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공문을 통해 ‘성적 상위 학생 중심의 심화반 운영’등 부적정 사례를 금지하고 있지만(왼쪽), 일부 학교에서는 ‘특목고 대비 선행학습’등의 안내문을 보내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오른쪽).
과학고·외고 대비 선행학습·기출문제 풀이…
시범학교서 조차 교육부 지침 버젓이 어겨
시범학교서 조차 교육부 지침 버젓이 어겨
[집중점검 방과후 학교](상)운영실태
방과후학교는 노무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교육정책으로 꼽힌다. 참여정부의 정책 가운데 언론과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한 의견수렴이나 충분한 준비 없이 밀어부치기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방과후학교의 운영실태와 저소득층 대책,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전문가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민사고·과학고·외고 입시에 대비한 선행학습, 특목고 대비 기출문제 풀이.”
서울 ㅅ중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 수강생 모집 안내문에 적힌 글귀다.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리수학’ 프로그램의 강의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학년 대상의 프로그램은 “상위권 학생을 위한 에이급 수학 또는 하이 레벨의 문제 중심 강의”로, 2학년 프로그램은 “국내 수학경시를 대비하며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강의”로 소개돼 있다.
상위권 학생 위주 프로그램
ㅅ중이 특성화 교과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설한 이 강좌의 강의 내용은 방과후 학교 운영 취지와 어긋난다. 교육부 지침은 문제풀이식 프로그램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좌 성격상 상위권 학생들만을 겨냥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교육부는 “무학년 수준별 선택 프로그램을 개설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이 학교의 ‘논리수학’ 프로그램에는 상위권이 아닌 학생들이 자기의 수준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강좌가 없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2학년 ㅈ아무개군은 “수학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상위권”이라며 “우리 반의 경우 처음에는 수학경시대회 대비 수업을 하다 학생들이 어려워하자 내신 대비 수업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의 ‘탈선’사례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특히 ㅅ중처럼 방과후 학교 운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에서마저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ㅅ중과 마찬가지로 방과후학교 시범학교인 서울 ㅇ중은 방과후 학교 수학 시간에 시중에 나와 있는 고교 1학년용 수학교재를 활용하고 있다. 사실상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대구 ㅅ중은 한술 더 떠 학교 홈페이지의 방과후 학교 공지사항에 “본격적인 수업 전에 중간고사 대비 수업이 있다”거나 “당연히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을 할 생각”이라는 글이 버젓이 올려져 있다. “(공통과학) 수업 내용은 고등학교 1학년 과학이며, 여름방학 전 예상 진도는 물리 영역 끝까지입니다”라는 글도 눈에 띈다. 모두 방과후학교 수업을 담당하는 이 학교 교사들이 올린 글이다.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하나의 강좌로 묶어 수강신청을 받는 ‘묶음형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도 많았다. 교육부의 방과후 학교 시범학교인 인천 ㅂ중의 경우, 1학기에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을 하나로 묶은 ‘빅5’ 강좌를 개설해, 교과 요점 정리 및 문제풀이 수업을 했다. ‘빅5’ 강의는 모두 이 학교의 해당 과목 교사들이 담당했다.
이렇듯 유독 중학교에서 파행 운영 사례가 많은 이유는 교육부가 올해부터 중학교에도 교과 프로그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 미흡하나마 명맥은 유지되던 중학교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강제 보충수업이 대신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서 파행운영 부작용 심각
고교에서는 시범학교에서조차 획일적인 문제풀이식 보충수업이 방과후 학교로 이름만 바뀐 채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 ㅂ고의 운영현황을 보면, 특기적성 프로그램은 단 1개만 개설돼 7명이 참여하고 있는 반면, 교과 프로그램은 39개 강좌에 1542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생이 1576명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거의 모든 학생이 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교과 프로그램 강사는 전부 이 학교 교사들이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방과후 학교 교과 프로그램 시간에는 해당 과목 교사들이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문제풀이 수업을 진행한다”며 “교사와 학생들 모두 이전부터 해 오던 보충수업으로 생각하고 수업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종규 최현준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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