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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입시 스트레스 물렀거라”

등록 2010-02-28 16:15

올해 전교 차원에서 명상수업을 할 예정인 광주 대성여고 학생들은 “명상을 할 때는 ‘자기주도적인 지속성’과 함께 명상할 시간과 여유를 주는 학교, 교사, 부모님 등 주변의 관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은 명상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광주 대성여고 제공
올해 전교 차원에서 명상수업을 할 예정인 광주 대성여고 학생들은 “명상을 할 때는 ‘자기주도적인 지속성’과 함께 명상할 시간과 여유를 주는 학교, 교사, 부모님 등 주변의 관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은 명상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광주 대성여고 제공
새학기 하루 한번 ‘나’를 만나는 광주 대성여고 ‘명상의 시간’
수업전·2교시뒤 10분 명상·요가
학년별로 시간표 배정, 마음챙겨
감정조절 못하는 학생 평온 찾고
정신집중에도 도움 ‘성적향상 덤’

반일정좌, 반일독서(半日靜坐, 半日讀書). 주자는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으며 옛 성현을 만난다고 했다. 물론 하루 15시간을 각종 문제집과 씨름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겐 부담스러운 주문이다.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라”는 주문에 대해서 청소년들은 이렇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 시간에 책 한 줄을 더 보죠. 아니다. 잠 한 시간 더 자는 게 낫겠네요.”

문제는 ‘나’를 만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이 많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고 우울증이 생긴다. 부모, 친구, 교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서운함도 커져가고, 다툼도 잦아진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문제를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안 간다. <명상과 자기 치유>를 번역하고 <마음 vs 뇌>를 쓴 장현갑 가톨릭 의대 외래교수는 “학교 교육이 입시에만 관심을 쏟으면서 감정조절도 못하고, 정신집중을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건 모두 자기 내면을 바라보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광주 대성여고 안영주(18)양은 고3이 되는 2010년을 밝게 열었다. 안양도 지난해 입시 부담이 커지면서 스트레스는 늘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화내는 횟수가 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특히 저는 친구관계에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친구한테 화를 잘 냈죠. 그게 학업에도 영향을 줬는데 저도 모르게 화내서 사이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즈음, 안양에게 변화의 구실을 마련한 건 ‘명상’이었다. “단순히 친구 잘못이기보단 제 안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다는 걸 명상을 통해 차츰 알게 됐죠. 명상요? 생각도 안 해본 거였죠. 고교생이 시간이 어딨어서 그런 걸 하느냐고 말했었어요.” 얼마 전 안양은 집에서 명상법 가운데 하나인 ‘보디스캔’을 혼자 해봤다. 자기 몸의 일부를 객관적인 인격체로 생각하고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몸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읽는 것이다. 다음날, 머리도 맑아지고 집중도 잘돼 안양이 종종 해보는 명상이다. 안양과 같은 학교 3학년 백수연(18)양도 지난해 여름, 명상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 “그때 세상을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심화반을 자진해서 탈퇴했어요. 수업내용도 허울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공부도 뒷전이었죠. 방학을 허투루 보낸다고 핀잔하시는 엄마와도 자꾸 부딪쳤고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씻을 수 없는 허무감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죠.” 백양은 “감정에 치여 무너지는 상황이었는데 명상을 통해서 나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됐다”고 했다.

두 학생의 마음을 다잡아 준 건 사설 학원이나 명상 테이프가 아닌 ‘학교 명상실’이었다. 물론 두 학생만이 누린 특혜는 아니었다. 지난해 광주 대성여고 1, 2학년 학생 모두는 이 공간에서 각각 일주일에 한 시간, 2주에 한 시간씩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마련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공교육 활성화 방안 가운데 하나인 ‘특색 있는 학교 만들기’ 선도학교로 지정돼 ‘명상과 상담을 통한 행복지수 높이기’를 추진한 결과다.

대성여고 학생들이 참고한 명상 관련 도서
대성여고 학생들이 참고한 명상 관련 도서

처음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광주의 강남 8학군 학교라고 할 만큼 교육열이 높고,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대학 진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학교에서 정규 수업시간에 명상을 한다니 다들 놀랐죠. 대안학교도 아니고 특성화 고등학교도 아니고, 수능 결과가 그 학교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일반계 고교에서 이런 사업을 추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기본적으로 성적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과정도 행복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생각과 공부를 하려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알게 해줘야 한다는 학교의 뜻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죠.” 이 사업을 기획한 박현주(43·사회) 교사의 이야기다.


학생 전체와 교직원들은 ‘매일 아침 10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데 이어 2교시가 끝난 뒤 10분 동안 의자에 앉아서 ‘몸풀기 요가’를 해왔다. 여기에 별도로 각각 1학년은 매주 1시간씩 무용실에서 전문 강사의 도움으로 ‘신체활동을 통한 알아차림 명상(요가명상)’을, 2학년은 2주에 1시간씩 예절실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실시했다. 마음챙김 명상은 지금, 이곳에, 마음을 집중하여 매 순간 깨어있게 하는 것으로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심신수련법이다.

명상을 통해 학습에 도움을 얻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집중력 향상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조하선(18)양은 “수학을 공부할 때 계산을 하면서도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실 그 전엔 내가 그런지도 잘 몰랐는데 최근엔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걸 알아차리고, 고치려고 한 덕에 내신 성적 평균이 20점 가까이 올랐다”고 했다. 박 교사는 “실제 설문조사 결과 2학년 학생 430명 가운데 284명이 명상수업으로 학습 능률이 향상됐고, 237명이 집중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며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반향도 커서 올해는 3학년까지 확대해 전교 차원에서 명상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학력 향상을 돕기도 했지만 애초 학교 쪽에서 명상 수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학생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였다. 명상의 의미와 효과 설명, 몸풀기(이완), 명상실습(호흡 명상, 먹기 명상, 보디스캔 등) 등에 이어 명상일지 쓰기, 느낌과 생각 나누기, 실생활에 적용하기 등 ‘진로교육’과 연계해 수업 프로그램을 짜둔 이유도 여기 있다. 학생들이 쓴 명상일지에는 ‘두통이 나았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명상수업을 한 날은 헛생각이 덜 나서 수업에 집중하려는 의지가 강해졌다’ 등 변화한 점, 깨달은 점 등이 솔직하게 적혀 있다. 박 교사는 “대부분 목표의식 없이 무조건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꿈을 좇는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이고, 공부는 왜 하는지, 그리고 공부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조하선양은 “사실 처음엔 명상이라는 말의 어감이 ‘수행’이나 ‘도 닦는 것’ 정도로 느껴졌는데 이젠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명상의 효과를 지나치게 학업성적이나 학습능력의 향상 여부로 평가하지 말아주세요. 학습능력이 향상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덤이구요. 명상을 통해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삶의 질이 향상되고, 통찰력이 생겨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진정 명상의 가치가 아닐까요.”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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