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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원어민 영어회화 20만원…영재수학 16만원

등록 2006-07-11 18:57수정 2006-07-11 19:45

수강권 한장으로 양극화 해소 실효 의문
“사교육보다 무력감 탈피시켜야” 지적도
[집중점검 방과후 학교](중)교육격차 줄일 수 있을까

저소득층에겐 여전히 높은 벽

사회 양극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방과후학교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들어 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도교육청의 방과후학교 홍보자료에는 ‘사회 양극화 완화를 위한 획기적인 교육격차 해소 방안’이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일선 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평가는 교육부의 이런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방과후학교가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평소 급식비나 체험학습비도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혜택을 누리기에는 여전히 벽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일부 교과프로그램은 교육부의 ‘공언’과는 달리 썩 저렴하지 않다.

방과후학교 시범학교인 서울 ㅇ중의 경우, 2개월 과정의 원어민 영어회화 강좌와 토플 강좌의 수강료가 각각 20만원에 이른다. 영재수학은 16만원, 논리수학과 올림피아드과학은 각각 12만원이다. ㅇ중과 마찬가지로 2개월 단위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서울 ㅅ중도 원어민 영어회화 수강료가 20만원이다. 이 학교 교사가 직접 지도하는 중학교 수학 강좌도 외부 강사가 지도하는 초등 논리수학 강좌와 똑같이 8만원을 받는다.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이 학교 ㅁ군은 “영어·수학 수강생 가운데 무료로 수업을 받는 친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 가운데 가난한 아이들은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수익자 부담이 원칙인 데다 교육청의 별도 예산 지원도 없어서 현실적으로 저소득층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교과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성적 상위권 학생 위주로 운영된다는 점도 문제다. ㅇ중과 ㅅ중의 영어·수학 프로그램은 토플시험, 경시대회, 특목고 입시 등에 대비한 수업이 주로 이뤄진다. 학습 결손이 누적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또 하나 존재하는 셈이다. ㅇ중의 한 교사는 “일부 영어·수학 강좌는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들의 방과후 교과프로그램에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화학습반’은 자주 눈에 띄지만, 뒤쳐진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데 목적을 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특별교부금을 투입해 올 하반기부터 저소득층을 위한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바우처) 제도를 시범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선 방과후학교 수강료가 특기적성 프로그램은 대체로 1만~2만원인 반면, 영어회화·논술 등 인기 강좌는 20~30만원대에 이르는 등 천차만별이다. 저소득층 한 명당 한 장씩 주어지는 수강권으로 어떤 수준의 강좌까지를 무료로 수강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액수와 상관 없이 한 강좌씩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하면 죄다 수강료가 비싼 강좌를 수강하려고 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3만원 정도의 정액 수강권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바우처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저소득층에게 인기 강좌는 여전히 ‘그림의 떡’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서울시교육청의 교육복지투자우선사업 자문위원인 서울 대신고 김영삼 교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력 부진은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정서적 불안, 무력감, 문화·의료적 결핍,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나타나는 것인데, 정부는 ‘공부 더 시키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싼 값에 사교육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만 주면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서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다양한 차원의 결핍이 누적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방과후에 한 시간 더 학교에 붙잡아 놓고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감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규 최현준 기자 jklee@hani.co.kr


방과후학교 정책은 노무현 정부가 2004년 2월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48곳의 방과후학교 연구학교 운영 결과를 근거로 사교육비 경감 효과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1년 동안 운영해 보니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최대 23% 줄었고, 특히 중학교의 경우 29%의 학생이 사교육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초 발표한 ‘2006 방과후학교 운영계획’에서 방과후학교를 통해 5년 안에 사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흡수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전창완 부산교육연구소 부소장(부산 혜광고 교사)은 지난해 <한국교육>에 실린 논문 ‘학교교육을 통한 과열 사교육 해소대책의 한계’에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의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소득규모별로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전 부소장 등이 부산 지역 학부모 1256명에게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물은 결과, 월평균 소득이 501만원 이상인 학부모는 2.9%만이 ‘매우 그렇다’고 답한 반면, 101 ~200만원인 학부모는 5.6%가, 100만원 이하인 학부모는 5.3%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전 부소장은 “방과후학교가 전체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어렵겠지만, 저소득층의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론도 없지 않다. 이현 전교조 정책기획국장은 “연구학교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재정과 인력 등 역량을 집중하는만큼, 교육부가 내세우는 효과는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교육의 근본 원인인 입시 경쟁은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서열 경쟁이기 때문에 방과후학교가 활성화한다 해도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과후학교 시범학교인 서울 ㅇ중의 한 교사는 “일부 영어·수학 강좌는 학부모들의 요구대로 외부 강사가 와서 학원식 강의를 하고 있지만, 수강생 가운데는 학원을 끊지 않고 함께 병행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방과후학교가 학원 강사의 영업 홍보 통보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 지역 고교를 졸업한 대학교 1학년 이아무개(20)씨는 “학교에서 논술 강의를 함께 들었던 친구 가운데는 강사가 소속된 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꽤 있었다”고 전했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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