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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글쓰기는 '실용적', 글짓기는 '문학적'

등록 2010-05-30 16:28수정 2010-05-30 16:34

서술형·논술형 시험 기본은
이해력 바탕 실용적 글쓰기
② 서술형·논술형 뭐가 다른가
③ 글쓰기와 글짓기는 다르다
④ 글은 손가락 끝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술형·논술형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다. 여태껏 선택형 지필평가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에게 그렇다. 아이의 달라진 시험을 함께 대비해야 하는 학부모들에게도 그렇다. 이렇게 비유하면 비슷할지 모르겠다. 차려진 밥상에서 밥과 반찬을 골라먹는 처지(선택형 지필평가)에서 밥과 밥상을 스스로 차려야 하는 처지(서술형·논술형 지필평가)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어진 밥상만 받다가 밥상을 직접 차려야 하는 두려움이라니! 이런 두려움의 감정 밑바닥에는 글쓰기에 대한 근원적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근원적 선입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글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물론 글솜씨가 뛰어나야 잘 쓸 수 있는 글도 있다. 시나 소설, 수필, 시나리오처럼 문학 장르에서 말하는 글쓰기는 그야말로 글솜씨가 뛰어나야 가능하다. 그런 글솜씨의 경우에는 대부분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글에 대한 재능, 이른바 ‘문재(文材)’가 새겨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재능이 없는 이들이 문학적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서술형·논술형 시험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는 문학적 글쓰기는 아니다. 실제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서술형·논술형 시험 유형을 꼼꼼히 분석해보면 문학적 글쓰기에 필요한 문학적 형상화 능력,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능력, 스토리텔링 능력, 내러티브를 갖춰 글을 구성하는 능력까지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글을 정확히 읽고 한 문장 또는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하는 능력처럼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읽기, 이해하기, 글쓰기의 기초능력을 더 우선하고 있다. 즉, 주어진 제시문이나 자료를 읽어보고 이를 문장의 형태로 설명하거나 요약하라는 문제가 많다.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을 다시 배열하거나 만화·기사·광고문 등 다양한 형태로 내용을 표현해보라는 정도가 응용 문제에 등장하고 있다. 읽고 이해한 내용을 평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 위주로 평가한다는 얘기다. 어휘력이나 문장력 등으로 대표되는 표현력·전달력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고도로 발달된 표현력·전달력 수준이라기 보다는 핵심을 쉽게 정리할 수 있는가 여부를 가리는 수준이라고 보면 될 정도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서술형·논술형 준비를 위해 아이들에게 백일장 대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작문 능력을 특별히 단기간에 길러준다고 홍보하는 사교육 기관을 알아볼 필요도 없다. 부모 세대들이 글쓰기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된 데는 부모 세대가 학교를 다니던 시대에는 학교에서 글쓰기 대신 ‘글짓기’라는 단어를 더 많이 썼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글짓기라는 단어에는 문학적인 지향이 뚜렷이 녹아 있다. ‘짓다’의 사전적 의미 가운데 하나는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이다.

서술형·논술형 시험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는 글짓기, 즉 문학적 글쓰기라기보다는 실용적 글쓰기에 가깝다. 실용적 글쓰기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표현력이나 구성력보다는 ‘내용에 대한 이해’다. 학습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글쓰기는 도구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글쓰기라는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할 점에 대해서 분명히 정리해두고 있으면 된다.


서술형·논술형 시험에서 요구하는 글쓰기가 글짓기와 다르다고 해서 글짓기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짓기는 글쓰기를 충분히 한 후에나 생겨날 수 있는 능력이며, 글짓기가 공교육 과정에 필요한 필수적인 글쓰기 능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글쓰기 능력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강요할 경우에는 부작용도 생긴다. 글짓기를 잘못 이해할 경우 알맹이는 빠져 있고 껍데기만 그럴싸한 ‘글 꾸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적 체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만든 말들의 조합으로 글짓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타계한 국어학자 고 이오덕 선생은 “글짓기를 할 생각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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