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연탄샘의 십대들 마음 읽기
“나도 ‘딸’이라는 게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라는 게 처음이라 아직 삐거덕삐거덕 맞지 않지만 잘 맞춰갈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엄마.”
사춘기 광풍이 한창이었던 중2 딸로부터 받은 카드다. 오랜만에 나는 울컥했고 내 아이의 마음이 자랑스러워 한동안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았다. 물론, 이 카드를 받은 뒤에도 딸아이의 사춘기 롤러코스터는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카드 속 아이의 진심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10대의 부모만큼 인생에서 어려운 역할은 없다고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청소년상담사로 현장에서 많은 아이를 만났음에도 나 역시 사춘기 딸아이의 엄마 역할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하고 내담자 사례로 간접 경험을 한들 실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춘기라 하더라도 처음 겪어보니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많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 분노를 표출했다가 금방 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지?’ 후회하곤 한다. 가족들에게 괜한 화를 낸 게 미안하지만 쑥스러워 그냥 넘어가고 만다. 그런 것도 모르고 가족들은 아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성격파탄자 취급을 한다.
어떤 부모들은 “그래도 아이들이 힘든 사춘기에 가공할 만한 학업 스트레스까지 겪으니 ‘화받이’나 해줘야지 어떡하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방적인 화받이 노릇으로 속병이 들 지경이다. 오히려 참았던 화를 같이 내뿜다가 서로 내상을 입기 십상이다.
사춘기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관건은 ‘건강한 분리’다.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지나친 간섭을 부르고 아이와 건강한 분리를 막는다. 상담실에서 부모님과 상담할 때 기본으로 하는 말이 있다. 믿고 기다려 주세요. 인정하고 수용해 주세요. 그리고 엄마·아빠의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보여주세요. 나 역시 딸과의 관계를 풀 때 이러한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부모-자녀 간 해결해야 할 특별한 이슈가 있지 않은 한, 이러한 기본이 사춘기 광풍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버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시기 부모나 양육자가 주의할 것이 있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어릴 적 부모나 양육자의 미성숙한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은 적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미성숙함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시행착오 과정에서 가벼운 상처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의도치 않게, 또는 우리 감정에 치우쳐 상처를 주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진솔함의 미덕은 상처를 더 이상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이정희 ㅣ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 연탄샘의 ‘십대들 마음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이정희 상담사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육아, 독서, 교육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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