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사람들은 고민 있을 때마다 그녀를 찾아왔다. 모모에게 주저리주저리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면, 가슴 답답함이 풀리며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곤 했다. 이 점에서 모모는 최고의 상담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소녀였을 뿐이다. 어떻게 그녀는 이토록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그녀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모모는 무한정 들어줄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모모는 말이 없었다. 친절하고 배려 깊은 침묵 속에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토 달지 않고 자신의 깊은 고민을 정성껏 들어주는 이를 떠올려 보라. 사람들이 왜 모모에게 끌렸는지, 그녀에게 왜 친구가 많았는지 금방 이해가 될 듯 싶다.
지금 우리의 교실에는 외로워서, 친구가 없어 힘든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관계를 가꾸는 능력이 절실하다. SNS에는 게시하고 공유하며 링크도 걸며 ‘좋아요’를 바라는 외침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정을 가꾸기 위해 정말 필요한 능력은 ‘듣기’ 아닐까? 잘난 척하며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자가 매력 있을 리 없다. 우리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내 말을 흥미롭게 들어주는 이에게 마음이 끌리곤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경청’을 배울 기회는 충분하지 않다.
“침묵과 듣기는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철학자 서정록이 ‘읽어버린 지혜 듣기’라는 책에서 하는 말이다. 입을 다물고 상대의 말에 오롯이 주의를 쏟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나아가, 자기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구성원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마음을 열고 그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훌륭한 리더는 두터운 귀부터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학생들에게 경청하는 능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의 교육자 베른하르트 보엡은 “올곧은 권위에 복종하는 훈련을 시켜라”라고 충고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누르고 가르침에 고개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자율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 올곧은 지시를 참을성 있게 따라본 경험이 없는 자는 자기가 세운 규칙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 충동을 다스리는 마음의 근육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탓이다.
그러니 선생님은 자신감 있게 학생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지도해야 한다. 이럴 때 아이들은 제대로 된 소리에 주의를 쏟는 귀가 열린다. 이러면서 학생들은 인내와 배려, 질서 의식과 자율성을 갖춘 민주 시민으로 자라날 테다. 귀는 닫고 목소리만 높이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이들은 제대로 듣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에 마음을 헤아리는 설득과 상대에게 상처를 안기는 공격을 구별하지 못 한다. 흔들리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작업은 경청하기를 가르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음을 다해 듣기는 백 마디의 말하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소통의 방법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