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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인권·자치 보장이 벼랑끝 아이들을 구한다”

등록 2012-10-14 20:17수정 2012-11-01 08:52

지난 6월5일 오전 대구 수성동2가 대구교육청 앞에서 전교조 대구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지역 청소년들의 잇따른 자살에 대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책임을 물으며 비판하고 있다. 
 대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6월5일 오전 대구 수성동2가 대구교육청 앞에서 전교조 대구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지역 청소년들의 잇따른 자살에 대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책임을 물으며 비판하고 있다. 대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선주자에게 묻는다 청소년 자살
청소년 자살 막을 방법은
지난 12일, 대구에서 교사·학부모·교육활동가 10여명이 모였다. 청소년 자살 사건이 또 터졌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아이들의 비극이 잇따르자 지역 교육운동단체들은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을 비판하고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도 했지만, 아이들은 계속 절망의 선택을 했다. 모인 사람 모두가 ‘위기의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한탄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정금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 정책실장은 “매번 나오는 대책들로 교육청이나 학교에 공문만 쌓였을 뿐 아이들을 위한 진짜 대책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 자살 대책으로 학교 창문에 쇠창살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던 우동기 교육감은 비판이 일자 최근 쇠창살을 없앴다. 대신 옥상에는 시건장치를 달고, 창문에는 멈춤장치(스토퍼)를 설치해 창문을 20㎝ 정도만 열리게 하도록 했다. 김병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교권팀장은 “최근 학생 자살은 성적 문제와 학교폭력이 중첩돼 나타나고 있다”며 “문제는 가속화하는데 통제 위주의 대책만 내놓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학생이 학교 주인돼야
명문대 위한 입시 일변도 벗어나
학교운영 참여해 의사반영 하고
다른 관심사도 발붙일 수 있어야

■ 자치·인권 높여 학생이 주인 돼야 3년 전, 고1 때 학교를 자퇴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아수나로 활동가 따이루(19)는 학교에서 언제나 ‘무기력한 존재’였다고 자신을 묘사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였어요. 방송반에 들어갔더니 다들 대학 가기 위한 스펙을 위해 활동했고, 학생회도 ‘리더십 전형’으로 대학을 가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학교는 ‘대입’ 말고 다른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어요.”

지금 학교에는 입시 외에 다른 문화가 없다. 학생들이 참여할 공간은 더 없다. 서울의 인문계고를 다니는 ㄱ(16·고1)양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 학교에서 학급회의를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며 “학교에 가면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수업받을 뿐, 자발적으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규정상 학생들도 학교 운영의 주체로 참여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 혁신학교를 제외하면 어른들의 전유물이다. 따이루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자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죽은 시체’마냥 지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학생인권과 학생자치가 폭력을 이기는 열쇠”라며 “‘겁먹는 시민’을 만드는 ‘겁주는 교육’을 끝내고 존중받으면서 행복한 교육을 시작하기 위해 시민과 정책 입안자가 인식을 같이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학생 밀착형 학교로
담임이 학생 만나 얘기할 기회라곤
조례 10분·종례 10분이 전부인 현실
공문 위주 행정적 교육정책 바꿔야

■ 교사-학생 밀착형 학교를 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 김병하 전교조 대구지부 교권팀장은 “중학교 때부터 교사들이 학생을 만나는 것은 조례 10분·종례 10분이 전부”라며 “방과후에 교사들이 학생들과 자연스러운 친교·상담을 하려 해도, 최근에는 교사·학생 모두 방과후 수업에 내몰려 서로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기규 서울 수송초 교사는 “아이들은 궁금증과 질문을 뿜어내지만, 이를 통제하고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으면 무능한 교사가 된다”며 “지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유치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쉼표가 없는 삶을 강요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경쟁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2008년부터 초·중·고마다 1개 학년이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전국의 또래와 똑같은 문제를 놓고 시험을 쳐서 내가 어느 정도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평가받는 마당에 다른 고민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일제고사 성적이 전국에 공개됨으로써, 아이들이 한 문제를 더 맞히느냐 덜 맞히느냐가 학교의 서열을 결정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매기는 학교평가 점수에 반영된다. 교사와 학교장들은 점수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부터 오전 8시에 등교시켜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시키는가 하면, 학생들에게 상품권이나 국외 연수를 내걸고 문제풀이 경쟁으로 내모는 학교도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급선무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싶어도 가질 시간이 없는 게 말이 되냐”며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공문 위주의 행정적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학교가 교사와 학생이 대화하는 곳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입시경쟁 위주 교육 철폐
서울대 필두로 ‘학벌사회’ 고질병
대입제도 바꾸고 대학서열 없애야
공교육 교과과정도 바로 설수 있어

■ 입시경쟁 위주 교육을 철폐해야 앞선 두 가지가 가능하려면, 서울대와 유명 사립대학이 ‘학벌의 정점’에 서 있고, 그 대학에 가기 위해 줄서기 경쟁을 하는 대학입시 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대입 제도가 바뀌고 서열 위주의 대학 구조가 무너져야 고교 교과과정도 정상화할 수 있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1980년대부터 주장해온 ‘대학네트워크 체제’와 ‘국립교양대학 설립’을 이제는 실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국공립대 통합안은 굉장히 여러가지가 있다”며 “대선 후보들이 이 제안들 가운데 현실성이 있고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안을 받아들여, 학벌체제 개편의 포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교육 정책은 오히려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이거나, 경쟁 완화의 미봉책에 그쳤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쟁교육을 예고했다. 중학생부터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토대를 만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약속했고, 대입전형이 3000개에 육박하는 지금의 현실을 예고한 ‘대입 3단계 자율화’도 약속했다.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는 영어유치원 열풍을 낳았다.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학자금 무이자 대출 확대 △0살부터 고교까지 무상교육 △대입 전형요소 단순화로 입시 고통 해소 등을 약속했다. 아이들의 불행을 치유할 근본적 처방보다는 교육 복지를 통한 민생 해결에 더 주력한 셈이다. 지금의 후보들이 너도나도 ‘반값 등록금’에 전념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올해는 달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아이들의 비극의 행렬을 끝내기 위해 교육 근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정책적 역량을 학교와 교사를 바꾸는 데 집중”(이영탁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하고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 학부모가 주체가 된 시민운동”(박효종 건국대 교육학과 교수)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선 후보들이 대답할 때가 됐다.

박수진 전종휘 기자 jin21@hani.co.kr


“학교 그만두고 싶다 자주 생각” 33%
이유는 “부모 원하는 성적 안돼” 45%

아이들 죽음은 대부분 교실에서 비롯된다. 학교가 ‘모순 덩어리’ 한국 교육 시스템이 작동하는 최일선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존재일까?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들에게 학교는 끔찍할 정도로 가기 싫은 곳이다. 아이들 셋 중 하나꼴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할 정도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7월 전국 중학생 1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학생이 셋 중 하나꼴인 33.0%(‘매우 그렇다’ 5.4% 포함)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기대하는 학교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45.0%)를 첫손에 꼽았다. ‘학교의 생활지도 및 처벌에 대해 불만이 생길 때’(37.1%)와 ‘수업이 재미없을 때’(36.7%)가 그 뒤를 이었다. ‘집단따돌림(왕따) 등 학교폭력을 경험할 때’라는 대답은 15.0%를 차지했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지를 묻는 질문에는 긍정(46.9%)보다 부정(53.1%)의 답변이 조금 더 많았다. 그러나 교사들은 아이들의 인생관과 가치관 형성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을 꼽으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부모님(41.8%)를 가장 많이 꼽았고 친구(35.4%)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교사는 3.8%에 그쳐, 인터넷(5.3%)보다도 아이들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

‘무엇을 할 때 즐겁냐’는 질문에 ‘공부’라고 답한 아이는 1906명 가운데 16명(0.8%)에 불과했다. 100에 99명 이상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쓰는 공부보다 ‘대화’(25.5%), ‘컴퓨터 게임’(20.9%), ‘놀이’(19.0%)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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