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옛날 아버지, 어머니가 사용하던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테마별로 떠나는 체험학습/김포 ‘적포진 교육박물관’
어른이 되면 누구나 학창 시절이 그립다. 짝궁이랑 같이 쓰던 2인용 책상, 삐걱대는 소리가 요란했던 교실 바닥, 고무줄 놀이하던 운동장 구석 플라타너스 그늘,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던 음악실, 손때 묻은 교과서…. 옛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달래고, 아이가 이해못하는 부모의 학교 생활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김포에 있는 ‘덕포진 교육박물관’(dpjem.com, 031-989-8580)을 알게 됐다. 지난 1996년 문을 연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육박물관이다.
타임머신 타고 추억의 학교로 쓩~ =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앉은뱅이 책상. 그 위에 놓인 몇 권의 낡은 교과서와 먼지 켜켜이 쌓인 가방, 벽에 걸린 교복은 1960년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준다. 담배 옆에 자욱한 할아버지 방에서 숙제하던 옛날 기억이 스멀스멀 파고든다.
몇 걸음 들어가니 오른쪽에 ‘쨘~’ 하고 교실이 나타난다. 진짜 옛날 그 교실이다. 여기저기 칼로 긁히고 낙서로 뒤덮인 책걸상·실과·사회생활·음악·산수 교과서 모두 새롭다. 국어책을 펼치니 “선생님 안녕하셔요?” “기영아 안녕” “순이야 안녕” 등의 추억어린 글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엄마, 근데 안녕하셔요는 잘못 썼다”고 따지는 아이한테 “옛날에는 그렇게 썼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겨울 교실을 훈훈하게 해줬던 난로도 그대로 있었다. 난로 위에 놓인 네모나고 동그란 도시락들을 보니 갑자기 밥이 먹고 싶어진다. 과연 이게 도시락이라는 걸 아이가 알 수 있을까. 벽에는 ‘국어사랑 나라사랑’ ‘부모 효도 어른 공경 밝아오는 우리 사회’ 등이 적힌 표어가 여기 저기 붙어 있다. 교탁 한 켠에는 고무신, 짚신, 짚공, 표주박 등이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얼기설기 전시돼 있다.
한번 둘러보고 나니 박물관 주인 김동선(66) 이인숙(60) 부부가 이제 책상에 앉으라고 한다. 수업 시간이란다. 이씨 교탁앞에 앉아 음악책을 펴고 능숙한 솜씨로 풍금을 연주한다. 학교종·송아지·종이비행기·태극기 등의 노래가 연이어 흘러나오고 아이들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따라 한다. 이어 김동선 관장이 신미양요·병인양요 등을 곁들여 덕포진의 역사를 설명하고 국어·산수도 책을 보며 직접 가르친다. 어리둥절하던 아이는 이제 신이 난듯 물어보는 질문에도 냉큼냉큼 답을 한다. 아무래도 진짜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보니 각각 38년·22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단다. 그럼 그렇지~.
30분 정도 수업까지 듣고 나니 관람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선도’‘주번’이라고 적힌 노란 완장과 ‘청소년 선도의 달’ ‘원호의 달’ ‘불조심’이라고 적힌 가슴 리본을 보며 신이 나서 아이에게 설명을 한다. 붓글씨 연습을 했던 기름 먹인 묵판, 볼펜에 끼워썼던 몽당연필, 진공관식 라디오, 베이비 피아노, 오르간 등 돌아볼수록 신기한 것 투성이지만 싫다는 내색은 안한다. 구술, 얼레, 팥주머니를 보고는 제가 먼저 아는 체한다.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과학실로 들어서니 매, 부엉이, 표범, 꿩, 오소리 등 각종 동물들의 박제가 곳곳에 놓여 있다. 곤충채집방법, 등뼈동물 등의 제목이 붙은 차트판은 달라진 교육환경을 절감하게 한다. 앙부일구, 측우기, 수산화나트륨 분말통, 호흡기관 모형, 곤충 표본. 어류 표본병 등은 예나 요즘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2층은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물건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우리 교육이 걸어온 길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놓았다. 국민교육헌장 세대(1954~1963), 새마을운동 세대(1964~1973), 군사교육·교복 세대(1973~1982), 초등학교 세대(1993~) 등을 훑어보며 아이와 같이 교육의 역사를 살폈다. 새마을운동 담화문, 북한 불온선전물 신고 포스터, 중학 사격교본, 교련 교과서 등을 보며 설명하기가 참 난감했다. 획일화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 옛날 학교 체험하며 가족이 모두 초등학생 되다 = 2층 한 구석에는 등사판과 잉크·원지 등이 놓여 있다. 기름종이에 철필로 쓴 다음 등사기로 밀어서 복사를 하던 옛 방식은 신기함 그 자체이다. 컴퓨터로 치면 책처럼 깔끔하게 출력되는 요즘 인쇄물과 달리 손에 잉크가 마구 묻어나는 등사기 복사물로 시험을 보면서 아이는 부모와 공감대를 훨씬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3층에는 제기·딱지·바람개비·연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학습장이 있다. 김 관장이나 전문강사가 직접 설명도 해주고 시범을 보여주기 때문에 따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제기나 딱지는 박물관 앞 마당에서 같이 놀면 된다. 마당 옆에 설치된 용들을 배경으로 가족이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바람개비와 연은 박물관 10분 거리에 있는 덕포진 사적지로 가서 날리면 좋다.
●덕포진 사적지 둘러보며 덤으로 역사공부 = 박물관에서 10분 거리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의 현장인 덕포진 사적지를 보고 오자. 덕포진 포대는 중요한 역사 현장이지만 흙속에 파묻혀 있다 1980년에서야 발굴이 됐다. 16개의 포대를 확인했고 6문의 포도 찾아냈다. 재현된 포대에 직접 들어가보거나 사적지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하다 보면 체험학습 온 것보다는 놀러왔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통진 두레놀이 추수 장면과 덕포진 포대가 재현돼 있는 덕포진전시관도 가볼만하다.
글·사진 윤현주/나들이 칼럼니스트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옛날 학교 교과서와 참고서들
덕포진교육박물관 이용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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