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목표는 욕심…‘선택과 집중’ 필요
전문가들 “보육 성격으로 방향 설정해야”
전문가들 “보육 성격으로 방향 설정해야”
[집중점검 방과후 학교](하)‘교육안전망’ 기능 강화를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 방과후 보육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방’에 잡겠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방과후학교에 거는 기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목표 설정이 오히려 방과후학교의 성공적인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운동단체인 ‘교육과 시민사회’ 노현종 기획위원장은 “방과후학교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며 “백화점식 정책 목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과후학교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절실하면서도 효과가 큰 분야에 집중적으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방과후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보살핌’과 ‘돌봄’ 기능을 꼽는다. 사회 양극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방과후에 홀로 방치되는 학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위원회가 2004년 12월 초등학교 4학년~고교 3학년 자녀를 둔 1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36.3%의 가구에서 아이들이 방과후에 어른의 보호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가정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57.1%나 됐다.
안승문 서울시교육위원은 “정부는 방과후학교의 성격을 ‘학원을 대신하는 학교 안 사교육’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남보다 한 발 더 앞서가야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 입시경쟁구조에선 ‘언 발에 오줌누기식’ 처방”이라며 “방과후 교실이나 도서관 등을 활용해 방치된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특기적성교육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방과후학교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봉선 신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육과 상담 기능,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되는 스포츠와 문화·예술활동을 중심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며 “학습과 관련된 것은 일부 기초 학습 부진아를 위한 프로그램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방과후학교 정책을 반대해 온 전교조도 저소득층 및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한 보육과, 정규수업에서 제공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예술적 체험활동 중심의 방과후 활동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현 전교조 정책기획국장은 “방과후 학습프로그램은 숙제 지도, 학습 부진아 개별 지도 등 주로 개별적인 학습 지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수익자 부담 원칙을 폐지하고,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방과후활동지원센터 설치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 등을 뼈대로 하는 ‘방과후 아동·청소년의 활동 진흥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곧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외국의 방과후학교도 대부분 방과후에 홀로 방치되거나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 자녀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시작됐다. 미국 뉴욕시는 1991년부터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보육과 숙제 봐주기, 레크레이션, 체육활동 등 돌봄의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해오다, 2002년 ‘낙제학생방지법’(NCLB)이 통과된 뒤에는 학습 부진아 지도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초등학교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특기적성프로그램 위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방과후 보육 프로그램은 아직 열악한 수준이다. 2005년 10월을 기준으로 전국 5659개 초등학교 가운데 방과후 보육교실이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609곳뿐이다.
문제는 방과후학교의 방향을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 자녀를 돌보기 위한 ‘교육안전망’으로 설정할 경우, 방과후학교 참여율을 높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학원식 강의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이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대통령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교육부로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되고,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방과후학교의 취지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도 “교육 정상화는 학교 안에서 하기로 돼 있는 것을 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규 최현준 기자 jk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