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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20년간 입시정책 오락가락…수험생들만 ‘뒤통수’

등록 2015-03-15 21:46수정 2015-03-16 11:36

[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교육갈등 접점 찾기 ①
“앞으로는 우리의 아들딸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서민들의 가계를 압박하는 과열 과외도 추방해야만 하겠습니다. 반드시 인성과 창의성을 살릴 수 있고,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만 하겠습니다.” 1995년 5월31일, 김영삼 대통령은 교육개혁위원회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광복 이후 처음 있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 개혁이 가져올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오류 소송에서 승소해 자기 점수를 되찾은 김소진(가명·20)씨는 5·31 교육개혁안이 태동한 1995년에 태어났다. 특목고 입시를 둘러싼 사교육 수요를 잠재운다며 2011학년도 입시부터 도입된 자기주도학습전형 1세대인 유현아(가명·20)씨 역시 1995년생이다. 5·31 교육개혁안에 포함된 교육정책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초·중·고 시절을 보낸 ‘5·31둥이’들이 20살 성인이 된 2015년, 2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은 이루어졌을까.

입학사정관제 스펙금지 발표 뒤
1주일만에 “어겨도 불이익 없다”
이듬해 지침위반 대학 5곳 제재

수준별 수능 변별력 확보 실패
공부전략 필요한데 고1 상대로
영어듣기평가 비중 50%로 확대

■ 입시 명문 부활시켜놓고…사교육 잡는다며 입시 바꿔 피해자 양산

유씨는 국제중 1세대다. 유씨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6년 경기도 가평에 전국에서 두번째로 국제중이 생겼다. 1997년 개교한 부산국제중과 달리 수도권에 처음 생긴 국제중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개교 첫해 100명을 뽑는 입학시험에 2100여명이 몰렸다. ‘평등교육’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였지만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실상은 달랐다. 유씨가 청심국제중 입학을 고려하던 노무현 정부 말기, 1974년 고교 평준화 실시로 사라진 ‘명문 학교’가 속속 부활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5·31 교육개혁안의 기조를 계승한다는 취지 아래 ‘고교 다양화’를 추진했다.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19곳이던 외국어고는 2007년 29곳으로 늘었다.

유씨가 청심국제중 입시를 치른 2007년 12월에는 ‘평준화보다 수월성 교육으로 가야 한다’ ‘교육에도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우수한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유씨가 국제중 진학을 재고할 여지는 없었다.

유씨는 국제고 진학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변심’에 발목을 잡혔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09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는 당장 유씨가 치르는 2011학년도 특목고 입시부터 자체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중학교 영어 내신만으로 선발하도록 했다. 특목고에 유리한 고교등급제를 금지한 3불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갑자기 특목고 홀대로 돌아선 이유를 납득하는 일보다 당장 바뀐 입시에 대비하는 게 급했다.

국제중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교내신제’가 실시돼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하는 비교내신평가에서 상위 4% 안에 들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영어 고수들끼리 겨루는 ‘비평’(비교내신평가)은 1개만 틀려도 2등급을 받는 살벌한 경쟁이었다. 영어 몰입교육을 한 국제중에서는 비평을 앞둔 학생들에게 일반 중학교 내신 문제집으로 유형 연습을 시켰다. 100명 가운데 4명이 1개를 틀렸고 2등급을 받았으며 국제고에 떨어졌다.

■ 성적 말고 잠재력 본다더니…교과부는 특목고 배신, 대학은 일반고 뒤통수 쳐

5·31둥이들의 고등학교 시절은 입학사정관제로 대표되는 정성평가에 대한 응전이었다. 입학사정관제는 이들이 태어나던 1995년 발표된 5·31 교육개혁안에서 이미 싹을 틔웠다. ‘종합생활기록부’(종생부)를 도입해 교과성적 말고도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비롯해 교내외 대회 수상 실적과 공인 어학성적과 같은 자격증 등을 대학 입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게 5·31 교육개혁안이었다. 종생부는 어감이 나쁘다는 이유로 1년 만에 폐기되어 지금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가 됐다. 1996년 8월 교육부는 ‘종생부 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대학이 종생부 성적에 가산점을 주는 사실상의 ‘고교등급제’를 허용해 논란이 이는 등 정성평가의 확대는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 등 학생 선발권을 지닌 고교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유씨가 중3이던 2010년 2월 교과부가 학생부에 공인 어학성적과 교외 대회 수상 실적 등 ‘외부 스펙’에 대한 기록을 금지할 때도 명문고를 우대하는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많지 않았다. 실제 이명박 정부의 ‘대입 자율화’ 공약에 따라 대학 입시 업무를 교과부로부터 이관받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외부 스펙 금지’를 뼈대로 하는 ‘입학사정관제 운영 공통지침’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이를 번복하는 촌극을 빚었다. 갓 취임한 고려대 총장 출신 이기수 신임 회장이 ‘공통기준을 어긴 대학에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2011년 4월 고려대 등 입학사정관제 운영 지침을 위반한 대학 5곳을 적발해 ‘특목고 우대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유씨는 결국 혼자 공부해서 얻은 텝스 점수, 영어경시대회 성적 등을 어릴 때부터 소망한 국립대 입시에 하나도 쓸 수 없었다. 대통령 아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 평준화가 실시되고, 대통령 아들이 군대 갈 때 석사장교가 생겼다고 믿는 유씨의 부모님은 아직도 정치인 자녀가 특목고를 졸업한 뒤부터 불리한 정책이 쏟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유씨는 외부 스펙을 별도로 제출할 수 있는 전형을 운영한 사립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반면 일반고에 다니던 김소진씨는 입학사정관제에는 외부 스펙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를 철석같이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모의고사 성적으로는 합격하고도 남는 사립대 수시 전형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김씨보다 내신 성적도 좋지 않고, 임원 경력도 없는데 학원에 미국 대학의 에이피(AP·대입과목 선수 수업 제도)가 있는 친구들이 합격한 전형이었는데, 해당 대학은 그 전형이 입학사정관 전형이 아니라 ‘특기자 전형’이라고 발뺌을 했다.

■ 시뮬레이션 결과 공개 안 한 졸속 개편…사상 최악의 오류 사태

김씨의 어머니는 늘 “정시로 대학 가는 게 부모한테 효도하는 일”이라고 했다. 맞벌이를 하는 어머니는 전형 수가 3000개에 이른다는 수시모집이 늘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결국 어머니가 수시모집 원서 접수 마감 시각을 착각하는 바람에 1년여 동안 따로 학원에 다니며 논술고사 준비를 한 사립대에 원서조차 내지 못했다. 외부 스펙이 없어 수시모집에 낙방한 뒤로는 김씨 역시 “수능으로 가는 정시가 제일 깨끗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하지만 수능 역시 속을 태우긴 마찬가지였다. 김씨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김씨가 치러야 하는 2014학년도 입시 개편안을 마련한다고 했다. 수능 탐구과목을 당시 4과목에서 2과목으로 줄이는 소폭 변화부터 보름 간격으로 두 차례 수능을 치르는 복수시험제도 논의됐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인 2011년 1월에야 복수시험제 논의는 무산됐고 사상 처음 ‘수준별 수능’ 도입이 결정됐다. 수능 영어 시험에서 듣기평가 비중을 50%로 확대(2011년 12월)하는 방안은 공부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는데도 1학년 말에나 확정됐다.

김씨는 결국 수능에서도 배신감을 맛봐야 했다. 2014학년도 수능에서 세계지리 과목에 응시했다가 문제 오류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문과 최상위권이던 김씨의 당락을 가른 것은 자신의 불성실이나 실수가 아니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오류로 잃어버린 3점이었다. 담임교사는 “네 탓이 아니다”라고 위로했다. 전례가 없는 ‘수준별 수능’을 도입하면서 시뮬레이션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은 평가원이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잘못을 사과하는 대신, 김씨의 3점을 되돌려주지 않기 위해 거대 로펌을 선임했다. 원하지 않은 대학에 다니던 지난해 10월 법원이 뒤늦게 잃었던 3점을 돌려줬고, 김씨는 지난 3월 원했던 학교에 재입학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그래도 수능이라 오류가 바로잡혔다며 ‘깨끗한 입시’에 대한 기준을 바꾸지 않고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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