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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국사 교과서부터 사회적 합의 실험을”

등록 2015-03-15 21:50수정 2015-03-16 11:34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월 23일 낮 서울 송파구의 한 중식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월 23일 낮 서울 송파구의 한 중식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전직 교육 장관들이 말하는 교육 해법
이명박 정부 안병만 장관
안병만(74)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재임한 세 명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중 한 명이다. 2008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2년간 재임하는 동안 이 대통령과 가장 독대를 많이 한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안 전 장관 재임 기간에도 일제고사,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시국선언 교사 중징계 등 교육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안 전 장관은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의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갑인 대통령과 교육부가 을인 야당 및 교육계와 대화하고 양보하는 ‘어울림의 미학’을 실천해야 한다”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부터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정권 초월하는 합의기구 만들고
좌파·우파 싸울만큼 싸운 뒤
국정이든 검정이든 합의해야

‘갑’인 대통령과 교육부가
야당·교육계와 대화·양보하는
어울림의 미학 실천하길”

-지난해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취임한 뒤 정부와 진보 교육감을 중심으로 교육갈등이 심했습니다. 보수 정부와 진보 교육감이 대립하는 건 불가피한 일일까요?

“제가 교과부 장관일 때, 서울·강원·전북·전남·광주에서 새로 진보 교육감들이 당선됐습니다. 진보 교육감들과 처음으로 자리를 마련했는데, 교육부 공무원들이나 언론에서는 보수 정부 장관과 진보 교육감들이 싸울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기자들한테 그날 만남을 총평하기를 ‘(정부와) 큰 것은 같고 작은 것이 좀 다릅니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대동소이’ 아닙니까. 제가 그때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는 이념적으로 다르지만 교육정책을 보면 공통점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입학사정관제는 제가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노무현 정부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넘어온 정책입니다. 좋은 정책이고 필요한 정책이라 수용해서 확산시킨 겁니다.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면 싸우지 않고도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치’ 때문에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으신지요?

“사실 저 같은 경우엔 야당보다 여당에서 견제가 더 많았습니다. 행정학에서는 행정의 효과성·능률성·합법성을 얘기하는데, 저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효과성과 능률성에 앞서 합법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좀 곤란하지만, 당시 교육계에서 쟁점이 됐던 현안들을 처리할 때 합법성을 기준으로 처리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때문에 때로 여당의 압력을 수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말을 잘 안 들으니 여당에서 저를 사퇴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그랬습니다.”

-역대 정부들이 교육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부 임기가 짧은데 교육에 대한 요구는 아주 많습니다. 교육부가 시간에 쫓깁니다. 그래서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사회적 합의를 하지 못하고, 전문가들을 불러서 정책 시안을 만들고 공청회를 합니다. 그런 절차를 밟을 때, 가장 반대를 많이 할 것 같은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공청회에도 가급적 많은 교사들을 불러 갑론을박하도록 놔두면 그 과정에서 설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판을 벌여놨는데 누가 와서 반대를 하면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고, 반대할 것 같은 사람은 잘 부르지도 않습니다. 토론문화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못한 거죠.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힘듭니다.”

-교육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기구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부가 권한을 내려놔야 가능한 일이고, 파워게임이 되는 거라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교육부를 없애라는 것이냐, 초·중등은 교육감 권한 아니냐를 비롯해서 정부 조직체계의 큰 개혁을 수반하는 문제까지 야기됩니다.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상당히 장애 요인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 정도는 합의기구를 통해 해결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권을 초월하는 합의기구를 만들고 국정이든 검정이든 사회적 합의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파 교과서는 우파라 안 되고 좌파 교과서는 좌파라 안 된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싸울 만큼 싸우고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서 <한국정부론>에서 ‘어울림의 미학’을 강조하셨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여야, 대통령과 국회, 진보와 보수가 딱 부딪치는 지점이 지역주의와 이념갈등인데, 대통령이 ‘갑’이니까 대통령이 풀어야 합니다. 가령 대통령이 쥐고 있는 중요 보직 인사권이 3000개가 넘습니다. 지역주의를 초월해서 임명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어울림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념 문제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양보해야 합니다. 대통령 의지대로 따라오게 하면 어울림이 안 됩니다. 사실 갑이 하나를 양보하면 을은 두세개 양보하게 돼 있습니다. 그게 감동의 정치입니다. 그런데 어울림의 미학을 누가 먼저 해야 하느냐, 정부가 먼저 해야 합니다. 을이 대화하자고 하고 갑이 안 하면 싸움이 됩니다. 갑이 낮은 자세로 찾아가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울림의 미학’이 교육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교육도 똑같습니다. 교육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야당과 자기를 반대하는 교육자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교육부가 만드는 각종 위원회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넣어서 함께 가야 합니다.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교육부 장관이 교육감들과 자주 만나서 계속 대화하면서 서로 고충을 나누고, 갑의 입장에서 통 크게 양보할 건 양보하면 어울림의 시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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