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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진보도 보수도 ‘영재’를 모른다

등록 2015-03-22 20:50수정 2015-03-23 10:12

[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교육갈등 접점 찾기 ③
현행 영재교육의 문제점
초등학생 기준(가명)이는 1%였다. 놀라운 집중력과 뛰어난 문제해결력을 보였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닫힌 공간에 있을 때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폐소공포증 등 정서 불안이 심했다. 수업시간에 자꾸만 질문을 하고 눈치 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놓는 기준이를 학교 친구들은 불편해하기만 했다.

하지만 기준이는 영재교육원에 다니면서 크게 달라졌다. 권대용 고려대 영재교육원 교육과정운영부장은 “학교에서는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무시당하다가 여기서 대화와 소통이 일어나니까 사회적 발달이 빨리 일어났다. 처음엔 선행학습을 하고 들어온 아이들하고 차이가 좀 있었는데 3~4개월 만에 따라잡았다. 학교생활도 아주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영재성’을 지닌 1% 아이들에 대한 별도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재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외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예원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영재성이 있는 애들은 일반적으로 엉뚱하고,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 ‘쟤, 또 시작했어’, ‘잘난 척이야’ 이런 편견 속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성격이 삐뚤어지기도 한다. 영재가 우월해서 좋은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학습장애 아이들에게 특수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은 그들에게 맞춤한 영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층의 소수 우등생’으로 오해
잠재력 있는 아이들 발굴 대신
이미 발현된 아이들 교육으로 왜곡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본질적 의미의 1% 교육, 즉 영재교육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먼저 영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합의가 안 돼 있다. 보수의 경우 영재를 ‘잠재력이 이미 발현된 상태’로 국한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수월성 교육을 주장해온 보수가 영재교육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영재는 ‘우등생’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진영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 정책국장은 “영재교육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영재는 그냥 공부 잘하는 1등이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영재는 남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1등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런 반쪽짜리 영재교육 개념이 지속돼온 것은 균형추를 담당해야 할 진보 역시 영재를 ‘교육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영재성을 발현하는 천재’와 혼동해 영재교육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한 영재고 교사는 “영재교육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영재교육이 상층의 소수를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재교육은 이미 잘하고 있는 학생들만을 위한 건 아니다. 잠재성은 있지만 발현되지 않아서 영재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잘쳤다 이런 애들은 영재 아니다. 천재다”라고 했다.

보수는 1%의 영재와 상위 1%의 우등생을 헷갈리고, 진보는 0.0001%의 천재와 1% 영재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개념에 대한 합의부터 돼야 한다.

영재에 대한 보수의 오해와 진보의 무관심은 결국 영재교육을 왜곡시켜왔다. 사교육으로 잘 ‘세공’된 보석을 골라내는 데 관심을 쏟는 접근은 영재교육의 대상을 이미 영재성이 발현된 아이들로 국한시켰다. 특정 학생을 선발해 영재학급·영재교육원·영재학교 등에서 따로 교육하는 현행 영재교육은 사실상 잠재성이 있는 아이를 발굴하기보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이미 잠재력이 발현된 아이가 유리한 방식이다. 서울의 한 영재교육원 담당 교수는 “일부 영재교육원에서는 중학생들한테 대학 수학을 가르친다. 선행학습을 하거나 사교육을 미리 받은 아이만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영재교육의 범위를 자꾸 확대하는 추세다. ‘누가 영재일지 모른다’며 전체 학생의 30%까지 영재교육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재교육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영재교육 이수 여부가 입시 경쟁의 유불리를 가르는 한국에서는 영재교육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경쟁을 최소화하면서도 모든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한국적인 방식의 ‘보편적 영재교육’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예원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영재교육을 따로 하지 않고, 일반 교실에 영재교육 수준의 높은 과제를 주는 ‘차별화 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수업에서 영재를 더 발굴하기가 쉽고, 또래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중위권이나 하위권도 학습효과가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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