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매미를 들고 있는 나무와 단이.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며칠 여름휴가를 다녀오며 집을 비웠더니 그 사이 집안이 벌레들 투성이야. 안방, 주방으로는 개미들이 바글바글 몰려들고, 거실에서 키우는 화분엔 다닥다닥 깍지벌레가 꼬이고, 또 꼬이고. 더위가 하늘을 찌를 듯한 여름, 더위만큼이나 벌레들 기세도 대단하다, 대단해. 해가 져도 너무 더워서 잠 못 이루는 열대야, 밤이 되니까 야행성 벌레들처럼 사람들이 슬금슬금 돌아다니고 바람을 쐬며 밤나들이를 해. 우리는 밤나들이 대신 한밤중 벌레 잡기 하러 나서자. 밤에 돌아다니는 야행성 벌레들을 만나러 가 보자. 깜깜한 밤중 벌레 탐험을 하며 두근두근 도근도근 떨리는 기분을 맛보자.
잠자리채 들고, 주둥이가 넓은 플라스틱통 챙기고, 구멍 송송 뚫린 채집통 어깨에 둘러메고(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통에 송곳으로 구멍을 송송 뚫고 끈을 매달면 돼.), 간다 간다 벌레 채집하러 떨린다 떨린다 가슴도 떨린다. 문방구에서 조그만 손전등 한 개를 사면 조금 덜 떨릴 수도 있지만 아마 더 떨리고 싶어 손전등도 끄고 탐험을 할걸.
아파트 단지 안 가로등을 빙글빙글 돌고 돌며 벌레들을 찾아 나섰어. 벌레들을 보려면 달빛 없는 밤, 바람 잔잔한 밤이 딱 좋아. 그리고 벌레들은 노란 불빛보다는 하얀빛을 내는 수은등에 더 많이 몰려들어. 하얀 불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로 가서 벌레들을 찾아보았지. 잠자리채를 휙휙 열심히 날려 보았지만 아파트 단지 안 가로등에 몰려드는 벌레는 거의 없었지. 풀잠자리와 흰무늬왕불나방, 작은 나방 몇 마리를 볼 수 있었어. 이런 곳은 불빛이 너무 많아서 벌레들이 더 없어. 불빛은 벌레들한테는 ‘죽음의 함정’이야. 벌레들은 왜 그렇게 불빛으로 몰려들까? 불빛에 모여드는 벌레들은 불빛을 따라다녀. 게다 밤에 날아다니는 벌레들은 달과 별을 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찾는데, 수은등 불빛이 있으면 그걸 달과 별로 헛갈려 하는 거야. 벌레들은 수은등 둘레를 빙빙 돌다 아예 불빛 속으로 돌진하기도 해.
아파트 단지 안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아서 가까운 곳에 있는 솔밭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어.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등 밑을 돌며 다시 벌레를 찾아 나섰어. 주로 매미가 많이 잡혔는데 애매미, 유지매미, 참매미를 잡았어.
밤에는 키가 닿는 곳에 있는 매미는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어. 하루살이도 잡았고 등얼룩풍뎅이를 많이 잡을 수 있었지. 벌레를 넣는 채집통에는 풀을 깔아서 벌레들이 너무 놀라지 않게 마음을 써 주어야 해. 가로등 아래 땅을 잘 살펴보니 먼지벌레가 기어다녀. 주둥이가 넓은 플라스틱 통을 먼지벌레가 달려가는 쪽 앞에다 갖다대니까 통 안으로 자기가 알아서 쏙 들어와. 가로등만 보지 말고 그 아래 땅바닥도 잘 살펴보고, 가로등 바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도 툭툭 건드리면 날아오르는 벌레들을 볼 수 있으니까 잘 살펴봐야지. 어, 나뭇가지를 툭툭 건드리려고 하는데 매미가 허물을 벗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지. 나무랑 단이는 어디, 어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보려고 달려들었어. 너무 높은 곳이라 잘 보이는 않았지만 참 신기했지.
다시 자리를 옮겨 숲 가장자리 축대 아래를 돌며 벌레들을 찾아 나섰어. 가는 길에 전봇대에 달린 가로등 바로 옆에다 거미줄을 치고 불빛에 몰려드는 벌레를 사냥하려고 기다리는 무지 큰 왕거미를 보았어.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니까 왕거미는 먹이를 먹고 있는 중이었지. 거미처럼 청개구리 따위도 전봇대나 가로등 꼭대기에 착 달라붙어 먹이를 기다리곤 하지. 숲 가장자리 축대 아래선 작년에 커다란 멋쟁이딱정벌레를 많이 보아서 혹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쭉 따라 올라가 보았어. 하지만 반짝반짝 멋진 몸 색깔을 가진 멋쟁이딱정벌레는 코빼기는 안 보이고 둥이 둥그렇게 휜 곱등이만 이리 톡 저리 톡 뛰어다녀. 어디선가 끽끽 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 하늘소가 있나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어. 하늘소는 앞가슴과 가운데가슴을 비벼서 ‘끽끽’ 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소의 울음소리랑 닮았다고 ‘하늘소’라 이름 붙였다고 하기도 해. 내려오는 길에 수은등 불빛이 환한 주유소에 들러 벌레들을 볼 수 있을까 둘러보았지만 여기도 불빛이 많은 아파트 단지처럼 벌레가 별로 없었지.
잡은 벌레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레 놓아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밤 산책을 너무 오래한 탓인지 나무랑 단이는 다리도 아프다 하고 졸려서 헤롱헤롱. 시원하게 씻고 ‘열대야야, 저리 가라’ 하고는 잠 한번 안 깨고 잘 잤지. 혹시 벌레들이랑 신나게 노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na-tree@hanmail.net
단이 팔에 앉은 흰눈물병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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