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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그래도 삶의 모험과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등록 2020-12-14 17:23수정 2020-12-15 02:35

연재ㅣ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세상이 온통 성폭력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는 뉴스가 너무나 끔찍해서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순간들. ‘그래, 이제 온라인은 절대 안돼.’ 마음을 먹고 나니 ‘학교는 또 어떻고?’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어른들을 조심해야겠다 싶었다가 또래 성폭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떠올랐다.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고, 안전한 공간과 안전한 관계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무엇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안전할까? 그게 좋을까?

공포에 짓눌려서는 위험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폭력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이 폭력인지 아닌지, 얼마나 위험한지를 판단하는 것에 훈련이 필요하다. 위험을 더 많이 알고, 위험을 살짝살짝 건드려보고, 만져보고, 물러나고, 위험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갈 때, 안전에 대한 감각이 풍요로워진다. 맨땅 위를 걷다가, 달리다가, 돌다리를 겅중겅중 뛰어 건너보고, 넘어져 무릎을 갈아보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안전에 대한 감각이다.

한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와, 크게 다치지 않을 공간과, 다치게 되어도 회복되었던 기억과, 반드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부상의 크기에 대해, 이 모든 것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안전에 대한 감각’이라 하는 것이다.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업고 지나가주어서는, 혹은 직접 부딪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생길 수가 없는 감각이다.

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집회가 지난 7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집회를 연 ‘엔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eNd)은 집회를 통해 제대로 된 수사와 판결을 요구했으며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사법부를 비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집회가 지난 7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집회를 연 ‘엔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eNd)은 집회를 통해 제대로 된 수사와 판결을 요구했으며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사법부를 비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올해 특히, 우리는 너무 많은 사건을 보았고 함께 겪었다. 엔(n)번방 사건이 드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믿을 수 없는 지하세계가 드러났고, 아동 성범죄자가 어떤 처벌을 받고 석방되는지를 보았다. 스쿨 미투 운동이 일어났지만 왜 학교는 조용한지, 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고, 그래서 어떻게 처리되었고 어떤 것이 바뀌었으며 어떤 것은 왜 바뀌지 않는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기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것을 함께 찾아보았고, 함께 분노했고 함께 행동했다.

분노하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로에게 강력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힘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알면 알수록 공포에 압도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공포에 압도된 우리가 놀이터를 없애고, 문을 걸어 잠그고, 꽁꽁 싸매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모든 것을 조심하기로 한다면 결국 누가, 무엇이, 어떤 문화가 활개를 치게 될까?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삶의 모험과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부터 해보자고,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마음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영원히 못 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의 가방 속에 무엇을 넣고, 누구와 손을 잡고 이 모험 여행을 떠나게 될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행진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안전하게 할 것이다.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 ‘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연재를 마칩니다. 문미정 강사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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