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옆신호등’ 어린이영어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북시터’가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도서관옆신호등 제공
[아이랑 부모랑]
우리말 책 충분히 접한뒤 시작
발음 안 좋아도 직접 읽어줘야
단기 성과 집착 말고 꾸준하게
우리말 책 충분히 접한뒤 시작
발음 안 좋아도 직접 읽어줘야
단기 성과 집착 말고 꾸준하게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림책을 많이 읽어줬더니 어느 날 아이가 혼자 책을 줄줄 읽더라는 얘기는 부모들 사이에서 이젠 놀라운 일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풍부해져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게 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영어 앞에 서면 부모들의 생각은 180도 달라진다. ‘책을 읽어준다고 과연 영어가 될까’ 하고 의심한다.
우리말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영어는 알파벳부터 시작해 파닉스(철자의 소릿값 익히기)를 가르치고 단어를 외우게 한다. 영어 독서지도 전문가인 ‘도서관옆신호등’ 어린이영어도서관 이지영 수석연구원은 “부모들의 조바심이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준다”며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만 접는다면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 좋은 영어교육은 없다”고 말한다. 이 연구원의 도움말로 ‘그림책 영어교육법’에 대해 알아봤다.
■ ‘그림책 영어’ 왜 좋은가? 우선 그림책에는 풍부한 그림이 있어서 영어를 몰라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림만 보고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책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모르더라도 이야기 안에서 문장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문장을 통해 단어 뜻까지 알게 된다. 또 언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인데, 그림책에는 영어권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담겨 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감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정서적 교감도 할 수 있다. 요컨대 영어교육과 독서교육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영어 그림책 읽어주기의 장점이다.
■ 언제부터 시작할까? 중요한 것은 우리말 그림책을 먼저 충분히 읽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연구원은 “우리말 그림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이해력이 풍부하고 배경지식도 많아 영어 그림책도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도서관에서 독서지도를 했던 두 아이를 예로 들었다. 둘 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 처음 왔는데, 한 명은 3년 동안 영어유치원에 다닌 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그동안 영어교육은 받지 않고 우리말 그림책을 꾸준히 읽어 온 아이였다. 그런데 8개월 가량이 지나자 두 아이의 영어 수준은 비슷해졌다. 일찌감치 엄마의 강요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아이는 영어를 지긋지긋하게 여겨 영어 동화책을 멀리한 반면, 우리말 그림책을 충분히 읽은 아이는 생각하는 힘이 쌓인데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 훨씬 빨리 받아들인 것이다. 이 연구원은 “5살 때와 1학년 때는 인지능력과 경험의 폭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는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모국어가 아니라 일부러 배워야 하는 외국어인 만큼, 지적 수준이 높으면 훨씬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어떤 책을 읽힐까? 처음 영어 그림책을 접할 때는 짧은 구문이 반복되고, 영어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 있는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국내에 <곰 사냥을 떠나자>로 번역돼 출판된 헬렌 옥슨베리·마이클 로젠의 <위아 고잉 온 어 베어 헌트>, 아일린 크리스털로의 <파이브 리틀 몽키스 점핑 온 더 베드>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아이의 관심사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 남자 아이들은 공룡이나 자동차에 푹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이들에게는 영어 그림책도 관련 내용을 다룬 것들을 골라주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영어 그림책을 보는 아이의 경우 ‘영어 나이’에 맞게 유아용 도서를 읽어주는 게 좋지만, 간혹 ‘유치하다’거나 ‘아기 책’이라며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이때는 유아용보다는 약간 수준이 있는 책 중에서 또래의 삶을 다루고 있거나 이미 우리말 그림책 등을 읽어 알고 있는 친숙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골라 주면 된다.
■ 어떻게 읽어줄까? 곧바로 본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표지 읽기부터 하는 것이 좋다. 책 표지에는 대개 등장인물이 나오고, 본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암시해주는 그림이 실려 있다. 먼저 제목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준 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 본다. 책 표지를 보면서 본문에 나올 핵심 단어들을 미리 알려 주면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문을 읽어줄 때 한 줄, 한 줄 읽어 가면서 해석을 해주는 것은 금물이다. 만일 아이가 답답해 한다면 해석해주지 말고 우리말로 상황을 설명해줘 이해를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간혹 우리말로 번역된 그림책과 원서를 놓고 동시에 읽어주거나 시차를 두고 두 권을 번갈아 보여주는 부모들도 있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칫 문자 해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작품이 주는 재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림책은 지겨운 ‘교재’가 되기 십상이다.
어떤 부모들은 발음에 자신이 없다며 책에 딸린 테이프를 틀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오디오에서 기계적으로 흘러나오는 원어민 목소리보다 친근한 부모의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아이가 영어책과 가까워지게 하려면 발음이 서툴더라도 부모가 읽어주는 게 좋다. 테이프는 부모의 목소리와 그림을 통해 책에 충분히 익숙해진 뒤 틀어주면 된다. 이 연구원은 “발음은 나중에 테이프를 틀어주면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하다”며 “아이들이 부모의 발음을 따라할까 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 언제부터 시작할까? 중요한 것은 우리말 그림책을 먼저 충분히 읽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연구원은 “우리말 그림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이해력이 풍부하고 배경지식도 많아 영어 그림책도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도서관에서 독서지도를 했던 두 아이를 예로 들었다. 둘 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 처음 왔는데, 한 명은 3년 동안 영어유치원에 다닌 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그동안 영어교육은 받지 않고 우리말 그림책을 꾸준히 읽어 온 아이였다. 그런데 8개월 가량이 지나자 두 아이의 영어 수준은 비슷해졌다. 일찌감치 엄마의 강요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아이는 영어를 지긋지긋하게 여겨 영어 동화책을 멀리한 반면, 우리말 그림책을 충분히 읽은 아이는 생각하는 힘이 쌓인데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 훨씬 빨리 받아들인 것이다. 이 연구원은 “5살 때와 1학년 때는 인지능력과 경험의 폭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는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모국어가 아니라 일부러 배워야 하는 외국어인 만큼, 지적 수준이 높으면 훨씬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어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아이가 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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