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최이선의 ‘부모 연습장’
차선을 바꾸기 전에는 미리 방향 지시등을 켜서 주변 차들에 나의 경로를 알린다. 이미 방향을 바꾸고 나서 알리거나 방향 지시등을 반대로 잘못 켠다면 주변 차들도 헛갈려서 주춤하거나 사고가 날 수 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알리는 것은 도로 주행에서 참 중요한 일이다.
이와 유사한 것이 인간관계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옆 사람의 신호에만 신경 써서 모든 이를 끼워 넣어주고 정작 자신은 앞으로 가지 못한다면 어떨까? 나의 선택으로 인하여 나는 물론이고 뒤차에까지 피해를 주게 된다.
내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호를 보내 끼워달라는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끼워주기를 바라거나 하염없이 기다린다면 내가 원하는 쪽으로 절대 갈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가더라도 노심초사 온 신경을 다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늘 기진맥진하게 된다.
성장할 때 아이들은 신호를 보낸다. 우회전, 좌회전 같은 명확한 신호는 아니더라도 울거나 떼를 쓰거나 착하게 반응하면서 부모에게 사랑받으려는 목적의 온갖 신호를 보낸다. 처음 신호가 명확했다면 점차 여러 색과 모양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점점 모양이 복잡해져서 그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렵게 변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힘듦을 부정적 모양으로 신호를 보내고, 어떤 아이는 순하고 착하고 손 갈 것 없어서 마치 신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착하니까 이런 일도 모두 할 거야. 네가 착하니까 해.” 뭐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다반사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착함을 늘 기대하고 더 이상 착하다는 생각조차 안 한다. 도리어 지금까지와 다르게 행동하면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는 반응을 한다. 신호를 보내자마자 갑자기 비난받는 상황이 된다. 이제 느껴지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너답지 않다고 하는 반응을 보면 어떤 모습이 나 자신인지 본인조차도 헛갈린다. 이제는 나의 의도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착한 아이 증후군’의 전형적인 예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 마음속에서는 화가 나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폭발하거나 기대와 다른 행동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다. 내면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눈치 보느라 주저하고 있었을 확률이 크다.
남에게 알리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그것이 도리어 문제를 일으킬까 갈등한다. 이런 모습은 대를 이어서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내가 알리지 못했던 신호는 자녀를 양육할 때도 나타나 안전감이 떨어진다. 자녀를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부모가 과잉으로 신호를 표현하여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 맞추는 관계 유형을 다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호를 적절하게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은 바로 내 안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를 알아차리다 보면 남의 신호를 읽게 되고 서로의 신호를 이해하게 된다. 이런 연습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가족은 늘 진행형이다. 신호를 보내고 관계를 재형성하며 신호 체계를 명확하게 바꾸는 연습을 해나간다면 좀 더 안전한 관계와 소통으로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이선 | 닥터맘힐링연구소 소장·교육학(상담 및 교육심리) 박사
※ ‘최이선의 부모연습장’ 연재를 마칩니다. 최이선 소장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성장할 때 아이들은 신호를 보낸다. 울거나 떼를 쓰거나 착하게 반응하면서 부모에게 사랑받으려는 목적의 온갖 신호를 보낸다. 처음 신호가 명확했다면 점점 모양이 복잡해져서 그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렵게 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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