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교육 토론회-세션1’에서 전문가와 시민 패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송인수 사교육 걱정 없는세상 준비위원장, 이윤미 교육연대 정책실장, 손종현 전 교육혁신위 상임위원, 임병구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공동회장(사회), 시민패널 이진희·정혜란·서진아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창간 20돌 기념 연중기획] 진보·개혁에 따져묻다
교육(상) 평준화, 폐기냐 업그레이드냐?
교육(상) 평준화, 폐기냐 업그레이드냐?
고교 평준화의 근본을 뒤흔드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으로 교육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공교육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모든 잘못을 평준화 탓으로 돌리는 보수의 격한 목소리 앞에서 진보·개혁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는 우리 시대 최고의 난제로 떠오른 교육 문제를 진보·개혁 세력에게 따져묻는 첫번째 주제로 택했다. 일선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진보·개혁 성향의 교육전문가들에게 그들의 정책 대안과 생각을 따져물었다.
2차례 진행된 토론에는 서울 강남북과 지방 등 전국에서 모두 4명의 학부모가 ‘시민패널’로 참가했다. 전문가들로는 박거용 민교협 공동의장(상명대 교수·영어교육), 임병구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이윤미 교육연대 정책실장(홍익대 교수·교육학) 등 진보진영의 교육전문가들을 비롯해, 참여정부의 교육개혁안을 만드는 데 관여한 손종현 전 교육혁신위 상임위원(경북대 입학사정관)과 송인수 전 좋은교사운동 대표(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준비위원장), 진보신당과 창조한국당의 교육공약을 만드는 데 각각 참여한 이범 곰티브이·교육방송 강사와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 등이 나섰다. 교육현장의 전문가로는 현종오 차세대과학교과서연구개발위원장(서울 월계고 교사)과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가 참가했다. 토론회 사회는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과 김호기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 공동대표(연세대 교수·사회학)가 각각 맡았다.
#1평준화에 딴죽 걸기-현장의 목소리
평준화는 진보·개혁 진영의 지고지순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거치면서 평준화는 보수 쪽으로부터 낡은 것, 폐기처분해야 할 것,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공격받았다. 평준화는 박물관에 보내 버릴 유물이 돼버린 것인가. 평준화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평준화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
<한겨레> 창간 20주년 기념 ‘교육 토론회-세션1’에서 평준화, 그리고 평준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물려 있는 특목고·자사고에 대한 학부모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서열화된 한국 사회에서 평준화는 이상일 뿐이라는 학부모 이진희씨와, 평준화의 포기가 낙오자만 양산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현실과 당위의 커다란 간극이었다.
임병구 현재 평준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환경이나 교육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진희(이하 이진) 전교조의 고교 평준화 주장, 이상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가 학부모 회장을 하고 있는데, 엄마들이 모이면 ‘그 부모는 어느 대학 나왔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대학의 서열화가 너무 뚜렷하다. 이런 마당에 고교 평준화를 계속 내세운다고 실현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명박 정부의 자율형 사립고나 기숙형 공립고, 특성화 고교 등이 점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흥미나 적성 등을 고려해 다양하게 평가해 뽑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개혁 진영은 우리 아이가 체육에 특기가 있다면 그런 특기나 적성, 포부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이 뭐냐.
송인수 선진 국가들의 학교는 다양하지 않고 오히려 단선형이다. 평준화가 획일성을 조장한다는데, 비평준화 학교는 획일적 교육이 아닌가? 오히려 더 획일화돼 있다.
이진 어차피 학부모들의 최종 목표는 우리 아이가 얼마나 좋은 대학에 가느냐는 것 아니겠냐. 참여정부 때 대책이나 전문가들의 얘기가 피부에 와닿을 만큼 현실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 정부 정책은 어쩌면 이렇게 우리 마음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좋아 보인다. 예를 들어, 좋은 학원 선생님들을 찾아 대치동, 압구정동 등으로 한두시간씩 차로 태워 보내는데, 그럴 바에는 정말 좋은 학원 선생님을 방과후 학교로 모시면 공교육 안에 아이들을 정착시키는 것 아니냐.
송 교육 목표를 아예 ‘입시 경쟁에서 우리 학교, 우리 아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하자’ 이런 식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교사도 학부모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를 못한다. 전인교육도 하면서 좋은 대학도 가야 한다고 그런다. 현 정부 정책이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줬다고 반가울지 모르겠지만,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아이는 제한적이다. 아니, 없을 가능성이 더 많다. 결국은 탈락자가 되고 실패자가 된다. 영화관에 가서 앞사람 머리 때문에 안보인다고 한 사람이 일어나면 주위 사람들이 ‘앉으라’고 한다. 그래도 앉지 않으면 모두 일어나게 된다. 결국은 모두의 다리만 아픈 거다.
이진 물론 대학까지 평준화시키고 지금 사회 구조를 다 깰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그건 할 수 없고, 이미 생긴 외국어고를 없앨 수도 없지 않냐. 그럴 바엔 문을 넓히는 게 낫지 않겠나.
송 그건 외고의 원래 기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정상화할 수 있다. 그래도 안되면 없애야 되지 않겠냐. 입시경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학교를 100개 이상 만든다고 치자. 교사는 큰 문제 없다.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한해에 학생들, 그것도 공부 잘하는 애들이 죽어간다, 자살을 한다.
이진 이미 고통받고 있지 않나. 구조가 이런데 어떻게 하나. 이미 사회가 이렇게 돼 있는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안될 것 같다. 결국 참여정부도 못했지 않냐. 하지만 현 정부는 전봇대도 뽑아버리지 않았나.
#2 ‘평준화 업그레이드’-전문가 논쟁
‘교육 토론회-세션2’에선 전문가들 간에 평준화를 둘러싼 좀더 깊은 논쟁이 벌어졌다. 지금까지의 논의틀을 넘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논의를 해보자는 뜻에서, 경제학자인 홍종학 경원대 교수, 이범 곰티브이·교육방송 강사, 현종오 차세대 과학교과서연구개발위원장(서울 월계고 교사) 등 교육계 외부인사와 현장 전문가들을 초청했다.
보수 세력의 ‘하향 평준화’ 주장에 대해 정유성 교수는 “어떤 조사 자료를 봐도 하향 평준화는 근거가 없고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학력평가(피사·PISA) 결과를 보면 한국이 여전히 최상위권”이라며 “다만 최상위 5%의 문제해결 능력 순위(3위)가 전체학생 순위(1위)보다 조금 낮게 나온 것을 놓고 ‘하향 평준화’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는 과학과 수학 성적을 예로 들며 “대학입시를 위해 죽어라고 주입식, 암기식 교육만 한 결과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학습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범 강사는 진보든, 보수든 지금까지 평준화의 개념을 대단히 잘못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시험 학군배정제 △교육과정과 학제의 획일화 △실력의 하향 평준화 등 적어도 세가지 의미를 섞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험 학군배정제라는 의미에서의 평준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데 대다수 전문가들은 동의했다. 다만 업그레이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강사는 교육과정이나 학제와 관련해 “중·고교를 통합해 무학년제로 운영하면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열어주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김호기(이하 김) 여론조사를 보면, 평준화 유지에 국민들의 60%가 지지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특목고나 자사고에 대해서도 60%가 지지한다는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평준화 유지만 주장하다 오히려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은 아닌가?
홍 보수 쪽에서 평준화에 대해 자율화라는 담론으로 대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선택이 두개 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핀란드에서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굉장히 다양한 교육과 자율적 교육을 하고 있다. 뒤에 논의하겠지만 핀란드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범 의무교육 등을 전제로 하려면 평준화의 첫번째 의미, 즉 무시험 학군배정제를 지켜야 한다. 무시험 학교 배정은 선진국에서도 다 따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책임교육, 맞춤교육, 창의력 교육을 결합해야 한다.
정유성(이하 정) 보수 쪽이 얘기하는 전반적인 학력 하향평준화는 온갖 교육기관의 조사 자료를 봐도 증거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력평가(피사) 결과를 보면 오히려 15살 집단의 학력은 허리가 튼튼해서 좋은 성적이 나온다. 상위 5%만 비교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데 이걸 근거로 ‘하향 평준화’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다. 2006년 피사 결과를 보면 과학 성적이 10위권 밖으로 떨어졌는데, 이건 과학에 대한 학습 욕구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죽어라고 주입식, 암기식 교육만 한 결과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지식정보사회에서 필요한 핵심 역량인 창의력은 학습 흥미나 학습 동기에서 나온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교육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이다.
김 미용고나 요리고, 애니메이션고 같은 것은 어떻게 보나?
박민 다양성 교육을 생각해 특성화 고교라는 게 출현했다. 서울에도 지금 많이 있다. 그런데 설립만 해놓고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런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가 없고, 가려고 하는 학생도 없다. 성적에 떠밀려 억지로 간다.
김 실제 평준화된 학교에서 일부 아이들이 못따라오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니냐.
현 실제로 심하다. 그러나 한줄로 세우기가 아니라 여러줄로 세우지를 못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범 자율성과 다양성의 주체는 학생 개인이다. 이명박 정부 식의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개별 학생의 입장에서 교육 과정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 지금 중학교 과정이 엉망이다. 학원 뺑뺑이 돌아서 특목고 간다. 중·고교 과정을 통합해 무학년제로 운영하면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열어주자.
정 중·고교 통합은 맞는 방향이다. 학교, 교실 안에서 다양화도 좋다. 그런데 교사가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겠나. 게다가 교장·교감들은 중·고교 통합 문제를 자리 문제로 볼 것이다.
김 중·고교 통합이 가능한가?
이범 기술적으로는 쉽다.
홍 평준화 안에 획일적 요소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평준화 안에서 다양한 교육을 하려면 엄청나게 투자를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우리나라의 학급당 인원이 가장 많다. 정부는 정보화 교육 한다면서 엉뚱하게 텔레비젼을 사주는데 한쪽에선 놀고 있다. 그런 것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
#3 특목고·자사고는 다 없애 버려?
평준화의 대척점에는 특목고·자사고가 있다. 특히 외국어고는 평준화의 약점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언어 전문인력 육성 교육기관으로 출발했지만, 취지는 오간 데 없고 평준화를 압도하는 유망한 ‘입시 교육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 때 경기도 51개 전체 선거구에서 21개 선거구 당선자들이 특목고·자사고·기숙형 공립고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짭잘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교육토론회-세션2’에 참가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목고·자사고 ‘폐지’와 ‘축소’로 견해가 엇갈렸다. 몇몇 전문가들은 ‘특수한 학생’들을 위한 장치로 ‘특수 목적 방과후 학교’와 ‘사이버 학교 활용’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김 특목고·자사고 문제를 보자. 민노당과 진보정당 쪽은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대선 기간과 총선 동안 창조한국당과 민주당은 차터스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범 특목고는 수가 적으면 부작용도 적다. 성적 위주로 선발하지 않고 영재도 제대로 뽑을 수 있다. 지금은 수가 많아지니까 어렵다. 외고가 심각한데, 숫자를 줄이면서 중고교 6년제로 해야 한다. 3개국어 인증 못받으면 졸업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교과과정을 외고에 맞게 만들고, 학제도 세심하게 연구해야 한다. 그런 전제라면 유지시켜야 한다.
현 이범씨 의견에 찬성한다. 역기능을 몰라서가 아니라 순기능 살리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과학고 나와서 의대 많이 간다. 문제다. 엄청난 혜택을 받은 만큼 졸업 후에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
박 특목고라는 것이 학생들을 격리수용하는 것이다. 노래 잘하는 애들끼리만 놀게 하고. 공 잘차는 애들끼리만 놀게 하고. 영어 잘하는 애들끼리만 놀게 하고. 그게 가져올 문제까지 같이 생각해야 한다.
홍 특목고가 입시 전문학원이 돼서 문제인데, 그 문제를 일단 제쳐놓고 그런 사람들을 따로 모아 교육시키는 게 바람직하냐는 문제가 있다. 미래교육 입장에선, 외국어 대여섯개 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특수학교에 가둬놓고 교육할 거냐. 그건 아니다. 방과후 학교로 할 수가 있다. 특수목적고가 아니라 ‘특수목적 방과후 학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범 결국 보편적 교육에 충실하면서도 특수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로 홍 교수가 얘기한 지역단위 혹은 대지역 단위로 방과후 학교 모델을 운영하는 것이다. 또 하나가 사이버 학교다. 이미 대학 형태로 있고 사이버 고등학교도 있다. 이를테면 수학 영재를 학교 교사가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으면 사이버 학교로 편입을 해줘서 수준높은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예술은 사이버 보다는 방과후 모델이 맞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단순한 지식전수 교육은 대부분 사이버 또는 멀티미디어 수준에서 대체가 가능하다고 본다. 주입식 교육은 이런 수단으로 대체하고, 일상 교사의 역할은 학생 개개인에 관심을 갖고 주입식으로 안되는 영역에 치중하게 해야 한다.
이춘재 이용인 황보연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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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토론회-세션2’가 열린 지난달 20일 한겨레신문사 옥상 하니동산에서 교육 분야 전문가와 학부모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유성 서강대 교수, 박거용 민교협 공동의장, 현종오 차세대과학교과서 연구개발위원장, 김호기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 공동대표, 박민옥(학부모), 이범 곰티브이·교육방송 강사, 홍종학 경원대 교수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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