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진로 교육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
성장소설에는 대부분 운명적이라 할 수 있는 스승과의 만남이 있다. “선생님, 언제부터 절 가르쳐 주실 건가요?”, “이미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전 아직까지 아무것도 못 배웠는데요!”,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직 몰라서 그렇지”.
판타지 소설 <어스시의 마법사>에 나오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다. 마법사가 되려는 소년이 대현자의 제자로 들어가지만 스승은 명시적 가르침을 주기보다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스승은 이미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관계에서의 과제는 그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제자가 배움에 눈뜨는 것이다. 배움이 차오른 어느 때가 되면 스승은 제자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게 되리라.
전통적인 도제교육에서 스승은 그 직업 분야의 장인이나 대가였다. 음악가가 되려면 음악가에게, 전사가 되려면 전사에게 찾아가 그와 삶을 함께하면서 배웠다. 스승은 존재 자체로 스승이며, 가르치기 이전에 이미 가르치는 존재였던 셈이다. 제자들은 직업 기술과 함께 스승의 몸짓, 눈빛, 말투를 배웠으며 궁극적으로는 직업과 삶을 대하는 정신과 태도를 배웠다.
오늘날 교사는 학문적 지식에 기초한 교과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교사 양성 과정도 분과 학문을 연마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그런데 교직에 들어선 이들이 정작 마주치는 것은 ‘아이들의 삶’이다. 뭘 물어도 “몰라요”와 “그냥요”라고만 답하는 심드렁한 아이, 기초학습이 안 되어 있는 아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 경쟁적 교육문화에 주눅든 아이. 이 아이들에게 진로와 적성을 찾아준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단순 지식전달자를 넘어서려는 교사는 우선 아이들의 삶을 배우는 도제가 돼야 한다. 교사가 풀어야 하는 첫 숙제는 아이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는 법이다. 때로는 위악이나 폭력으로까지 나타나는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변호사나 의사들이 판례나 임상사례를 분석하듯 동료 교사들과 사례 연구 모임을 만들어 봐도 좋으리라.
또 진로지도를 위한 다양한 사회 자원 목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일 수는 없다. 상담센터, 대안학교, 작업 공방, 문화기관, 각 영역의 전문가 등 사회의 자원들을 적절한 때에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진로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학교 안에서 다 해결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지고, 아이들의 요구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건 한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는 가르침은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교수기법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진로교육 역시 여러 정보와 기법이 도움이 되지만 이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진로교육의 우선적 과제는 자라나는 세대가 자기 존중감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과 나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가르침과 배움, 공히 두 영역의 전문가여야 할 것이다.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세상에서 교사는 학생이 사회와 잘 소통하고 만나도록 중심끈 구실을 해줘야 한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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