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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상대에게 사과를 받았는데도 찜찜하고 화가 난다면…

등록 2020-08-17 17:38수정 2020-08-18 02:36

연재 | 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미안해”라는 말, 때로는 충분하고 때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거의 대부분 적절하지 않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언제나 문제다.

사과를 받고도 찜찜하거나 더 화가 날 때가 있다. 사과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과를 받는 일도 참 어렵다. 그럴 때는 우선 ‘사과’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말을 하고, 피해를 보상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을 약속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사과이다. 사과는 말뿐 아니라 태도와 행동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그 뜻이 전달된다. 그래서 사과하는 사람의 진지한 태도, 표정, 책임 있는 노력, 변화된 행동이 없다면, 사과하는 말은 오로지 사과하는 사람 그 자신을 위한 방패막이에 지나지 않는다.

때리고, 위협하고, 만지고, 모욕하고, 차별하는 말을 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거나 괴롭혔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명백한 침해나 폭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과를 받는 일은 매번 중요한 일이다. 거꾸로 내가 사과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어떤 사과여야 하는지를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실수로 밀쳤을 때, 상대도 원한다고 오해하고 손을 잡았을 때, 장난으로 건넨 농담이었지만 상대가 불쾌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까?

때리고, 위협하고, 만지고, 모욕하고, 차별하는 말을 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거나 괴롭혔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명백한 침해나 폭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과를 받는 일은 매번 중요한 일이다. 연극 <왕따탈출기>의 한 장면. 울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때리고, 위협하고, 만지고, 모욕하고, 차별하는 말을 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거나 괴롭혔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명백한 침해나 폭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과를 받는 일은 매번 중요한 일이다. 연극 <왕따탈출기>의 한 장면. 울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미안하다고 말해버리고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욕심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사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기. 공정했는지를 따져보기. 당연하게 여길 만한 일이었는지 돌이켜보기.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조금 늦더라도 충분히 생각을 해본 뒤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사과했다’고 할 수 있다.

미안하다는 말이면 충분한 일도 있다. 말이 없지만 미안해하는 태도와 달라진 행동으로 그 말을 대신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무엇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약속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사과하고 있는 것인지, ‘너에게만 약속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서’ 사과하고 있는 것인지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사과하는 쪽에서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그 의도에 대해 미루어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내게 사과를 했는데, 사과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모두 다 미안하다”고 하거나, “모두 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도무지 사과를 받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반성하는 태도, 실제로 바뀐 행동과 더불어 “바로 그 행동이 잘못이다. 그것이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사과가 ‘미안하다는 말로 포장된 무책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면, 다시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사과하는 말을 듣고, 변화된 행동을 보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상대방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된다면, 사과를 받은 것이 된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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