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최이선의 ‘부모 연습장’
Q.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형제를 키우고 있어요. 형은 공부도 곧잘 하고 모범적이고 말수도 적은 편이라 엄마인 저랑 트러블이 적은 편이에요. 반면 둘째는 요구사항이 많아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는 불평불만이 많아요. 형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잠시 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적응이 어려워 좀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새 학교에 적응해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A. 일단 첫째 아이는 부모님께 순응적인 면이 많이 있군요. 기질적으로 순할 수도 있지만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에서 순기능으로 사이클이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아이가 무언가를 해냈을 때 칭찬이나 관심을 받게 되고 아이도 그런 관심이 좋고 더더욱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도 더 생기고요. 큰애는 엄마와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순조로웠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둘째 아이는 막내이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더 받았을 수도 있지만 자라면서 형이 무언가를 잘해내고 칭찬받고 엄마의 사랑을 받는 모습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찾기도 합니다. 특히나 학령기에 외국에 가서 적응해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두려움을 많이 갖게 됩니다.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친구도 없고 학교 가는 것이 힘들고 두렵습니다.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도 많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겨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경험을 한 아이들은 심리적인 지지가 많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힘든 감정을 잘 처리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세심하게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둘째 아이를 만나 상담하는 과정에서 혼자 있는 그림들을 주로 선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외국에서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하고 감정 처리를 혼자 하던 마음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부적응의 스트레스를 혼자 처리하느라 힘든데, 자신이 보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 형이 얄밉기도 합니다. 형은 형 나름대로 힘들었겠지만 둘째 입장에서는 형이 자기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는 마음에 형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커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묵한 첫째에 비해 둘째가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표현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첫째에게서 보지 못했던 익숙하지 않은 반응이라 좀 지치고 힘들 수도 있는데요. 둘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첫째보다 사랑받지 못하거나 관심받지 못한다는 마음에 부모의 반응과 관심을 끌려고 더욱 요구하고 있을 거라고 보입니다. 물론 두 아이가 기질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이런 경우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 장면을 찍어서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게 반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좀 더 편하기 때문에 엄마가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하고요. 둘째는 너무 요구하니까 엄마가 다가가기보다는 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마음을 스스로 돌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둘째의 요구가 많고 아이와 엄마 사이에 이런 사이클이 돌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인지하고 앞으로의 반응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물론 몸에서 나오는 반응을 억지로 다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아이가 부모의 반응과 반영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의 노력은 내일의 힘듦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둘째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누군가가 와서 형을 칭찬하거나 이야기할 때 우리 둘째도 그렇다고 인정하거나 수용해줍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반응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좀 과해도 괜찮습니다. 아이가 가만히 있는 순간을 포착하면 “오늘 차분하고 집중 잘하네” “와, 자세 좋네” “진짜 잘 듣고 있네” 뭐 이런 작은 반응들입니다. 아이가 싫다고 빼도 안아주고 슬쩍 스킨십도 하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놀이도 적극적으로 함께 합니다. 물론 엄마도 재미있어야 하지요. 재미없어하는 모습은 아이들도 금방 알아차리거든요.
부모의 이런 진정 어린 노력은 아이를 변화시킵니다. 엄마는 정서적으로 적극적으로 반응해주고, 아빠는 퇴근 후 아들과 씨름 한판 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더 좋을 게 없겠죠. 이렇게 아이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면 큰아이와의 관계도 개선될 여지가 생겨납니다. 큰애와 둘째의 감정의 골은 부모를 향한 경쟁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둘째 아이가 좀 편해지면 형을 대하는 모습도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미운 감정이 형으로 향해 있지만 수용받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고 서서히 그 감정도 완화되어가는 거죠.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겪어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안전하고 편안해지면 외국에서 느꼈던 힘든 감정에 대해서도 털어놓게 됩니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아이가 미주알고주알 힘든 감정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서 소통해나간다면, 엄마의 고민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는 둘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최이선 ㅣ 닥터맘힐링연구소 소장·교육학(상담 및 교육심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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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입장에서는 둘째이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더 받았을 수도 있지만 자라면서 형이 무언가를 잘해내고 칭찬받고 엄마의 사랑을 받는 모습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찾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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