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감독관을 부르고 있다. 이한호 기자. 공동취재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 수험생이 단 한 문제에 대한 답안지 마킹 실수를 스스로 감독관에게 알렸는데도 ‘부정행위’로 처분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장의 답안지를 주고서 필수과목인 한국사와 선택과목인 과학탐구를 순서대로 치르게 하는 수능 4교시의 복잡한 응시방법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경남 창원 지역 고등학교 3학년생 최아무개양의 어머니인 박아무개씨와 담임 교사 등의 말을 종합하면, 최양은 지난 14일 수능 4교시를 치르다가 답안지 표기 실수를 했다. 수능 4교시에 최양은 필수과목인 한국사 시험을 먼저 치르고, 그다음 선택과목인 과학탐구1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앞서 본 한국사 과목의 시험지는 걷어가지만, 답안지는 오엠아르(OMR) 카드 1장에 여러 과목의 답안을 모두 작성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먼저 치른 과목의 답안지에 손을 대면 ‘부정행위’가 된다.
과학탐구1 시험 종료를 5분 정도 앞둔 최양은 8번 문제의 답을 3번으로 잘못 적은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과학탐구1 8번 문제의 답을 고친다는 것을, 실수로 이미 작성해둔 한국사 8번 문제의 답을 고치고 말았다. 한장의 답안지에 한국사와 과학탐구1, 과학탐구2 등 세 과목의 영역이 나란히 제시된 데다가, 공교롭게 한국사 8번 문제의 답도 3번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헷갈렸다.
답을 고쳐 적자마저 실수를 깨달은 최양은 곧바로 손을 들고 감독관에게 자신이 실수한 상황을 설명했고, 감독관은 사정을 알겠다고 하고 남은 시험을 계속 치르라고 했다. 4교시가 끝난 뒤 감독관과 학생은 함께 시험관리본부를 찾아 자초지종을 알렸지만, 시험관리본부에선 최종적으로 최양의 행위를 ‘부정행위’라고 판단했다. 사정이 어쨌든 건드리지 말아야 할 답안지를 건드린 것은 부정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최양의 어머니 박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단지 자신의 실수를 정직하게 알렸다는 이유로, 부정행위자라 취급받고 15년 동안 준비해온 수능 시험을 ‘무효’ 처분당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0학년도 수능 4교시 답안지 견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현재 경상남도 교육청은 시험관리본부별 수능 결과와 부정행위 등을 집계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보낸 상태인데, 여기에 최양의 사례도 부정행위로 집계됐다. 교육부 부정행위심의위원회에서 부정행위들을 다시 살피긴 하나, 이 단계에서는 올해에만 응시자격을 박탈할 것인지, 다음 해까지 응시자격을 박탈할 것인지 수위만 심사한다. 결국 최양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려면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거쳐야 한다. 경상남도 교육청 관계자는 “분명히 안타까운 사정이 있지만, 부정행위 관련 규정에 예외를 두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4교시에 여러 과목을 치르게 하는 현행 응시방법에 대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수능 4교시에선 한국사와 과학탐구 1·2를 함께 치르게 하지만, 다른 과목의 답안지를 수정하거나 문제를 보는 것 등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런데 답안지는 오엠아르 카드 한장에 여러 과목이 나란히 실려있다. 최근 5년 동안 적발된 수능 부정행위 1100여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90여건이 4교시 응시방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양의 담임 교사는 “4교시 답안지를 한장이 아닌 세 장으로 만드는 것이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지, 12년의 노력을 하루에 풀어놓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종이 몇장 더 만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지, 교육 당국에 묻고 싶다. 행정 태만 때문에 한 해에도 수백명의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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