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4학년 과학에 강낭콩이나 봉숭아를 심고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는 단원이 나온다. 4월 중순무렵 아이들에게 주말 숙제로 화분에 강낭콩이나 봉숭아를 심어오라고 했다. 다음 월요일,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손에 손에는 자기가 심은 작은 화분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아이들 화분을 쫄로리 놓았다.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다. “얘들아, 식물도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 더 잘 자라고 튼튼해진다는 거 아니? 그래서 좋은 음악도 들려주고 사랑스런 말도 건네야하는 거야. 날마다 너희들이 심은 씨앗에게 다가가 빨리 나오라고, 너가 보고 싶다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말도 건네고 물주는 것도 잊지 마. 그러다보면 어느새 땅을 뚫고 쑤욱 새싹이 올라올 거야.”
아이들은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화분에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기 화분에만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동무들의 화분이 말라있으면 그 화분에도 물을 주고, 그 사실을 모른 아이들이 물을 주고 또 주고 하다보니 흙이 새어나오기도 하고 물이 흘러넘쳐 창가에는 흘러내린 물과 흙으로 질펀한 날이 많았다. 가끔씩 “선생님, 누가 제 화분에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을 것 같아요”하기도 했다. 소현이와 다빈이처럼 자기 강낭콩에게 ‘새록이’와 ‘쥬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잘 자라기를 바라기도 했다.
일주일에서 열흘쯤 되니 아이들 화분에 초록의 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화분을 들고 나에게 와서 “선생님, 제 화분에 싹이 났어요." "이게 풀이 아니라 싹이 난 게 맞지요.” “야~ 내 화분에 싹이 났다.”좋아라 소리쳤다. 우리 아이들은 때마다 관찰기록장에 조금씩 생명이 움트는 모습을 기록하고 그때그때마다 작은 쪽지에다 짧은 편지를 쓰곤 했다. ‘이제야 너가 세상에 나왔구나. 많이 보고 싶었어 고마워.’ 그렇게 맨 흙만 보였던 화분에 여린 싹이 트고 떡잎이 떨어지고 줄기와 잎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 각각의 모습들로 초록의 목숨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보기에 참 좋았다.
그런데 지난 주에 아이들 여럿이 모여들어 자기 화분에 싹이 뽑혀져나갔다고, 뿌리가 뽑힌 채 버려져있다고, 줄기가 부러졌다고 아우성이었다. 쓰레기 봉투에는 뽑혀진 봉숭아 싹들이 보였다. 이럴 수가!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우리 반 아이들이 그랬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왜? 정말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시원스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말 못하는 식물이라고 함부로 뽑아버리고 부러뜨린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사람들 벌 받을 거야. 나빠!” 자기 것이 뽑혀나간 아이들은 무척이나 속상해하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쪽지를 썼다. 한창 잘 자라고 있었던 아이들은 특히 많이 슬퍼했다. 난 그 아이들에게 씨앗을 다시 주고 심게 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또다시 갓 나온 싹들이 뽑혀나간 일이 있었다. 안되겠다 싶었다.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봐야 했다. 실망스런 내 마음과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꼭 알아야겠다는 긴 설득 끝에 아이들에게 작은 쪽지를 한 장씩 내주었다. ‘얼마 전 ○○,○○이와 싸웠을 때 그만 샘이 나서 ○○이 뿌리 하나를 뽑았습니다. 제가 식물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아요. 죄송해요’, ‘나는 나의 뿌리를 뽑았다. 자꾸 꼬부라지고 잘 안 자라기 때문에 뽑았다. 미안해 새싹아, 나는 너를 잘 안 자란다고 아무렇게나 뽑았어. 저는 식물이 생명이 있는 줄 알면서도 뽑았어요.’ ‘내가 4월이 끝날 무렵 ○○,○○의 싹을 뽑아낸 것이 아니라 살짝 들추어 놓았다. 그래서 ○○,○○에게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밖에 “물을 많이 주다가 뿌리가 드러나 일으켜 세우려는데 뽑아졌다, 뽑혀진 뿌리를 다시 심으려다 쓰러져서 할 수 없이 버렸다. 부러진 줄기가 있어서 세워주지 않고 그냥 버렸다”는 내용들이 있었다.
한숨이 나온다. 아이들이 이랬구나. 동무랑 싸워서 미운 마음에 말 못하는 식물을 뽑는다. 이제 겨우 싹이 터 힘겹게 자라는데 꼬부라져 자란다고 버린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남의 것에 손을 대고 들추어내고 한다. 이것이 아이들 모습 그대로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매듭을 풀듯 우리 아이들의 맺히고 꼬인 마음을 풀어나가자. 시간이 꽤 걸리겠다.
주순영 / 삼척 정라초 교사 wnejejr@hanmail.com
주순영 / 삼척 정라초 교사 wnejejr@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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