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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정시 확대 반기는 강남 학부모들 “자사고·특목고 보내야죠”

등록 2018-09-05 05:00수정 2018-09-05 10:19

[르포] 강남 입시설명회 ‘열기’
‘사교육 1번지’ 입시학원 센터장
“대학들, 출신 고교 성적자료로 뽑아”
금지된 ‘고교등급제’ 기정사실화하여
특목고·자사고 진학 경쟁 거듭 부각
“수능이나 학종 대비에도 유리” 강조

정시 확대로 경제 상층부 ‘대입문’ 넓혀줘
학원 쪽 “대학 1곳 정원 정원만큼 는 것”
강남 고교들 재수비율 50~70% 훌쩍
‘달러 재테크’ 끼어든 설명회장 북적
지난달 26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종로학원하늘교육 입시설명회 모습. 현 중3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개편 방안이 발표된 뒤 바뀐 입시제도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종로학원하늘교육 입시설명회 모습. 현 중3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개편 방안이 발표된 뒤 바뀐 입시제도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입시가 곧 대입의 축소판입니다. 특목고나 자사고 입시를 한번 경험하면, 대입 준비도 그만큼 수월해진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김아무개 센터장이 특목고·자사고 진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법은 다양했다. 서울 강남의 ㅅ학원에서 입시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자사고에 진학한 제자 한명의 경험담”이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위해서도,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서도 해법은 특목고·자사고라고 강조했다.

강남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김 센터장의 입시설명회를 알게 된 건 초록색 검색창을 통해서였다. 지난달 17일 교육부는 현재 중3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2019학년도를 기준으로 20% 남짓인 수능 위주 정시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늘리고, 국어·수학·탐구 등 주요 과목에 대한 상대평가를 유지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관련기사: 현 중3 수능에 ‘기하·과학Ⅱ’ 포함…정시 30% 이상 확대)

정부가 고교 정상화를 위해 자사고 및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의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바뀐 대입제도는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몇번의 검색 끝에 ‘ㅎ고 전 진학부장, 수능 출제·검토위원, ㅅ학원 입시센터장’ 등 경력이 화려한 입시전문가의 설명회를 골랐다. 이름과 연락처, 주소, 자녀의 나이를 모두 적고 확인 항목을 누르니 1분 만에 신청이 끝났다. 이튿날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김○○ 센터장이 알려주는 2022 대입을 위한 고등학교 선택전략!! 어머님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입니다.(남편과 아이 입장 불가)’

김 센터장의 설명회는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의 한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60석 규모의 세미나실은 참가자들로 빼곡했다. 선택된 학부모만을 위한 강연이었기에, 특별한 ‘입시 꿀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서울 강남구 입시설명회에서 미니특강 강연자로 등장한 ㅁ보험사 지점장이 나눠준 달러와 종신보험 가입 신청서.
서울 강남구 입시설명회에서 미니특강 강연자로 등장한 ㅁ보험사 지점장이 나눠준 달러와 종신보험 가입 신청서.
설명회의 첫 주제는 뜻밖에도 ‘달러 재테크’였다. ‘본 강연은 후원사의 미니특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설명회 참가 신청을 마친 뒤 받은 문자메시지의 일부 내용이 그제야 머릿속에 떠올랐다. ‘재테크 특강’(혹은 보험상품 홍보)과 입시설명회의 결합, 무료 강연은 그렇게 이뤄졌다.

김 센터장보다 먼저 등장한 ㅁ보험사의 한 지점장은 ‘행운의 상징’이라며 2달러짜리 지폐를 모든 참가자한테 뿌린 뒤 30분간 달러를 기반으로 한 보험상품 설명을 시작했다. “이 보험상품에 가입해두면 우리가 죽은 다음날, 곧바로 자녀 앞으로 사망보험금이 나와요. 게다가 납입한 보험료는 자산으로도 안 잡혀서 절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상품이 자녀 유학과 이민에 관심이 많은 ‘서울 강남 어머니’만을 대상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누가 이런 곳까지 와서 금융상품에 가입할까 생각하며 좌우를 둘러보니, 이미 많은 참가자가 가입신청서를 작성 중이었다.

■ ‘특목고 4등급=일반고 1등급’으로 통해 ‘입시전문가’는 보험가입 신청서 회수가 모두 끝난 뒤 등장했다. 김아무개 ㅅ학원 입시센터장은 2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 내내 자사고와 특목고 진학이 ‘명문대’ 입시 준비에 얼마나 유리한지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대학들이 고교 졸업생 연구를 많이 합니다. 특목고나 자사고 3~4등급 아이들을 뽑아놓고 살펴보니, 일반고 1등급보다 낫단 말이에요. 그럼 그 대학은 특목고 3~4등급을 계속 선발할 거란 이야기죠. 요즘 대학들은 몇년치 고교 졸업생 성적 자료를 모두 뽑아놓고 입시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사고·특목고 진학의 유리함을 강조했던 김 센터장은 ‘고교등급제’도 언급했다. 전국 고교를 서열화하는 고교등급제는 본고사·기여입학제 등과 함께 공교육이 허용하지 않는 3대 금기(3불 정책) 가운데 하나이지만, 김 센터장은 주요 대학이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배경도 이런 입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애초 설립 목적과 달리 ‘입시교육기관’으로 변질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체제 개편의 핵심이다.

정부의 바람과 달리 이날 설명회를 찾은 많은 학부모는 이미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마음에 품고 왔다. 김 센터장은 학부모의 요구를 정확히 포착했다. “정부가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소논문은 없애기로 했지만 탐구활동에 보고서는 허용하고 있어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비교 분석’, 이런 보고서를 써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중요합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잘 만들어주는 자사고·특목고가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중3 딸을 둔 정아무개씨는 “일반고 가면 내신 말고 얻을 게 별로 없는 반면, 특목고는 학교생활기록부도 다 만들어준다”며 “정시·수시 무엇을 노리든 자사고·특목고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사고인 외대부고나 하나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학부모 이아무개씨 역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학습 동기도 생길 것 같고 기하나 과학Ⅱ 등 어려운 심화 과목도 일반고에 견줘 잘 가르칠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논란 끝에 수능에 포함된 ‘기하’와 ‘과학Ⅱ’는 선택과목이지만, 입시전문가들은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선 이들 과목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난달 29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의 한 세미나실에서 열린 김아무개 ㅅ학원 입시센터장의 대입 전략 설명회. 이날 김 센터장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생부종합전형 준비 등을 위해서는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진학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난달 29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의 한 세미나실에서 열린 김아무개 ㅅ학원 입시센터장의 대입 전략 설명회. 이날 김 센터장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생부종합전형 준비 등을 위해서는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진학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수능 전형 확대가 절박한 대치동 수능 위주 정시전형 확대도 이날 설명회에 참가한 많은 학부모한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학생부종합전형, 곧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라며 정시를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된 가운데, 사실 정시 확대를 가장 기대한 것도 그들이었다.

많은 교육 분야 전문가들도 확대된 정시모집 정원의 상당수가 ‘강남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경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의 성공 확률을 높여왔는데 그게 바로 재수였다”며 “‘공정’을 외치던 문재인 정부가 정시를 늘려줌으로써 상층부의 대입 문을 넓혔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서울대 역시 정시모집을 늘릴 경우 강남3구 출신의 합격생이 두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 대치동 근처의 자사고인 휘문고·중동고와 경기고(일반고) 등은 주로 정시를 통해 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있다. 정시 20%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당연히’ 재수를 한다. 2018학년도 전국 고등학교의 재수생 비율은 19.5%지만, 강남은 50%를 훌쩍 넘어간다. 대학알리미 자료를 보면 △경기고 73.2% △휘문고 65.3% △중동고 60.6% △단대부고 58.6%가 재수를 선택했다.

지난달 26일 1500명이 모인 종로학원하늘교육 입시설명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대강당의 계단까지 빼곡히 메운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능 위주 정시전형 비율 30% 이상’ 확대가 입시 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가장 궁금해했다. 언론은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라는 교육부의 권고에 영향을 받는 대학 신입생 수는 3300명(0.76%)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3300명이라는 수치는 서울 시내 괜찮은 대학 한곳의 정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2019학년도 서울대의 모집정원은 3182명이다.

글·사진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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