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자리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창, 노란 주전자가 올려져 있는 난로, 새까만 뿔테 안경을 쓴 주인아저씨 등 추억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옛날 만화방.
테마별로 떠나는 체험학습/한국만화박물관 만화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학습만화가 날개 돋친듯이 팔리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만화를 즐기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부모들도 이제는 만화를 무조건 보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좋은 만화를 적극 권장하는 쪽으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지난 2001년 문을 연 한국만화박물관(comicsmuseum.org)은 만화에 대한 아이의 관심을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부모들과 만화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많은 아이들 모두에게 적절한 곳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천시에 있어 주말에 아이들 손을 잡고 방문한다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만화의 모든 것 한눈에
만화박물관은 자료관과 전시관, 체험관 등 크게 3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자료관에는 무려 4200여점의 만화 작품이 소장돼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의 작품이 많고, 일제시대와 현대 작가 작품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자료관에 들어서면 우선 만화의 역사 자료들을 만난다. 만화가 인류의 회화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 바위그림, 벽화 그리고 조선시대 민화 등 여러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고래잡이 광경을 묘사한 대곡리 바위 그림, 고구려 무용총도 만화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병아리를 물고 뛰는 고양이와 이를 쫓다 넘어지는 사람들을 그린 조선시대 김득신의 <파적>은 근대 만화의 전 단계라고 한단다. 바로 옆으로 옮기면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의 우리만화를 10년 단위로 나누어 만날 수 있다. 만화의 등장(1883~1910), 신문만화의 출발(1910~1920), 암울의 시대(1930~1945), 전성기 서막(1940~1950), 어린이만화 전성시대(1960년대), 성인만화 전성시대(1970년대), 다양한 만화의 공존(1980년대), 새로운 방식의 만화 등장(1990년대) 디지털 컨버전스의 핵심 콘텐츠로 부상(2000년 이후) 등 우리 만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희귀 만화 코너’ 역시 아이보다는 부모의 눈길을 더 끄는 곳. <악동이와 영팔이>(방영진) <동경 4번지>(손의성) <코주부 삼국지>(김용환) 등 다른 데선 구하기 힘든 작품들이 원본 그대로 전시돼 있다.
열람실에서 만화 읽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들.
만화 그리기가 취미인 자녀를 두었다면 ‘만화 제작과정’ 코너를 놓치지 말자. 펜·잉크·지우개·자·컴퓨터·스캐너·연필 등 각종 만화도구를 활용해 만화를 어떻게 그리는지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화 한 편을 그리기 위해서는 구상→취재→스토리 구상→캐릭터 설정→콘티→스케치→펜 작업→마무리(채색) 등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자료관 다음에는 전시관이 나온다. 이 곳은 매년 3~4회의 기획전시를 여는 공간으로, 국내외의 주요 작품 및 작가들을 재조명하여 만화의 깊은 세계를 보여준다. 현재는 ‘고우영 추모전’(8월27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대야망> <수호전> <일지매> <십팔사략> 등 그의 작품 원본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평생 만화를 그렸던 낡은 책상과 펜, 종이들은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만화 실컷 보고 체험도 해보자
명색이 만화박물관인데 구경만 하고 그냥 갈 수는 없는 일. 슬슬 다리가 아파올 때쯤 짠 하고 만화열람실이 나타난다. <순악질 여사>(길창덕) <위대한 화가 솔거>(윤승운) <둘리>(김수정) 등 옛날 만화, 단행본, 학습만화 등 만화란 만화는 죄다 꺼내 볼 수 있다. 등받이는 없지만 푹신한 좌석이 20개쯤 있어 마음놓고 볼 수 있다. 직원이 와서 “1인당 1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만화에 빠진 아이들은 좀체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만화를 보다 눈이 피로하다면 열람실 옆 ‘옛날 만화방’으로 눈을 살짝 돌려 보자. 테이프가 덕지 덕지 붙어 있는 깨진 유리창,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만화방 주인, 먼지 쌓인 연탄 난로 등이 감회를 새롭게 한다. 만화를 어느 정도 봤다면 이제 체험교육실로 가보자. 어린이·청소년·성인·가족 등 대상별로 다양한 만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생 자녀라면 ‘페니와 함께 빙글빙글’이라는 프로그램이 적절하다. 여러 가지 얼굴과 머리·눈·코·입 등을 놀이판에 직접 그리고 화살표를 붙여 만화돌림판을 만든 뒤, 게임을 통해 나오는 이미지를 조합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놀이형 체험 교육이다. 40분 1천원. 청소년 대상으로는 4칸 만화를 그려보는 ‘만화 완성하기’ 프로그램이 있다. 전문강사가 제작한 체험실습교재를 이용해 다양한 만화적 표현법과 발상법을 배울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11시, 12시 3회. 50분 교육에 2500원이며 반드시 사전예약해야 한다. 관람과 체험학습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만화속의 주인공과 함께 사진을 찍는 ‘찰칵 코너’와 ‘크로마키 코너’에도 잠깐 들러보자. 만화 장면 속 주인공이 조형물이 연출된 공간인 ‘만화 장면속으로’에서는 자녀가 직접 만화의 주인공이 되볼 수 있다. 글·사진 윤현주/나들이 칼럼니스트 한국만화박물관 이용 안내 *위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부천종합운동장 1층.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11월~2월엔 오후 5시까지), 매주 월요일 및 설·추석 휴관 *관람료: 4세~초등6 1500원, 중·고생 2천원, 어른 3천원(20인 이상 단체 사전예약시 할인) *예약 문의: 032-661-37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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