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 기자의 서술형 논술형 대비법
① 왜 서술형·논술형인가 ‘객관식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전 세대의 학교 시험에서는 사각연필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를 안 한 탓에 시험을 포기한 학생들이 선생님 눈을 피해가며 사각연필을 굴려서 정답을 쓴 것이다. 문제마다 연필을 굴리는 것조차 귀찮아하던 아이들은 한술 더 떠 일정한 규칙으로 정답을 쓰거나, 한쪽으로 몰아서 정답을 쓰기도 했던 것 같다. 서술형·논술형 문제가 학교 정기 시험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정답을 ‘찍는’ 풍경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되고 있다. 문제를 풀지 못한 채로 정답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술형·논술형 문제에 대한 평가방식이 정확한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 선택형 문제가 지니고 있던 본질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취약점, 즉 알지 못하더라도 정답을 맞힐 확률이 무려 20% 또는 25%에 이른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평가에 대한 신뢰도는 서술형·논술형 문제가 선택형 문제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서술형·논술형 문제의 전면 도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되어온 정책이다. 교육부가 1998년 발표한 ‘2002학년도 대학제도 개선안’과 ‘교육비전 2002: 새 학교문화 창조’라는 문건이 그 출발점이었다. 10년에 가까운 연구와 준비 과정을 거쳐 올해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평가에서 서술형 문항을 이번 1학기 내신시험에서부터 30%로 전면 확대했다. 2011년에는 서술형 문항의 비중이 40% 이상, 2012년에는 50% 이상으로 늘어난다. 서울에 이어 부산지역에서도 서술형 문항이 늘어나고 있고, 점차 다른 지역으로 번져가고 있는 추세다. 학교 현장에서는 단어 하나를 맞힐 것을 요구하는 단답형 문제를 서술형 문제로 오해해 제대로 된 서술형 문제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평가 체제의 변화 양상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됐다. 학교의 평가 체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에게 시대가 요구했던 능력과는 질적으로 확연히 다른 것이다.
평균적 지식의 단순 암기도 일정한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다. 산업혁명 이후 출신·인종·신분을 따지지 않는 대중·평등 시대에 필요한 평가 도구로 제공돼 평균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데 선다형 시험이 큰 몫을 담당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남들이 생산해놓은 지식을 제한적으로 소비하는 능력으로는 이 시대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없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날마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쌓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판별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습득한 지식을 재구조화하는 능력(지식의 수정·통합·재구조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이 요즘 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의력(또는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력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들이다. 또 서술형·논술형 평가 체제는 지식과 진리에 대한 태도나 관점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선택형 문항과 단답형 문항은 절대주의적 진리관에 터잡고 있다. 교사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지식이나 정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학생들은 습득한 지식을 나중에 다시 기억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식이 개인에 의해 창조되고, 구성되고, 재조직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시대가 됐다. 학생이 지식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을 존중해주려면 지식과 정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표현하는 서술형이나 논술형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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