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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송악면 사람들, 학교도서관서 소통하다

등록 2010-03-21 16:36

송남초 학교도서관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힘은 도서관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와 ‘꾸준한 소통’ 덕분이었다. 농어촌 지역의 특성상 학교도서관을 함께 이용하게 되는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등은 도서관이 교육적으로 왜 필요한 공간인지를 꾸준히 알리고, 이 학교도서관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송남초 학교도서관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힘은 도서관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와 ‘꾸준한 소통’ 덕분이었다. 농어촌 지역의 특성상 학교도서관을 함께 이용하게 되는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등은 도서관이 교육적으로 왜 필요한 공간인지를 꾸준히 알리고, 이 학교도서관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민의 교육허브’ 아산 송남초 솔향글누리도서관
초등생 놀이방…여중생 수다방…졸업생 쉼터…학부모 동아리방…
책읽고 문화활동 ‘동네사랑방’ 구실 “매일 오고 싶은, 집보다 편한 공간”
“도서관요? 음…, 그러니까 제 뇌의 용량을 늘려줬어요.”

아산 송남초 6학년 원서나(13)양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원양은 송남초 학교도서관인 솔향글누리도서관(이하 ‘학교도서관’)에서 ‘다독왕’으로 통했다. 3년 전, 학교도서관이 학교 건물 1층으로 옮겨 새로 문을 열면서부터 매일 한 권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방과 후, 직장 간 엄마를 기다리는 장소로 도서관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요즘은 바빠져서 많이 못 보는데 그래도 하루 한쪽 이상은 꼭 읽으려고 해요. 꿈요? 지구정복! 책을 보다가 생각한 건데 바뀔 거 같긴 해요.(웃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양을 비롯해 아산의 송악면을 키우는 건 원양이 매일 이용하는 이 공간, 학교도서관이었다. 지난 3월9일. 송악면 교육의 허브 구실을 하는 학교도서관을 찾아가 봤다.

오후 3시30분. 수업이 끝나고 눈이 펑펑 쏟아졌지만 곧장 집으로 향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이 지역엔 맞벌이 부부가 많았다. 수업을 마친 초등생들은 하나둘 학교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원양처럼 서가 구석 아늑한 공간에 숨어 책을 보는 고학년도 있었지만 저학년들은 여유 공간이 많은 도서관에서 팝업 그림책을 펼쳐놓고 장난을 치며 놀기도 했다. 한쪽에선 황소연 사서교사가 도서 대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 갈 곳이 많지 않아요. 오늘처럼 눈이 오면 운동장에서 놀 수도 없고요.” 학부모이자 도서관운영위원회 간사인 김영미씨는 “보통 이 시간에는 도서관이 어린이 보호소 구실까지 한다”며 웃었다.

오후 4시30분. ‘어린이 보호소’는 슬슬 ‘청소년 쉼터’로 변했다. 시곗바늘이 4시를 가리키자 눈을 뚫고 교복 입은 여중생 대여섯이 도서관을 찾았다. 원두막처럼 생긴 2층의 아늑한 공간에 올라간 이들은 그곳에서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었다. 송남초를 졸업하고 근처 송남중에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모두들 “집 같은 도서관이 생각나서 자연스럽게 들르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경(14)양은 “여름에 도서관 앞에 있는 정자에서 책을 봤던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잠시 뒤 도서관 문을 열고 청년처럼 보이는 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송남초와 근처 거산초의 졸업생으로 “올해 고교를 자퇴했다”고 했다. “동네 놀러 나왔다가 책 좀 보려고 왔어요. 춥길래 몸도 녹이고….” 학교도서관은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책을 빌려준다.

송악면 사람들, 학교도서관서 소통하다
송악면 사람들, 학교도서관서 소통하다

이 학교도서관이 울타리 없이 모든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연 데는 사연이 있었다. 아산시 송악면엔 두 곳의 초교, 한 곳의 중학교가 있지만 학생들과 학부모가 이용할 문화공간이 전혀 없다. 서점이나 영화관은 물론이고 그 흔한 커피숍, 피시방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2006년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근처 거산초로 전근 간 장종천 교사 등이 <한겨레>에 소개된 ‘희망의 작은 도서관 만들기’(삼성,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겨레 공동사업) 사업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넣었다. 2007년 11월, 도서관이 ‘귀신놀이 하기 딱 좋은 공간’에서 ‘매일 오고 싶은, 집보다 좋은 공간’으로 싹 변신한 사연이다.

운영 3년. 도서관이 겉만 화려한 장소로 머물지 않게 된 데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연대’였다. 2003년부터 정부에서 벌인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부터 각종 단체 등에서 벌인 도서관 건립 사업 뒤 학교도서관 운영에 대한 아쉬움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송남초 학교도서관이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학부모들은 공모 과정에서부터 공청회를 열며 마을에 왜 도서관이 필요한지,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개관 첫해는 도서관을 열고 꾸려가기 바빴다. 주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 후원인까지 모여 도서관 운영위, 후원회를 조직했다. 내실을 꾀하려면 전문 사서교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생겼다. 2년 전 부임한 황 사서교사는 “전국적으로 볼 때 사서교사 발령 자체가 엄청 어렵고 이 직업을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이 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들이 연대해서 사서교사에 대한 요청을 적극적으로 하셨다”고 설명했다. 김영미 간사는 “아무리 책이 많아도 도서관을 상시적으로 책임져주고 아이들을 맞아주는 사서교사는 도서관 운영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황 교사에게 도서관 이용 지도를 받고,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오후 5시30분. 황 교사의 업무 시간이 끝났지만 도서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방과후 사서로 근무하게 된 학부모 김지선씨가 황 교사에게 바통을 이어받았다. “일주일 정도 해보니까 여기 오는 아이들 이름 한 번 불러주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와도 되고, 자꾸 오고 싶은 공간으로 느끼도록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오래 열어두는 것 자체도 중요하죠.” 김씨는 평일 7시30분까지, 토요일엔 6시까지 도서관이 불을 밝히도록 돕는다. 김영미 간사는 “도서관 문화와 함께 이 학교 친환경 급식 등이 알려지면서 전학 오겠다는 학생도 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서나 어디 갔어요?”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원양의 엄마 김성림씨가 딸을 데리러 도서관에 왔다. 김씨는 “보통 5시쯤 끝나서 딸을 데리러 오는데 도서관 덕에 아이가 학교 끝나고 어딜 갔나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김씨를 비롯해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은 7시가 다 됐지만 집에 가지 않았다. 이날은 학부모 동아리 가운데 하나인 교육영상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 도서관은 한 아이를 넘어 부모들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퇴근을 마친 뒤 모인 스무 명 남짓한 학부모들은 학부모이면서 예산 대술초 교사이기도 한 임대봉씨가 준비한 감정코치 관련 영상 자료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시청하고 자녀와의 소통에 관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학교도서관에서는 이런 교육영상모임과 책 읽는 어른 모임 등의 모임이 1년 정도 지속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낯선 얼굴도 있었다. 얼마 전 전근 온 김태곤 교사였다. 김 교사는 “사실 이미 만들어진 분위기에 누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고, 괜히 어색했는데 오늘 와보니 자주 들러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미 완성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송남초 학교도서관은 완성해갈 것들이 많았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학교도서관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모두가 지속적으로 점검하기 때문이다. 이날 교육영상모임 토론과 함께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선 교과 협력수업, 토론실 설치 등 도서관 문화에 관한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학부모 박용희씨는 “학교도서관 하면 단순히 책을 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공간은 그걸 넘어서 내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장소란 생각이 든다”며 “지금은 교육으로 소통하는 문화를 비롯해 여러가지 문화를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학교도서관의 불은 밤 10시가 넘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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