 보상도 정확해져
방송센터에서 진행모습 확인하는 모습. 방송작가 친구들 제공
방송센터에서 진행모습 확인하는 모습. 방송작가 친구들 제공

방송작가들의 비정상적인 노동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2020년 방송작가 2명을 해고한 <문화방송>(MBC)의 결정이 부당해고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지난 3월에 나왔다. 지금 지상파 3사는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의 근로자성 문제로 특별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송 3사는 근로감독 대상 명단과 연락처를 뒤늦게 제출하거나 일부만 제출해 근로감독을 지연시키고 있다.

수십 년을 일하고도 하루아침에 잘리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방송작가, 또 방송사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작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방송 3사가 이제라도 근로감독에 적극 협조하기 바라며, 세 번째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18년 만에 처음 얻은 여름휴가

송지연 ㅣ TBS 작가

나는 19년차 방송작가다. 특이할만한 점은 18년을 프리랜서로 살다가 지난해 2월 대한민국 최초의 정규직 방송작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최초라고?’ 그럼 지금 방송작가들은 방송국 소속이 아니란 얘기? 그렇다. 99.9%가 프리랜서인 방송작가의 고용 형태에 적잖이 놀라는 이들이 있을 테지만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18년을 프리랜서로 살았고 나머지 1년 4개월을 정규직 작가로 살아온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다.

프리랜서의 삶

방송작가는 늘 ‘객’식구다. 방송국에서 몇 년을 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0년을 일했어도 군말 없이 나가야 하는 것이 방송작가의 숙명이다.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피디(PD)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로 인해 방송작가는 나름의 고용 불안의 자구책을 강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두세 개의 일을 걸쳐서 하는 것이다. ‘메인 잡’(Job)이 있고 아르바이트 형식의 ‘서브 잡’(Job)이 있는 형식이다. 일이 한번 끊기면 다시 일을 잡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을 완전히 놓기란 사실상 어렵다.

삶은 빼곡히 일로 채워진다. 일과 일상의 경계는 무너진다. 밥을 먹으면서도 출연자의 전화를 받아야 하고, 잠을 자다가도 피디의 문자를 받아야 한다. 출근과 퇴근의 개념이 없으니 삶은 통째로 일에 저당 잡힌다.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휴식의 개념도 사라진다. 나는 18년 방송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다. 그나마 어렵게 가족여행을 가더라도 여행 내내 가족들의 지청구를 들어야 한다. “방송국 일을 너 혼자 다하니?”, “이럴 거면 여행은 뭐 하러 온 거야?” 방송작가 중에 가족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자체가 이미 우리의 삶이다. 오히려 휴식이 불편할 정도다. 그래도 10년차쯤 되면 여기서 또 다른 의미와 즐거움을 찾게 된다. ‘언제든 내쫓길 수 있는’ 비참함을 ‘언제든 나갈 수 있는’ 특권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계의 여러 가지 모순과 잘못된 관행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된다.

프리랜서 아닌 노동자라는 인식

방송작가유니온이 생기기 전까지는 나 역시도 그랬다. 우연히 선배의 권유로 유니온에 가입했다. 활발히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대부분 방송사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다. 10년을 일하고 전화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거나 일을 하고도 계약서를 쓰지 않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해고되기 전에 피디가 이미 다른 작가를 구하고 있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때면 자괴감과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서서히 체념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 제작에 있어 방송작가의 영향력은 상당하지만 방송작가의 입지와 고용환경은 그 역할에 비해서도, 공공재라는 방송의 무게감에 비해서도 형편없다. ‘언제든 잘릴 수도 있는’, ‘하지만 찍소리 한 번 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프로그래밍된 이 현실은 과연 타당한가? 방송작가의 고용환경은 어쩌다 이러한 형태가 되었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 방송작가 최초의 노동조합인 방송작가 유니온이다. 너무 늦게 탄생한 감이 있지만 이곳에서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 내야 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나 역시도.

작가 정규직의 삶

2020년 2월17일 나는 공개채용을 통해 <티비에스>(TBS) 정규직 작가가 되었다. 고 박원순 시장의 공약 중 하나였던 서울시 산하 사업소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의 일환이었다. 정규직화 대상에 방송작가를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회사 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나를 포함해 10명의 방송작가가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모든 작가들이 정규직의 삶을 꿈꾸지 않는다. 프리랜서의 삶에 만족하는 이도 분명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고용 형태와 업무환경이 노동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업무환경에 따라 고용 형태도 여러 가지의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정규직으로 1년4개월을 보내면서 나의 삶은 두 가지 정도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챙기는 삶이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뚜렷해졌고 일에 대한 보상이 정확해졌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 챙기는 삶을 살고 있다.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에 가입되고, 육아휴직과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다. 계약된 노동시간 이외의 노동에 대해 철저히 따져 보장받는다. 방송이 설사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돈을 못 받는 일은 사라졌다. 방송일이 공휴일이나 휴일이라면 1.5배의 추가수당이 나온다. 연차와 병가가 보장된다. 단 한 번도 가지 않던 여름휴가를 나는 올해 처음으로 신청했다.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나는 기획료를 못 받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노동환경과 처우에 대한 확실한 보장과 보상이 따른다는 점이다. 프리랜서의 장점인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많은 혜택이 있다.

두 번째 일과 생활의 경계가 생겼다. 출퇴근을 부담스러워하는 작가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9 to 6’의 삶이라니 자신도 없고 삶을 저당 잡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명확한 근무시간은 오히려 내 삶을 일과 분리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집에 오면 기본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꼭 일을 해야 한다면 회사에 초과근무를 신청하고 일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처음엔 그것이 번거로웠는데, 그건 내 노동의 권리를 찾는 너무 당연한 행위였다.

세 번째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프리랜서 시절에는 내 앞가림에 지쳐 동료들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사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이를 통해 큰 틀의 노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방송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상태를 벗어나, 방송환경의 구조를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다. 더불어 답답하게 느껴졌던 방송사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대한 서사도 목도 할 수 있었다.

이런 폭풍 같은 변화 속에서 내게 다가온 고민은 하나의 물음이었다. ‘방송작가로서 프리랜서와 정규직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본인이 지향하는 작업 스타일에 따라 규칙적인 업무 사이클을 준수하며 방송을 만드는 정규직이 되거나, 반대로 프리랜서로서 일과 삶의 일체화에 따라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선택권 말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현재 방송작가의 노동이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지점부터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애초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발생한 시점엔 지금처럼 전방위적인 역할이 아니라 직무가 대본 작성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획과 섭외, 취재, 구성과 원고를 넘어서 소재 입력, 주차입력 같은 조연출의 역할까지 업무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냉정히 말해 본인의 노동 실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노동권을 존중받는 환경을 위해 끊임없이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현업과 병행하며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방송작가유니온의 구성원들에게도 힘을 내자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JTBC 금토 드라마 ‘보좌관’ 포스터
JTBC 금토 드라마 ‘보좌관’ 포스터

“다른 듯 닮은 얼굴,

국회 보좌진과 프리랜서 방송작가들”

이수진 국회의원 ㅣ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고 9명의 보좌진과 함께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회의원 보좌진’이라는 직업을 잘 알지 못한다. 정말 유명한, 나중에 선거에 직접 출마하여 의원이 되는 몇몇 보좌진들을 빼고는 그들이 하는 일은 국회의원이란 이름 뒤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노동비례대표 이수진의 의정활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보좌진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방송의 이면에는 수많은 방송작가들이 있다. 정규직이든, 프리랜서든, 모든 방송은 그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몇몇 스타 작가들을 빼면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보좌진과 매한가지다. 하는 일과 결과물은 분명 다른데, 방송작가들을 보면 자꾸 나를 위해 뛰는 보좌진들이 생각난다.

<문화방송>(MBC) 보도국 해고 작가들의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얻어내기 위한 싸움은, 화려한 방송화면 뒤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이름과 권리를 찾아주는 싸움이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하에 그들이 진짜 ‘프리(free)’하게 일했냐고 하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들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방송사의 계약은 방송사에 의해 아주 자유롭게 종료되었다. 모든 업무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위해 이루어지지만 국회의원의 “나가”라는 말 한마디면 해고가 가능한, 보좌진과 닮은 얼굴을 한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울렸다.

21대 국회에 입성하여 첫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때 신청한 참고인 역시 방송작가였다. 코로나 때문에 방송 프로그램이 상당수 엎어지면서 기획 단계에서 일한 노동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유노동 무임금’에 시달린 방송작가들을 만난 것이다.

방송작가들이 방송 전 프로그램 기획 기간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감내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방송이 편성된 후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때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기획 기간 일을 계속하고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방송계의 오랜 관행인데, 이러한 관행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대책이 없었다. 공공부문 방송사들조차 기획료 지급 문제에 대해 명확한 ‘지급기준’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영업비밀’이라는 핑계 하에 밝히는 것도 꺼려했다.

재난은 늘 약자를 가장 먼저 공격한다. 코로나19가 방송계의 약자인,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생계에 직격타를 날렸던 나날이다. ‘프리한’ 노동 형태가 아닌, ‘비정규직에 가까운’ 처우로 제공한 노동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조차 지불받지 못했다. 그들을 보면서, 일하던 선거캠프의 후보자가 낙선하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수많은 보좌진들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국회의원 보좌진이든 프리랜서 방송작가든, 방송국에 고용되어 일하는 방송작가든, 전부 ‘노동자’다. 그 누구의 노동도 공짜 노동일 수 없고, 그 누구의 일터도 쉽사리 빼앗겨서는 안 되며, 그 누구의 노동이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계약을 한다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고, 준비하던 방송이 엎어지거나 일하던 선거캠프가 낙선한다고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는 자유로운 노동이 아니라,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이름이다. MBC 보도국 해고 작가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기획료 미지급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늬만 프리랜서’인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은 아직도 거의 모든 방송사에 있다. 국회 보좌진의 불안정한 노동환경 개선 역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노동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내가, 이 노동자들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이수진 국회의원은 단순한 사용자를 넘어, 그들의 삶에 노동 존중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내가 대변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방송사와 국회의 벽을 넘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수없는 고민이 이어지는 나날에 뚜렷한 답은 없다. 그러나 방송계 노동자들과 국회 노동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계속 내는 한, 나는 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 그들이 노동자로서 아주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들이 지치지 않도록, 아주 작은 변화라도 함께 이뤄나가고 싶다. 다른 듯 닮은 얼굴을 한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일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나갈 노동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제21대 국회의 일원이 된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가장 소망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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