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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서로의 온기가 ‘훌훌’ 들어올 만큼의 거리란

등록 2023-12-18 16:19수정 2023-12-19 02:36

연재 ㅣ 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문경민 작가의 ‘훌훌’은 자신의 복잡한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혼자 살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 서유리의 이야기다.

학기 초, 주인공 서유리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이 막막하다. 어떤 말로 자신을 소개해야 할까. ‘엄마 서정희씨에게 입양되었다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어요.’ 유리는 복잡한 가정사를 생각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적지 않는다. 대학만 가면 과거는 싹둑 끊어내고 혼자 살고 싶다고 되뇐다. 그러나 자신을 입양한 뒤에 할아버지에게 맡긴 엄마 서정희씨가 사고로 죽게 되고, 그의 아들 연우를 만나면서 유리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누구예요?” 서정희씨가 남기고 간 연우는 유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남매 같은 거야.” 유리는 연우에게서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유리는 어느새 어느 지점에서 입술을 얇게 다물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화제를 바꿔야 할지를 자연스레 터득했고, 연우도 결국은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연우는 모든 것들에 서툴렀다. 그는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학교에 갔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서정희씨의 부고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그의 죽음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유리는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 연우와 살게 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던 과거를 알고 싶고, 연우를 향한 애틋함도 생긴다. 남남이었던 세 사람이 서로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는 모습은 두고두고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훌훌’의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속사정을 안고 살아간다. 작가는 유리의 담임 고향숙 선생님의 사정으로 교권 침해를 이야기한다. 유리와 다른 듯 비슷한 삶에 놓여있는 친구 세윤, 항상 밝아 보이는 유리의 친구 주봉 역시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 저마다의 아픈 속사정이 있고, 그럼에도 뜨겁게 놓고 싶지 않은 마음속의 밧줄이 있다. 나는 나 너는 너인 채 단절되어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던 인물들을 감싸고 있던 벽에 금이 가고 연결되는 모습은 따뜻하다. 함께하기 위해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때로는 자신보다 타자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이 소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진부한 방식으로 유리의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수술이 “잘됐을 거야. 아주아주 잘됐을 거야”라고 끝마치며 독자에게 온기를 전한다.

작가는 ‘입양’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입양가정의 어머니에게 초고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섬세하게 매만진 듯한 문장들이 보였다. 책을 읽으면 훈훈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맞닥뜨리는 과정은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된다. 우리 모두가 각자 버거운 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있다면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고민이 없는 세상보다 있는 세상이 더 좋을 거라고 말한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나도 새로운 친구와 두어야 할 거리를 늘 고민한다. 거리를 둘 수 있을지, 두어야 하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만의 답을 찾았다. 딱 ‘훌훌’의 거리면 충분할 것 같다. 서로의 온기가 ‘훌훌’ 들어올 만큼의 거리. 훌훌 날아가고 싶어졌다. 산뜻하다.

정예은 경기 광명 하안북중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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