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간은 신과 똑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과 같은 능력으로 많은 사고를 일으키자, 최고 신인 브라흐만은 인간에게서 신성함을 빼앗아버렸다. 그러곤 사람들이 다시는 자신들의 신적인 능력을 찾지 못하도록 감춰 버렸다. 최고 신은 인간에게 있던 신성성을 어디에 숨겼을까? 바로 우리의 마음속이다.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은 모두 신과 같이 소중하다. 우리는 자꾸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세상은 내가 원래 어떤 존재인지에 관심이 없는 탓이다. 공부하는 학생, 학급의 구성원 등. 주어지는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 잘 해내는지에만 신경 쓰지 않던가. 그래서 남들이 하라는 일에 매달리며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할수록, 마음은 되레 헛헛해진다. 성적이 나쁘거나 활동이 주변 기대에 못 미칠 때는 자꾸만 내가 아니라는 느낌, 진정한 나에서 멀어졌다는 기분에 휩싸일 터다.
누군가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를 나 자체로, 나의 보석 같은 내면을 바라봐 준다면 어떨까? 오래된 친구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 집으로 돌아올 때의 편안함을 느낄 듯싶다. 매일매일 경쟁과 평가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받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
고대 힌두어에 ‘겐샤이’(genshai)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작고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겐샤이는 이 물음에 답을 준다. 밀려나고 뒤처진 이들부터 공들여 정성껏 대해야 한다. 이럴 때 나 자신에게 사랑을 베푸는 신성한 능력이 있음을, 내 안에 나만 잘 나고픈 마음을 이겨내는 신성함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도 비슷하게 말한다. 왜 우리는 어려움에 빠진 이를 보면 돕고 싶어질까? 상대의 힘든 처지가 내 안에 담긴 신의 고귀한 성품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그에 따르면 ‘신은 자비롭다’라는 말은 ‘너도 신과 같이 자비로워라’라는 명령과 같다. 정이 안 가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 따돌림을 받는 아이는 나에게 축복이다. 그이를 대하면서 내 안에 숨은 신성성을 펼칠 기회가 생기는 덕분이다. 밀려나고 뒤처진 이들을 환대하고 보듬을수록, 나의 마음은 점점 선하고 곱게 바뀌어 간다.
내 안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피어날 때, 나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반면,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어떨까? 성공과 승리를 거뒀어도, 스스로 자신의 추한 영혼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신성함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출세하고 부자가 된 이들 가운데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 드물지 않은 이유다. 칭찬으로 자존감을 높여주려는 노력이 되레 이기심만 키워놓은 경우가 종종 있다. 진정한 자존감은 타인 배려와 존중에서 나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광복 | 중동고 철학교사·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