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벌벌벌 벌레들, 바글바글 벌레들, 우글우글 벌레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이 즈음 여기저기 와글와글 벌레들 세상이야. 아파트 앞 화단 능금나무 잎사귀엔 무당벌레들이 와글와글해. 지난번엔 잎사귀에 있는 벌레를 우산에다 털어 잡는 거 했는데, 이번엔 꽃에 모이는 벌레 잡으러 나서 볼까?
초등학교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니까,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래저래 잘라먹고 황폐해진 땅에, 온통 개망초야. 우리 동네에서 개망초 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밭이야. 막 숲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개망초 밭이지. 아주아주 조그만 달걀 프라이처럼 생긴 개망초, 하얀 꽃잎 가운데 노릇노릇 동그란 노른자 꽃을 내밀고 오라오라 벌레들한테 손짓해. 개망초 밭은 사람들이 잡초 밭이라고 다 베어버리는 곳이지만 벌레들한테는 낙원이야. 벌레들은 개망초 밭에서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짝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그리고 알을 낳고 그 알이 깨어나 애벌레가 되고……. 벌레들한테는 모든 게 다 그곳에서 이뤄지는 그야말로 낙원인 셈이지.
벌 흉내 내는 꼬마꽃등에랑 호리꽃등에가 붕붕 윙윙 가장 많이 날아들어. 꽃벌은 노릇노릇 동그란 노른자 꽃 속에 파묻혀 몸통에다 노란 꽃가루를 묻히고는 웽웽웽 꽃가루 먹느라 바빠. 조그만 무당벌레 한 마리는 꽃 속에 엎드려 쿨쿨 낮잠이 들고, 개망초를 휘감으며 자라 오른 메꽃 분홍빛 꽃 속으로 털북숭이 호박벌이 제 집인 것처럼 쏙 들어가 버렸어. 빨간색 무당벌레랑 까만 바탕에 점이 있는 무당벌레 한 쌍이 짝짓기를 해. 쉬! 쉬! 조용조용 지나가야지. 점박이 아주 쪼그만 무당벌레 한 쌍도 개망초 줄기 옆에 슬며시 숨어 짝짓기를 하고 있어. 어떤 무당벌레 한 마리는 길쭉하고 노란 알을 개망초 잎사귀 뒤에 다닥다닥 붙여. 짝짓기를 끝낸 무당벌레가 알을 낳는 거야. 알 낳던 무당벌레는 우리가 엿보는 게 싫었던지 알 낳다말고 저쪽으로 슬금슬금 기어가 버려. 팔랑팔랑 배추흰나비, 노랑나비 노닐고……. 집 가까운 공원 안쪽에도 기차놀이하며 뱅뱅 돌던 샛길 옆에 개망초 밭이 있어 가 보았더니 사람들이 공원을 가꾸면서 없어져 버렸어. 개망초 밭은 꽃도 참 수수하게 예쁘고 특히 가꾸지 않아도 많은 벌레들이 꼬여 이렇듯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데 말이야.
집에서 가지고 온 주둥이가 넓은 병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엔 뚜껑을 단단히 붙잡고 벌을 잡았어. 형 나무는 웽웽거리는 벌이 무서워 자꾸 꼬리를 빼. 동생 단이가 먼저 나서 벌을 잡아보니 그거 별거 아니거든. 개망초 꽃 위에 앉아 꽃가루 먹느라 정신없는 벌을 살금살금 다가가 통으로 살살 덮치고는 재빨리 뚜껑을 닫는 거야. 단이는 두세 번 잡더니 재미 들려서 벌 잡기 대장이 되었어. 형 나무는 계속 무섭다고 도망 다니다가 아빠 도움 받아 겨우 한 마리 잡고는 으쓱으쓱 어깨를 으스대. 배추흰나비도 잡아보려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팔랑라! 꽁무니 빠지게 도망갔지요. 무당벌레는 통을 아래에 대고 줄기만 가볍게 톡 치면 떨어지는데, 여기 개망초 밭 무당벌레들은 이상해.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그래도 벌 잡는 게 가장 쉬웠어.
개망초 밭 가까이에 있는 토끼풀 꽃밭에 자리를 깔고 앉았어. 토끼풀이랑 개망초는 둘 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야. 둘이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거야. 귀화식물들은 대부분 햇볕이 많이 드는 곳에서 자라는 풀이라 숲 속에서 자라지 못 해. 그래서 이렇게 숲 언저리쯤 땅이 망가진 곳에서 많이 자라. 토끼풀 꽃밭 속에서 ‘네 잎 토끼풀’을 찾는 놀이를 했지만 눈을 씻고 찾아도 안 보여. 찾기 힘드니까 행운을 가져다주는 잎사귀라 부르나 봐. 그런데 혹시 네잎클로버 한 장만 찾아도 그 토끼풀 밭은 네잎클로버 천지야. 워낙 토끼풀은 잎이 석 장인데 넉 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곳엔 잎 넉 장인 토끼풀이 무더기로 자라. 우리한텐 그런 행운이 오지 않아서 네잎클로버 찾는 건 포기하고, 대신 토끼풀을 한 아름 따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엮어 머리에 쓸 토끼풀 꽃 왕관을 만들었지. 꽃 왕관 만들어 머리에 쓰고는 산벚나무 아래서 버찌를 따먹었어. 버찌는 이제 익을 대로 익어 달짝달짝 까만색으로 여물었어. 날 따먹어 달라고 기다리지도 못하고 땅바닥 아래로 뚝뚝 떨어져. 아, 아까운 버찌 열매. 산 아래 공원에 있는 뽕나무에는 까만 오디가 다 여물어서 나무를 살짝 흔들어만 주어도 투두둑 떨어져. 버찌 먹고 오디 먹고 버찌 먹고 오디 먹고 우리 입은 어느 새 새까만 동굴이 되었지. 왕! 내 동굴이 더 무섭지!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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