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자는 결심이 서면 이것은 ‘폭력의 피해자 되지 않기’라는 이름이 붙은 강력한 프로젝트가 된다. 그리고 곧바로 이기고 지는 문제로, 지키고 지키지 못한 문제로,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추락하기 쉽다. 게티이미지뱅크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지구를 지키자는 외침을 들으면 마음이 꿀렁꿀렁, “그래!” 하고 당장에라도 삼총사를 결성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또 얼마나 묵직한 자기 다짐인가. 턱을 들게 하고 몸을 세우게 하고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정이 올라오게 하는, 지키려는 마음에는 그런 결연함이 있다. 지킨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이상하게 꼬여버릴 때가 있다.
“오빠가 지켜줄게” “밤늦게 들어올 거면 꼭 아빠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 같은 말들. 언뜻 든든한 마음이 들다가도,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지? 그렇게 하면 지켜지나? 그나저나 도대체 무엇을 지키겠다는 거지? 의문이 들곤 한다.
“지켜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따져보아야 한다. 그 뜻이 “함께하겠다”는 것인지, “내가 다 해결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어” 또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뜻인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행여나 “그러니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 마”라고 하면서 주변으로부터 나를 떼어내 혼자로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누구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무엇보다 고립시키려는 행동이 가장 위험하다.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인지, 그럴 능력이 있기는 한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배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배를 모는 법과 안전수칙과 우선순위를 모르는 사람이 선장이 되어 배를 몰고 간다. 그 선장은 많은 경우에 승객을 지키기 위해 배를 꽁꽁 묶어 정박시켜놓는 선택을 한다.
스스로 선장이 되어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거기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지키자는 결심이 서면 이것은 ‘폭력의 피해자 되지 않기’라는 이름이 붙은 강력한 프로젝트가 된다. 그리고 곧바로 이기고 지는 문제로, 지키고 지키지 못한 문제로,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추락하기 쉽다.
여기 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실패’한 일이 있다 치자. 이 실패는 얼마나 귀중한 경험인가. 신나게 춤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왜 나의 땀을 문제 삼았을까? 땀이 어째서 문제라는 걸까?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어떤 표정을 지어줄 수 있을까? 실패의 경험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보다 나는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개 ‘폭력의 피해자 되지 않기 프로젝트’에서 실패는, 끝나버렸다고 여기게 하고 망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을 책망하게 한다.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땀을 흘릴 만큼 열심히 춤을 추지는 말았어야 했던 건 아닐까? 사회도 동참한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잘못도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
분노가 쌓여 반드시 이기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두번 다시 피해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신체 훈련을 통해 반드시 이기는 힘과 기술을 갖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런 때일수록 이 마음이 마침내 나를 원망하고 내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내가 실패한 것이고, 그 원인에는 내 문제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다가 결국은 내 잘못이라고, 내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탓이거나 내가 힘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지키려는 마음이 완전히 잘못 꼬여버린 것이다.
지키려는 마음에 있는 위험을 잘 따져봐야 한다.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10대들의 내가 지키는 나’에서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으로 칼럼 제목이 바뀐 이유다.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