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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바랭이·강아지풀이 부르는 소리 들리지않니?

등록 2006-09-03 20:58수정 2006-09-04 17:43

바랭이로 우산을, 강아지풀로 수염도 만들어 놀았다.
바랭이로 우산을, 강아지풀로 수염도 만들어 놀았다.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또륵또륵 찌륵찌륵 여름이 한 풀 꺾이니, 어느새 가을 풀벌레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 아마 논에는 벼가 많이 자랐을 거야. 풀벌레 소리는 벼과, 사초과 풀이 많이 자랐다는 걸 알려 주지. 피나 방동사니는 논에서 많이 자라고, 밭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바랭이가 많이 자라. 지금쯤 밭에는 바랭이랑 강아지풀이 우거져 있을 거야.

하늘이 찌뿌둥 비가 내릴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지. 정의공주 텃밭 있는 쪽으로 나가서 바랭이랑 강아지풀 가지고 놀아야지. 요즘은 텃밭이 바쁘다 바빠. 한동안 한가하고 사람도 드물더니 여기저기서 밭을 갈아엎고 있어. 여름 동안에 쑥쑥 자라 올라온 풀들을 모두 뽑아내고 김장 배추 심으려고 바쁘지. 밭에서 뽑아낸 풀 더미 사이에 방동사니, 강아지풀 따위가 보여. 방동사니는 논에만 있지 않고 이렇게 길가나 텃밭에서도 많이 자라. 방동사니로 ‘친구짱구놀이’ 하자. 나무가 방동사니를 보더니 너무 반가워해. 얼마 전 ‘느티나무 방과후’에서 이쪽으로 잠자리 잡으러 나왔다가 잠자리는 얼마 안 잡고 방동사니 가지고 하는 ‘친구짱구 놀이’에 오히려 열을 더 올렸었거든.

방동사니는 줄기가 삼각형이야. 참 신기하게도 바랭이처럼 벼과 풀은 줄기가 원통형인데 방동사니처럼 사초과 풀은 줄기가 삼각형이지. 바랭이는 원통형 줄기로 부드럽게 이쪽저쪽으로 휘어지면서 웬만해서는 줄기가 부러지지 않아. 하지만 방동사니는 튼튼하고 단단해 보이는 삼각형 줄기로 휘어지지도 않고 곧게 곧게 위로 뻗지. 그 모습이 정말 굳세 보이기도 하고 꼭 고집불통 같아 보이기도 해. 삼각형으로 된 방동사니 줄기를 끊어 친구랑 양쪽 끝을 잡고 줄기를 가르는 거야. ‘친구짱구 친구짱구’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줄기를 갈라 ‘갈지자’가 되면 ‘짱구’, 살짝 돌려 ‘네모 모양’이 되면 ‘친구’가 되는 거지. 나무랑 단이는 친구가 되고 싶은지 조심조심 ‘친구짱구 친구짱구’ 하면서 가르는데 잘 되지 않아. “아, 왜 이렇게 친구가 안 되는 거야!” 친구가 나올 때까지 계속 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친구짱구 친구짱구’ 해. 휴, 천만다행이야. 한 번은 친구가 나왔거든.

방동사니 줄기로 ‘친구짱구 놀이’를 하는 나무와 단이.
방동사니 줄기로 ‘친구짱구 놀이’를 하는 나무와 단이.
길가에 가는 이삭을 듬성듬성 우산살처럼 펼치고 자란 바랭이로 우산을 만들었어. 때마침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톡톡 떨어져. 바랭이로 어서어서 우산을 만들어서 써야지. 이삭을 하나하나 둥글게 둥글게 휘고는 이삭 한 가닥으로 묶어서 우산을 만들어 쓰니까, 우산이 너무 작아 비 피하기도 힘들겠다. 단단한 방동사니 줄기로는 패션 안경을 만들어 보았지. 칡덩굴이 있으면 둥그런 잠자리 안경을 만들 수도 있고 질긴 칡껍질을 벗긴 걸 끈처럼 써서 묶을 수도 있는데, 바랭이 줄기나 잎사귀는 쉽게 끊어져 초록테이프로 묶어 네모난 안경을 만들어 썼어. 패션 안경 쓰고 멋진 우산 들고 우리는 텃밭 옆 멋쟁이들! 방동사니 들고 불꽃놀이도 해 보아야지. 방동사니 이삭은 꼭 치지익치지익 폭죽이 타 들어갈 때 내는 불꽃 모양 같아. 줄기 끝에서 불꽃들이 마구 피어나. 하늘로 하늘로 불꽃아, 타올라라!

강아지풀 가운데 이삭이 가장 큰 가을강아지풀을 끊어 수염도 만들어 붙여야지. 이삭이 커야 꼭 털보 아저씨 수염처럼 덥수룩하거든. 이삭이 큰 수크령 같은 걸로 해도 좋아. 커다란 이삭을 줄기는 떼어내고 반으로 살살 갈라. 여물면 질겨서 잘 갈라지는데 아직 덜 여물어서 잘 갈라지지 않아. 겨우겨우 두 가닥으로 갈라진 털 부숭부숭 강아지풀 이삭을 코와 입 사이에다 끼우고는 하하하 웃다가 수염이 톡 떨어지고 톡 떨어지고. 밀짚모자 쓴 기다란 수염 멕시코 산초 아저씨 소리 내지 말고 웃어 봐. 강아지풀 수염 난 모습이 우스워, 강아지풀이 간질간질 간질여 히히덕거리며 노는데, 한두 방울 간간히 떨어지던 빗방울이 갑자기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해. 후다닥 아래로 뛰어내려와 지붕 아래 평상에서 ‘강아지풀 이삭 경주’를 했어. 강아지풀 이삭을 떼어서 줄기로 살살 쓸면 꼭 벌레처럼 솔솔 기어가. 이삭은 떼어낸 그대로 쓰면 약간 휘어져 한 자리에서만 맴맴 돌아. 끝의 곧은 부분만 잘라서 쓸어 주어야 해. 마음이 급하면 강아지풀이 더 안 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천천히 천천히 쓸어야 잘 가. 마음이 급한 나무는 조바심 내며 발만 동동거리다 동생 단이한테 계속 져서 약이 잔뜩 오르고 말았지. 나무야, 그러지 말고 우리 ‘강아지풀 잼잼 놀이’나 한번 해 볼까? 강아지풀 이삭을 주먹에 쥐고 ‘잼잼 잼잼’ 하면 강아지풀이 슬금슬금 손 밖으로 기어 올라와.

조금 있으면 바랭이, 강아지풀, 방동사니 따위가 벼처럼 여물어갈 거야. 풀들이 여물어가면 메뚜기들도 폴짝폴짝 신이 나겠지. 다음에는 툭툭 톡톡 메뚜기나 잡으러 가자꾸나.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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