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드러내는 것 좋아. 지금도 참고 억누르는 게 아니라 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줘서 엄마는 고마워. 그런데 싸가지(예의) 없는 건 안 돼. 싸가지 없는 태도를 사춘기의 ‘정당한 반항’이라고 착각하진 말아야 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너도 배울 필요가 있어.”
딸은 중학교 2학년이다. 지난 1학기 동안 딸은 사춘기를 아주 세게 겪었다. 몇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때마다 ‘깊은 빡침’을 느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춘기를 사춘기답게 지나고 있어서.
모든 억압당한 것(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나중에 더 추악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고 프로이트가 말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난, 딸이 자신 안에 윙윙대는 분노와 짜증,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 안에 담아두지 않고 밖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딸은 아주 가끔 선을 넘었다. 싸가지 없는 태도와 말투가 사춘기의 정당한 특권인 양 굴 때가 있었다는 뜻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그때마다 짚었다. 싸가지 교육은 가정교육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정교육에서 할 수 있는 게 이것 말고 뭐가 있겠나 싶기도 하다. 내가 딸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칠 것도 아니고 장사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싸가지 교육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싸가지 교육. 부모가 보는 모습으로만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모든 자식은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같지 않다.
얼마 전 딸의 담임과 2학기 정기 상담을 했다. 흔히 말하는 ‘모범생’ 범주에 들어가는 딸도 학교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담임과 속 깊은 얘기가 오갔고 덕분에 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담임으로부터 반에서 전체 학생의 반 정도만 상담 신청을 했고 그중에서도 대면상담을 신청한 학부모는 나뿐이라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내 자녀의 객관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 담임과 상담하는 것일 텐데…. 특수교육 대상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생활에 관심 없는 부모도 생각보다 많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힘든 게 생활지도 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생활지도, 학부모 협력 없이 교사 혼자 교실에서 고군분투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부모도 가만 놔두는데!”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생활지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중단시키는 게 다일 뿐.
학교에서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면 가정에서 가정교육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내 자녀의 ‘객관적인 모습’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한 학기에 한 번, 학부모 상담이라는 좋은 기회를 부모들이 놓아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나의 무관심 또는 이기심으로 내 자녀가 ‘괴물’로 자라게 되면 결국 괴물에 가장 먼저 잡아먹히는 건 늙고 힘없어진 부모일 테니까.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