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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장미 넝쿨 넘나들듯 이웃과도 오갔으면

등록 2006-06-04 19:03수정 2006-06-05 17:22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해마다 생일잔치를 해주었다. 생일 든 토요일에 반 친구 전부를 초대하여, 시간 되는 대로 와서 놀게 하였다. 김밥, 떡볶이, 고구마 졸임, 쿠키 등을 넉넉히 만들고, 통닭과 피자 정도 주문하고, 케이크에 과일, 과자, 음료수를 곁들여 내놓으면 이삼십 명의 아이들이 종일 들락거리며 먹고 놀았다.

처음에는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고, 어떤 친구들과 생활하는지 보고 싶어서 열어준 잔치였다. 그런데 막상 모인 아이들을 보니, 사소한 면면과 행동에서 각자의 생활환경과 또래 집단 속에서의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이듬해부터는 동화작가로서 ‘직업의식’도 생일잔치 개최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같은 씨앗이라도 뿌리내린 곳에 따라 생장에 차이가 나듯, 같은 연령 같은 지역에 살아도 개별 환경에 따라 아이들은 천차만별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윤이’는 그 색다른 첫 만남으로 하여 마음에 새겨졌다.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오며 한결같이 딸애한테 “생일 축하해!”라고 하였는데, 그 애는 내게로 다가와 “아줌마, 제 친구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조그맣게 말했던 것이다.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의 예상치 못했던 인사말에 나는 잠시 코끝이 찡했다. 스스로 그런 말을 생각해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엄마는 뭘 하시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단다. 그러나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윤이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를 둔 딸애 역시 외로울 때가 많기 때문에, 나는 가끔 윤이를 비롯한 친구들을 놀이시설 등지로 우르르 데려갔다. 윤이 아빠는 보육시설의 정아를 비롯해 딸 친구들을 종종 공연장으로 초대했다. 진이 엄마는 아이들에게 자주 밥을 해먹였고, 다른 엄마는 찜질방에 데려가 아이들 목욕을 시켜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훌쩍 자랐지만, 사실 부모들끼리는 얼굴도 잘 모른다. 어디로 데려가니 걱정 말라든지, 고맙다든지, 그런 전화만 요즘도 서로 가끔 주고받는다.

울타리의 줄장미가 어여쁜 계절이다. 저처럼 사람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어, 서로 기대어 자라고 마음껏 피기도 하는 것이겠지. 감시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랑과 신뢰의 ‘매트릭스’는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좋으리라.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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