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과 토론으로 다양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춘천고 김선진(왼쪽)군과 맹태호군의 모습이다.
독서통해 탄탄한 지식 쌓고
다양한 경험 글재료로 활용
논리·맥락 이해능력도 중요
다양한 경험 글재료로 활용
논리·맥락 이해능력도 중요
창의적 인재가 말한다 / 논술·토론대회 상 휩쓴 김선진·맹태호 군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글을 쓰고 사상적 체계를 세운 데는 벗들의 도움이 컸다. 백탑(지금의 탑골공원 안에 있는 탑) 아래 모여 시대를 고민하던 박제가·유득공·백동수 등이 바로 그들이다.
2007년 제2회 전국청소년독서논술·토론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 2008년 제7회 전국독서토론논술대회 전국대회 4인토론 단체전 3위 및 개인부문 4위, 제20회 전국사이버논술대회 1위. 논술과 토론 분야에서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춘천고 맹태호(19)군에게도 이런 특별한 ‘벗’이 있다. 그는 ‘논술과 토론의 달인’이 된 다양한 계기 가운데 하나로 “‘소녀시대’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사적 주제, 다양한 세상 이야기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눠주는 친구의 덕”을 들었다. 제7회 전국독서토론논술대회 전국대회 4인토론 단체전 수상을 함께 나눈 주인공 김선진(19·춘천고)군의 이력도 만만찮다. 2007년 강원학생종합실기대회 수필 부문 2위, 제3회 교육방송 온라인논술경시대회 2위, 2007 청소년사이버백일장 1위, 2009년 제7회 전국 청소년 통일논술토론대회 3위 등이다.
글쓰기 능력이 곧 인문학적 문제 해결력과 같은 말로 쓰이는 때 두 학생의 글은 개성이 강한 걸로 인정을 받아 왔다. 태호 군의 글이 날카롭고 분석적이라면 선진 군의 글은 유연하면서도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각자의 개성이 있는 거죠. 물론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하고 말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을 지도하고 지켜봐 온 안창용 국어교사의 설명이다.
또 ‘글감’을 찾는 나름의 방법론이 있다는 데서도 공통점이 있다. 태호 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춘천 지역에 사는 소설가 서예일 씨 밑에서 글쓰기 지도를 받았다. 태호 군은 “많이들 생각하는 사교육과는 전혀 다른 배움을 얻었다”고 했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시고, 글을 쓰면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도록 틀린 부분을 알려주시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신다”며 “내겐 ‘강사’가 아니라 애틋한 ‘스승’”이라고 했다.
‘기술’ 대신 ‘철학’을 배운 덕에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론도 찾았다. ‘자신이 읽은 것들을 자원으로 끌어와 논리를 세우는 데 활용하라!’ 즉, 배경지식을 카드처럼 꺼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태호 군이 말하는 논술과 토론의 핵심이다. 자원이 될 만한 책의 정보는 주로 윤리교과서를 참고해 얻는다.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책 제목을 적어뒀다가 구입해 읽어보는 것이다. 태호 군은 “그렇게 하면 전후맥락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사실 저도 <논어>를 어떻게 읽냐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작이 어렵지 한 번 해보면 재밌어요. 교과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요.” 이 책들은 글쓰기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한다. 보통 날카롭고 분석적인 글에서 논리를 탄탄하게 하는 방패가 된다. 작년 전국사이버논술대회의 주제였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글에서도 장하준 씨의 <나쁜 사마리아인>을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선진 군은 아주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놓치는 부분에서 글감을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 ‘독창적’이라고 평가 받는 논술과 토론 실력이 쌓인 데는 평소 보고 느낀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주 기록해둔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선진 군은 “특히 싸이월드 미니홈피 다이어리 등 온라인 창구를 적극 활용해 매일 글을 써 본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케이비에스 스페셜을 보고 석유값 폭등에 대해 그야말로 ‘폭발해서’ 글을 썼던 게 기억에 남아요. 글 밑에 선후배나 친구들이 찾아와 댓글 단 걸 통해 다른 생각을 만나보는 것도 좋았죠. 늘 시사적인 것만 쓰는 건 아니에요. 사소하게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글이라도 썼었는데 그것이 재산이 된 것 같습니다.”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제를 놓고 문제집과 우유, 아이스크림을 살 때와 게임 프로그램을 살 때의 심리를 비교해 참신한 이야기로 끌어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두 학생의 공통분모 가운데 또 하나는 글쓰기나 말하기 능력이 ‘오감’을 열어둘 때 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많이 쓰고 읽는다고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전 대화를 많이 나눠요. 특히 부모님, 선생님, 심지어는 택시기사 아저씨 등 시사 문제에 관심도 많고, 생각의 폭도 넓은 어른들과 이야기를 자주 하죠.”(김선진 군) “발품을 팔아 박물관, 전시장을 직접 체험해서 살아 있는 지식을 만나보려고 해요. 글이 아니라 만화처럼 다른 형식의 책도 읽어보려고 하고요. 뭐든지 열어두고 접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언젠가 다 글의 재료가 되죠.”(맹태호 군)
얼마 전, 두 학생이 나눈 ‘깊이 있는 일상의 대화’는 연탄 나르기 봉사 활동을 갔다 쉬는 틈에 나눈 대화였다. 태호 군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읽었던 이야기를 꺼냈고, 주제는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철인정치 이야기로 넘어갔다. 태호 군은 철인이 아무리 위대하고 결함이 없더라도 이런 정치 형태에는 반대하는 쪽이다. 반면 선진 군은 모든 기반이 갖춰져 있다면 이상적일 거라는 쪽이다. 태호 군은 “이렇게 의견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선진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의도인지를 파악해보면서 내 생각을 확장해보게 된다”고 했다.
두 ‘벗’은 이런 ‘언어를 통해 논리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문제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보고 있다. 선진 군은 “논술의 경우는 특히 문제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관건은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호 군은 “이 능력이 글쓰기 분야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와 관련이 깊다는 걸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전 수학은 언어와 별개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언어적인 이해력이 바탕이 돼야 수학 문제도 푸는 것 같아요.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연필 잡고 계산부터 시작하잖아요. 근데 그 전에 문제가 원하는 게 뭔지를 확실히 파악을 하고, 이걸 묻는 거구나 안 다음 푸는 게 맞더라고요.”
춘천/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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