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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남자애가… 여자애가…”

등록 2021-05-03 17:40수정 2021-05-04 02:35

연재ㅣ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몇년 전 일이다. 6학년 담임이었다. 한 여학생이 달려와 말했다.

“선생님 민지 화장실에서 울어요.” “무슨 일인데!” “남자애들이… 그거 아닌데… 그거라고… 놀려서요.”

미술 시간에 민지 체육복 바지에 붉은 물감이 묻었다. 남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생리혈이라고 수군거리며 놀린 것이다. 놀린 남학생들을 불러 혼내주고, 화장실에서 나온 민지를 달랬다.

“민지야~ 많이 속상했겠다.” “그런 거 아닌데… 이미 옆 반에도 소문 다 났을 거예요.”

민지는 몹시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물감이 아닌 정말 생리혈이었다 해도 그것이 놀릴 일이나 몹시 수치스러워할 일은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수치스러워할 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남자애가… 여자애가…’ 하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그리고 더불어 그런 성별에 부합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애가 그런 것쯤은 만질 수도 있고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뭔 개구리를 무서워하냐.”

“여자애가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지, 맨날 뛰어다니냐.”

“남자애가 좀 통이 커야지, 쩨쩨하게 그게 뭐냐.”

“여자애가 예쁘게 치마 입고 다녀야지, 무슨 남자애들처럼 체육복만 입고 다니냐.”

“여자애가 방이 이게 뭐냐, 이렇게 지저분해가지고!”

아이들의 행동이나 처신에 대해 조언을 해줄 때 남자라서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여자니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 표현 자체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끼는 기준이 된다.

남자라는, 여자라는 말을 빼고 상황 자체의 내용을 가지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안전하지 않아.” “무섭게 느껴질 수 있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도 좋은 일이야.”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게 좋겠어.”

수치심은 아이들의 기억에 무의식적 흔적을 남긴다. 사실 적절한 수준의 ‘부끄러움’은 자기 조절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수치스러움’은 삶의 질을 크게 낮춘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수치스러울 일을 어릴 때부터 구분지어 만들어주는 일은 한 인간 삶의 자존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언제든 수치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자주 안겨주는 상황이 될 뿐이다.

남자답게 굴어야 한다든가, 여자답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표현을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다우면’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그냥 ‘나답게’ 굴면 된다.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가르는 것은 초등 1학년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서만 존재하면 된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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