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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만히 있지 않아야 생기는 힘

등록 2020-05-04 18:21수정 2020-06-09 09:47

연재ㅣ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2018년 5월3일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 서울 용화여고는 졸업생들이 교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뒤 재학생들이 창문에 ‘Me Too/ With You/ We Can Do Anything’이란 글을 붙이며 함께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8년 5월3일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 서울 용화여고는 졸업생들이 교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뒤 재학생들이 창문에 ‘Me Too/ With You/ We Can Do Anything’이란 글을 붙이며 함께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친구가 어렵게 입을 뗀다. “나, 이런 일이 있었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도망쳐 나와서 처음으로 말하는 거야.” 친구는 아무 말도 못 한 자신을 탓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누구나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화살은 가해자를 향해야 마땅하다. 곧바로 급소를 걷어차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든, 도망치기 위해 비위를 맞추었든, 두 발이 얼어붙기라도 한 듯 꼼짝하지 못했든, 바로 그 순간 그것이 성폭력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든, 어떤 행동을 했든 우선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비난은 절대로 피해자가 받을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방어와 저항을 했는데도 오히려 사람들이 가해자를 감싸 숨겨주는 것을 보고 말았을 수도 있다. 친해서, 좋아해서, 장난으로 그랬지만 정말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말로 발뺌하는 가해자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가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함께 분노하고 바로잡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너무 작은 일로 여기거나 덮어버리려는 움직임을 보면 힘이 빠져버린다. 차별과 폭력. 겪고 보고 들은 일이 너무나 많다. 사건이 밖으로 드러났는데도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감싸는 일들을 겪다 보니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모르는 일인 척, 없었던 일인 척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질 수 있다.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해보는 것.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사실대로 일기에 써두는 것. 무엇을 느꼈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기록하는 것. 누구에게 말해도 좋을지 둘러보는 것. 도움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는 것. 친구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하는 것.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해보는 것.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 내 생각을 말하는 것. 밀치고 소리치는 것. 아무 말이나 큰 소리로 내질러보는 것. 기관과 단체에 상담전화를 걸어보는 것. 어떤 조건이라면 일단 도망가는 것이 최선인지를 가늠해보는 것. 경찰에 신고하는 것. 내 몸이 얼마큼 강하고 빠른지 확인해보는 것. 발걸음을 떼어 피해자 옆에 서는 것.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

너무 작아서 성에 차지 않고 제대로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에도 내가 아주 작은 것만 하게 될까?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하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게 보이고, 그것이 쌓이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된다.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이다. 가만히 있지 않아야 생기는 힘이다.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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