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남쪽 섬에 잠시 다녀왔다. 물결과 바람에 씻겨 둥글어진 것은 조약돌뿐만이 아니어서, 산과 언덕과 거기서 자라는 나뭇잎들조차 넉넉히 둥글었다. 어둠 또한 풍성히 깊어, 칠흑 어둠에 하룻밤 온전히 잠겨있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순해졌다. 출발 예정이던 배의 갑작스런 결항과, 몇 시간의 기다림, 늘어난 승객들의 복닥거림도 느긋이 즐길 만큼.
선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떠들더니, 급기야 노래하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관광을 온 모양이다. 심정적으로야 그 흥겨움 이해하고도 남았다. 선량하고 평범한 이웃들. 그러나 우리만 좋으면 남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저 낯익은 태도는, 무슨 수를 쓰든 ‘우리식구’만 잘 살면 된다는 만연한 ‘가족 이기주의’의 자연스런 확장이리라.
가족 이기주의라고 하니 중학교 때 일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우리 마을이 워낙 산골이라 버스가 하루에 세 번밖에 안 다녔다. 어느 날 수업이 일찍 끝났는데, 이웃 동네 친구가 청소당번이라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집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말이다. 그때 우리는 이십 리 산길을 일부러 종종 걸어 다니곤 하였다. 그래서 버스를 보내고 친구와 함께 학교를 나섰는데, 하필 교문에서 택시를 타고 오던 그 애 엄마를 만났다. 차를 세운 친구 엄마는 한 사람밖에 못 탄다며 일말의 여지없이 자기 딸만 태우고 가버렸고, 덕분에 이십 리 산길을 혼자 걸어야 했다.
돌아보면 그 애 엄마는 서울 말씨를 썼다. 토박이나 근동 출신이 대다수인 지역민들에 비해, 일찍 도시 체험 뜨내기 체험을 한 그 애 엄마에게 ‘우리식구’와 ‘남’의 구분은 그만큼 명확하였던 것이다. 스쳐 지나는 모르는 사람들. 아무 관계도 없고, 다시 볼 일도 없기에,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사람들.
수많은 가족이 구성원을 잃고, 가족만이 보루였으며, 가족의 생존과 생계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던 ‘한국전쟁’의 경험은, 가족주의를 넘어선 ‘가족종교’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켰다. 가정마다 자녀 교육에 온 식구의 삶을 투여하고, 가진 사람들은 고액 사교육비를 거침없이 투자하는 현실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뿌리 깊은 가족 이기주의의 지속적 발현에 다름 아니다.
6월 25일이 다가오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가족 대 가족의 견고한 벽을 깨뜨리고, 저마다의 독립적 인간으로 넉넉히 어우러질 순 없을까? 이상주의자가 그리운 유월이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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