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화되어가는 정보사회에서의 누리꾼의 힘을 상징하는 작품 ‘네티즌’. 마우스 쥐(누리꾼)들이 키보드 자판으로 만든 코브라를 공격하고 있다.
테마별로 떠나는 체험학습 /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 우유팩, 과자 상자, 부서진 장난감, 페트병…. 아이가 주로 가지고 노는 물건들이다. 하루는 종이 포트리스 전차를 만들었다가 하루는 페트병 전함을 만든다. 로보트, 버그 파이터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낸다. 도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그냥 생각났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인간은 ‘호모 하빌리스’(도구적 인간)라고 했던가, 내 아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마침 ‘반쪽이 아저씨’ 최정현씨가 고물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북촌미술관(bukchonartmuseum.com)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이다. 과천에 살 때 제비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유쾌한 상상전’에서 반쪽이의 독특한 작품들을 한번 본 터라 기대가 컸다.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움찔했다. 바닥에 시커먼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게 아닌가.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타이어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자세히 보니 ‘로드킬’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길거리에서 차에 깔려 죽는 동물들을 형상화했다고 했다.
쓱 둘러보니 온통 동물 천지다. 독수리, 뱀, 쥐, 양, 메뚜기, 개, 사슴. 동물이란 동물은 죄다 모여 있다. 일단 독수리 앞으로 갔다. 몸통은 오토바이 연료통, 머리는 세탁소 스팀다리미로 돼 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가 독수리 몸통 뒤쪽을 박은 채 쳐박혀 있다. 아이와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직원이 “9·11 사태를 풍자한 것”이라고 귀뜀한다. 그러고 보니 독수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국을 형상화한 것 같다.
옆에는 키보드 자판들을 이어 붙여 만든 코브라가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마우스들이 코브라를 에워싼 채 공격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 제목이 ‘네티즌’. 댓글문화의 위력과 누리꾼들의 뭉친 힘을 말하는 것이리라. 키보드 자판으로 만든 수류탄도 뇌관만 따면 언제든 터지는 누리꾼의 힘을 말해준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산업폐기물이나 일상 폐기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활용이라는 환경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마다 깊은 사회성과 의미를 담으려 한 점이 느껴진다. 신용카드와 빗을 합쳐 만든 ‘카드빚’, 다리에는 번호, 부리에는 족쇄를 찬 천연기념물 청둥오리, 20여마리의 게가 저마다 앞발에 가위·나이프·망치 따위의 연장을 들고 있어 마치 농민봉기를 연상시키는 ‘새만금 게떼’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코끼리 발’이란 작품을 보며 “어린 코끼리는 쇠줄로 묶으면 끊고 도망가지만, 어렸을 때부터 묶여 자란 어른 코끼리는 실로 묶어도 도망가지 않고 그냥 있는단다. 학습효과가 대단하지?”라고 설명을 했더니, 아이가 걸작 대답을 내놓는다. “그럼 나 학교에 안가도 돼?” “???” 상징, 의미 위주로만 접근하면 아이가 지루해할까봐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슴도치’란 작품을 보더니 아이가 실실 웃는다. 요즘에도 구하기도 힘든 펜촉을 수백개 모아서 고슴도치 털을 만들었다. 병따개와 칫솔머리로 만든 벌레, 라이터로 만든 여치와 메뚜기, 필라멘트 사마귀, 머리핀 새, 방충망 잠자리 날개, 건물은 목욕바구니, 지붕은 변기뚫기로 만든 국회의사당을 보고도 “기똥차다”를 연발한다. 정말 대단하다. 집안에서 굴러 다니던 장난감, 책받침, 머리핀, 망가진 우산살, 포크 따위가 그럴듯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는 게 신기하다. 개밥 그릇에 사자 머리를 붙여 밥을 먹는 순간에는 사자로 돌변하는 ‘개밥 그릇’, 냄비 받침대라는 글자로 만들어진 진짜 ‘냄비 받침대’, 빨간 소화기로 만든 귀여운 ‘펭귄’, 앞발에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있는 게를 통해 속담을 절묘하게 나타낸 ‘밥 도둑’, 숟가락들이 모여 바위를 들어올리는 ‘새싹’ 등을 보는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 “뚝딱 뚝딱” “주물럭 주물럭” 80여평 공간을 둘러보는 데 의외로 1시간이나 걸렸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좀 쉴까 하는데 직원이 와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며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프로그램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재활용으로 쓸 수 있는 철사, 망가지거나 낡아 빠진 우산(살), 망가진 세탁소 옷걸이 등을 준비해 모빌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철사를 이리 저리 구부려서 인쇄된 반쪽이 그림을 붙이니 그럴듯한 모빌이 완성됐다. 또 하나는 말풍선과 이야기 주머니를 활용한 동화 만들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을 집어넣으니 꽤 읽을 만한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졌다.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홈페이지를 보고 이메일로 신청하면 된다. 워크북 책자(3천원)를 현장에서 구입해 활용하면 된다. 워크북에는 40개의 작품이 담겨 있다. 참가비는 따로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이와 난 쓰레기와 폐기물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고물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걸까?” “아니. 고물도 생각을 담으니까 멋지게 바뀌어.” “맞아.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럴 거야. 우리가 아끼고 잘 활용하면 새롭게 다가오지.” 그날 밤 아이는 페트병과 종이 쪼가리, 철사로 로보트를 만든다며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글·사진 윤현주/나들이 칼럼니스트 whyrun@naver.com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 우유팩, 과자 상자, 부서진 장난감, 페트병…. 아이가 주로 가지고 노는 물건들이다. 하루는 종이 포트리스 전차를 만들었다가 하루는 페트병 전함을 만든다. 로보트, 버그 파이터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낸다. 도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그냥 생각났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인간은 ‘호모 하빌리스’(도구적 인간)라고 했던가, 내 아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마침 ‘반쪽이 아저씨’ 최정현씨가 고물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
머리핀, 방충망, 플라스틱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다양한 곤충들을 만들어낸 솜씨가 놀랍다.
옆에는 키보드 자판들을 이어 붙여 만든 코브라가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마우스들이 코브라를 에워싼 채 공격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 제목이 ‘네티즌’. 댓글문화의 위력과 누리꾼들의 뭉친 힘을 말하는 것이리라. 키보드 자판으로 만든 수류탄도 뇌관만 따면 언제든 터지는 누리꾼의 힘을 말해준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산업폐기물이나 일상 폐기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활용이라는 환경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마다 깊은 사회성과 의미를 담으려 한 점이 느껴진다. 신용카드와 빗을 합쳐 만든 ‘카드빚’, 다리에는 번호, 부리에는 족쇄를 찬 천연기념물 청둥오리, 20여마리의 게가 저마다 앞발에 가위·나이프·망치 따위의 연장을 들고 있어 마치 농민봉기를 연상시키는 ‘새만금 게떼’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코끼리 발’이란 작품을 보며 “어린 코끼리는 쇠줄로 묶으면 끊고 도망가지만, 어렸을 때부터 묶여 자란 어른 코끼리는 실로 묶어도 도망가지 않고 그냥 있는단다. 학습효과가 대단하지?”라고 설명을 했더니, 아이가 걸작 대답을 내놓는다. “그럼 나 학교에 안가도 돼?” “???” 상징, 의미 위주로만 접근하면 아이가 지루해할까봐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슴도치’란 작품을 보더니 아이가 실실 웃는다. 요즘에도 구하기도 힘든 펜촉을 수백개 모아서 고슴도치 털을 만들었다. 병따개와 칫솔머리로 만든 벌레, 라이터로 만든 여치와 메뚜기, 필라멘트 사마귀, 머리핀 새, 방충망 잠자리 날개, 건물은 목욕바구니, 지붕은 변기뚫기로 만든 국회의사당을 보고도 “기똥차다”를 연발한다. 정말 대단하다. 집안에서 굴러 다니던 장난감, 책받침, 머리핀, 망가진 우산살, 포크 따위가 그럴듯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는 게 신기하다. 개밥 그릇에 사자 머리를 붙여 밥을 먹는 순간에는 사자로 돌변하는 ‘개밥 그릇’, 냄비 받침대라는 글자로 만들어진 진짜 ‘냄비 받침대’, 빨간 소화기로 만든 귀여운 ‘펭귄’, 앞발에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있는 게를 통해 속담을 절묘하게 나타낸 ‘밥 도둑’, 숟가락들이 모여 바위를 들어올리는 ‘새싹’ 등을 보는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 “뚝딱 뚝딱” “주물럭 주물럭” 80여평 공간을 둘러보는 데 의외로 1시간이나 걸렸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좀 쉴까 하는데 직원이 와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며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프로그램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재활용으로 쓸 수 있는 철사, 망가지거나 낡아 빠진 우산(살), 망가진 세탁소 옷걸이 등을 준비해 모빌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철사를 이리 저리 구부려서 인쇄된 반쪽이 그림을 붙이니 그럴듯한 모빌이 완성됐다. 또 하나는 말풍선과 이야기 주머니를 활용한 동화 만들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을 집어넣으니 꽤 읽을 만한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졌다.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홈페이지를 보고 이메일로 신청하면 된다. 워크북 책자(3천원)를 현장에서 구입해 활용하면 된다. 워크북에는 40개의 작품이 담겨 있다. 참가비는 따로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이와 난 쓰레기와 폐기물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고물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걸까?” “아니. 고물도 생각을 담으니까 멋지게 바뀌어.” “맞아.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럴 거야. 우리가 아끼고 잘 활용하면 새롭게 다가오지.” 그날 밤 아이는 페트병과 종이 쪼가리, 철사로 로보트를 만든다며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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