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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연과 교감하는 ‘열린 유치원’ 만들자

등록 2008-11-30 20:59수정 2008-11-30 21:00

생태유아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는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린이집 마당에 있는 모래언덕에서 물을 부으며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생태유아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는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린이집 마당에 있는 모래언덕에서 물을 부으며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랑 부모랑]
기존시설, 교재·교구·놀이기구 꽉찬 ‘닫힌 공간’
“전통 살림집 앞마당 같은 트인 실외환경 필요”
‘행복한 유아교육공간’ 학술대회

우리나라 유아교육기관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개 찍어낸 듯 비슷하다. 교실은 여러 흥미영역으로 나뉘어 있고, 영역마다 갖가지 교재·교구와 비품이 빼곡하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마당에는 커다란 궁전 모양의 놀이기구 세트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공간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사와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지난 22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의 2008년 추계학술대회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자리였다. ‘아이살림’ ‘생명살림’의 유아교육을 추구하는 생태유아교육학회가 ‘한국 유아교육, 행복 찾기’ 시리즈의 첫번째 주제를 ‘공간’으로 잡은 이유는, 유아교육의 근본을 뭘로 보느냐에 따라 공간의 의미와 구성, 활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아교육 공간,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현재의 우리나라 유아교육기관이 교사와 아이 모두에게 진정한 삶과 배움의 마당이 되고 있는지 짚어 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 문제는 뭔가? 생태유아교육학회 회장인 임재택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교육 공간, 비움과 채움의 길을 찾아서’라는 기조발제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유아교육 공간은 행복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아이와 교사 모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닫힌 공간”이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기존 유아교육 공간 구성의 문제점으로 공간이 분절돼 있고, 인위적인 전시물로 채워져 있으며, 교사 주도적으로 공간이 횔용된다는 점을 꼽았다. 대부분의 유아교육기관에서는 하루의 시간을 쪼갠 뒤 정해진 시간에 따라 활동공간이 정해지고, 활동공간은 음률영역, 소꿉영역 등 여러 흥미영역으로 다시 분리되며, 아이들은 이렇게 분리된 공간 속에서 활동한다. 임 교수가 보기에, 이와 같은 공간의 분절은 “제도교육의 산물”이며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구 산업사회의 공간 철학과 일치한다. 임 교수는 “이처럼 분절된 공간은 자발적이고 역동적이며 활기가 넘치는 존재인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내·외 공간이 너무 많은 양의 비품과 교재·교구, 놀이기구들로 꽉 차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공간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장난감이나 교재·교구들은 대부분 환경호르몬과 같은 유해물질을 내뿜는 플라스틱 제품들이며, 노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기능성 놀잇감들이다.


권미량 고신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오리고 그리고 붙이기, 아이보다 더 소중한가?’라는 주제발표에서 “유아교육기관에서 교재·교구의 양이 교육의 질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교사들은 다양한 흥미영역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의 주의집중을 이끌어내기 위해 늘 새로운 교재·교구를 만들어서 제공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바깥놀이’라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은 교사와 아이들의 일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교사들은 늘 가르치고 준비하느라 바쁘고 피곤하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활동하며, 제공된 놀잇감을 갖고 논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는 것은 물론이다.

■ 어떻게 바꿀까? 임 교수는 아이를 돌보는 유아교육기관은 전통사회의 ‘살림집’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림집의 실내는 통합된 공간으로 시간대에 따라 다목적으로 활용되며, 집안 물건도 대부분 자연물이다. 임 교수는 유아교육기관의 실외 공간도 전통 살림집의 앞마당처럼 넓고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며 주변 이웃과 정을 나누는 생활공간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당에 감나무 등 유실수를 심거나 자투리땅에 텃밭을 일구면 아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공간을 생태적으로 꾸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공간의 통합이다. 권 교수는 “본성이 활동적인 아이들이 최대한 생명력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감성과 지각을 연결해 바로 감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능동적인 환경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실내와 실외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미 경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들의 삶과 배움의 공간, 교실이 전부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교육이 곧 ‘살아가는 공간’에서 이뤄진다고 볼 때, 삶과 배움의 장소는 교실뿐만 아니라 마당, 복도, 화장실 등 유치원 전체이며, 지역사회, 자연과 같은 바깥 세계로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비품 및 교재·교구도 자연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임 교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재·교구는 자연”이라고 했다. “나뭇조각, 돌, 조개 등 자연에서 구한 놀잇감은 일정하게 노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놀기 위해 익혀야 할 기능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교사의 간섭 없이 놀이를 창조하며 놀고 싶은 대로 놀 수 있어, 창의성과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 공간’ 위한 작은 실천 3가지

이명환 인천대 교육대학원 교수(유아교육 전공)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공간은 자연 그 자체”라고 본다. 이 교수는 22일 열린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주제발표를 통해, 이런 관점에서 교사와 아이의 행복한 공간을 위한 작은 실천 세 가지를 제안했다.

1.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를 ‘자연의 날’로 지정해 근처 산이나 들, 논, 강, 저수지, 갯벌, 바다 등에서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활동을 한다.

2. 무한한 공간에서의 자연체험 활동이 여의치 않은 유아교육기관에서는 근처의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이용해 아이들이 꽃이나 채소, 과일나무 등을 직접 심고 가꾸며 일년 내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생태체험뿐만 아니라 공간이 주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누리게 된다.

3. 실내 공간을 아이들의 움직임에 목적을 두고, 융통성 있게 흥미영역을 구성해 아이들의 활동이 제약받지 않도록 한다. 실내에서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교구나 도구들을 재배치하거나 복도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예다. 더 나아가 일년에 한 번 정도 ‘장난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아교육기관’ 프로젝트를 1~3개월 정도에 걸쳐 실시하면 실내에서도 단기적이나마 공간의 풍요로움을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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