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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TV·비디오, 교육용이라도 아기 땐 참으세요

등록 2008-02-18 18:43

TV·비디오, 교육용이라도 아기 땐 참으세요
TV·비디오, 교육용이라도 아기 땐 참으세요
[아이랑 부모랑] 시지각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수동적 학습 태도 키울 수 있어
시청 땐 부모가 함께 상호작용을
요즘 아이들은 영상물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걸음마를 채 떼기도 전에 영어, 한글, 숫자, 음악 등 지능과 감성을 높여준다는 영·유아 교육용 영상물들이 아이들의 귀와 눈을 자극한다. 맹목적인 조기교육 열풍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아동발달 및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영·유아용 비디오의 교육효과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체가 가진 특성상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선, 정보 전달의 일방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기숙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상물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을 배워야 할 시기인 영·유아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교육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실제 구체물을 만지고 조작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의 뇌는 태어나서 만 3살까지 빠르게 발달하는데, 이 시기에 비디오를 많이 보여 주면 아이의 뇌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시기에는 오감이 골고루 자극받아야 뇌가 균형있게 발달할 수 있다”며 “현란한 화면의 비디오를 많이 보여 줄 경우 시지각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아이들은 다른 놀이는 싫어하고 더욱 비디오에 매달리게 된다. 이 교수는 “이런 아이들이 비디오만 보는 이유는 다른 감각이 발달되지 않아서인데 부모들은 흔히 아이가 비디오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도 “영·유아가 영상물이 끝날 때까지 집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발달단계에 비춰 매우 부적합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비디오를 통한 교육이 아이에게 수동적인 학습 태도를 길러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 교수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는 수동적인 특성을 가진 매체여서 아무리 내용이 교육적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언어나 지적 능력 발달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방적으로 내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영상물에 길들여지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 좋아할 뿐, 머리를 굴려 생각하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 능동적으로 배우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영상물에 익숙해질 경우, 나중에 밋밋한 책으로 공부해야 할 때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더욱 강하고 빠른 자극을 찾게 될 가능성도 크다. 신 교수는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를 보면, 영·유아기에 텔레비전을 본 시간이 하루 1시간 늘어날 때마다 이후 취학 연령이 됐을 때 주의집중력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10%씩 높아지며 언어발달이 지연될 확률이 최고 2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영상물 시청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부모가 함께 시청하면서 적절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것이 미국의 교육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교육 효과를 종단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다. <세서미…>는 미국 정부가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빈곤층 미취학 자녀들을 겨냥해 제작됐지만 중산층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중에 빈곤층과 중산층 자녀의 시청 전후 교육 효과를 비교해 보니 중산층 자녀에게 더 큰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중산층의 경우 부모가 함께 보면서 설명을 해주는 등 아이와 상호작용을 한 반면, 빈곤 계층은 아이가 혼자 보도록 방치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아이의 발달 단계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안수경 간사는 “영상물은 만 3살 이후에 보여주되, 만 3~4살 때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영상물이 좋으며, 언어교재 등 본격적인 교육용 영상물은 만 5~6살 때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글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만 3살 이전 시청은 ‘절대 금물’

영·유아기에 영상물을 많이 볼 경우 아이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지난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의뢰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50개월 미만 어린이 중 정상집단 120명과 소아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은 임상집단 117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연구 결과를 보면, 생후 24개월이 되기 전에 영상물을 보여준 비율이 정상집단은 10.3%인 반면, 임상집단은 22.6%나 됐다. 생후 12개월 미만까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영상물을 보여준 비율은 임상집단(22.8%)이 정상집단(3.2%)의 7배에 이르렀다.

특히 임상집단 가운데 비디오 증후군 증상을 보인 유아들만을 대상으로 영상물 시청 실태를 살펴본 결과, 57.1%가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영상물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신 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어릴 때부터 장시간 영상물에 노출될 경우 발달상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얼마나 영상물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신 교수는 “최소한 세 돌까지는 안 보여 주는 것이 좋고, 그 이후에도 하루에 30분~1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안수경 간사는 “만 3~4살 아이의 경우 하루에 30분을 넘지 않도록 하고, 만 5~6살 아이도 30분 이상 연속으로 영상물을 보는 것을 피하고 하루 총 시청 시간도 50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영상물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온 미국 소아과학회는 만 2살 이전에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시청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부모의 태도다. 신 교수의 2004년 연구에서도 아이 혼자 영상물을 본다는 비율이 정상집단은 22.6%인 반면, 임상집단은 42%나 됐으며, 자녀가 영상물을 보는 동안 부모는 집안일을 한다는 비율은 임상집단(70.4%)이 정상집단(25.6%)의 세 배에 육박했다. ‘애 보기용’으로 비디오를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신 교수는 “아이가 혼자 영상물에 빠져들지 않도록 부모가 반드시 곁에서 말을 걸어주는 등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규 기자

<자녀에게 긍정적인 텔레비전 시청 습관을 들이려면>

◇시간을 제한하라=아이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컴퓨터 게임을 하루에 1~2시간 이상 하지 않도록 한다.

◇시청 계획을 세워라=마구잡이로 채널을 돌리며 보지 말고, 볼 만한 프로그램을 정한 뒤 텔레비전을 켜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끄도록 한다

◇부모가 함께 본다=아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대안을 제공하라=텔레비전 시청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놀이나 독서, 취미 생활, 또는 가족·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제시한다.

◇모범을 보여라=부모가 솔선수범해 시청을 자제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 보면 아이는 부모를 따라 한다.

자료 : 미국 소아과학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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