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와 특수교육대상자의 학부모, 일반교사, 학생 활동가가 지난 17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교권 회복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의 죽음 이후 한 달여, 교육 현장을 둘러싸고 학생-학부모-교사 사이에 학내 폭력과 갈등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의 무리한 민원에서 촉발된 논란은 학생 인권 조례, 특수교육대상자 등으로 번지며 매일 얼굴을 맞대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을 갈등 주체로 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을 방관한 정부의 책임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가 그동안 언급된 대응 방안을 정리해 지난 23일 발표한 ‘교권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종합방안)은 교실에서의 물리적 제지나 소지품 압수 판단을 ‘교사’에게 맡긴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마련, 학생인권조례 개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정부의 재정과 인력 지원 방안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17일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소속 초등교사 이하영씨, 특수교사 윤상원씨, 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 유연주씨, 학생인권법과청소년인권을위한청소년-시민전국행동 활동가 연혜원씨 등 당사자들이 서울 마포구 한겨레 본사에 모였다. 정부 대책의 흐름을 보며 교사 이하영·윤상원씨는 “교사 1인에게 주어질 부담과 책임”을 걱정했고, 학생 연혜원씨는 “대책 논의에서 단 한번도 나오지 못한 학생의 목소리”를 지적했다.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 유연주씨는 “장애 학부모들은 두려움에 떨며 숨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현재 교육활동보호 논의가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고, 모든 사태의 근원을 학생과 교사의 개인 책임으로 전가한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학교 구성원 당사자로서 교육부 대책을 어떻게 보는가?(이들이 대화를 나눈 날, 종합대책 핵심 내용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이 발표됐다.)
이하영 교사 결국 (물리적 제지 등의) 판단 책임을 지는 주체는 교사 개인이 된다. 이런 권한이 주어진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나 권리가 어떻게 보장된다는 건지 의문이다. 한편 문제 원인을 학생 인권 강화 탓으로 돌리면서 수많은 구조적 문제는 수면 아래로 묻혀 버리고, 매일 얼굴을 맞대는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만 부각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연혜원 활동가 논란과 대책 마련 과정에서 학생 목소리는 제대로 가시화 된 적이 없다. 성인에게 적용됐다면 폭력적인 조처가 대상이 학생이니 ‘(권리를) 제한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장애아동 특수교육의 경우엔 어떤가?
윤상원 교사(이하 윤) 고시안의 큰 문제점은 (장애)학생의 어떤 행동을 공식적으로 ‘문제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교육에서 문제는 많은 경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어난다. 신경다양성(자폐 스펙트럼)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학교 환경에서 일어나는 행동 그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면, 학교 환경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정부 대책은 구조적인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모든 사태의 근원을 학생과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미봉책이라고 생각한다.
유연주 활동가(이하 유) 결국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고 가장 손쉽고 돈이 덜 드는 방식을 택한 것 아닌가 싶다. 교사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식이다. 오히려 학부모나 학생은 교사의 주관이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조처에 더욱 불만을 가지거나 신뢰하기 힘들게 될 것 같다. 장애 학생이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인력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장애 학생과 보호자, 교사는 어떤 갈등을 겪고 있나?
이하영 교사 통합학급인 우리 반에도 발달장애 학생이 있는데 청각 자극 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에 특수 학급에 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엔 특수학급이 한 학급뿐인데다 특수교사 1명이 학생 6명을 맡는다. 늘 과밀이라 맡길 수가 없다. 아이는 힘들어 하는데 그냥 이 상태로 두는 게 최선인가 생각하며 교사 입장에서도 마음이 괴롭다.
윤상원 교사 특수교사와 특수교육대상자는 학교에서 ‘외딴 섬’에 단 둘이 남겨진 것 같다. 현재 특수교사의 법정 정원 대비 배치율은 83.4%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학교는 행정 업무까지 특수교사에게 맡긴다. 일반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 생활지도를 하거나 상담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 이런 환경에서 학부모 또한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기 힘들다.
유연주 활동가 특수교육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수교사 입장에선 지원을 요청해도 학교나 교육청은 나몰라라 하고 본인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혼자 남은 특수교사한테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약자인 이들이 서로를 탓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학교 현장에서 보호자가 무리한 민원을 제기하거나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영 교사 학부모와 상담할 때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 ‘학교로 찾아가려다 참고 전화 드리는 거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왜 꼭 그런 말을 할까 생각해보니, 학교 안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제기에 힘이 실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동학대 신고는 수사기관을 경유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건데, 사법 제도를 끼지 않으면 학교에선 단순 악성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는 거다. 문제를 당사자끼리 내놓고 이야기해 풀어갈 여력과 제도가 없으니 사법화되는 것이다.
유연주 활동가 장애학생 학부모 입장에선 창구가 특수교사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신고를 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반 학교에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특수교사뿐인데, 해당 교사와 소통이 잘 안 되거거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법적인 방식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제도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권 보호 방안으로 아동학대법 면책이 논의되고 있다.
이하영 교사 아동학대 면책이 교권 회복의 핵심인지 질문해야 한다. 아동학대 면책권이 생기면 교사의 부담과 책임을 덜어줄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면책권을 앞세워서 학교가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온전히 부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면하게 되는 건 교사가 아니라 교육 당국이란 점이다. 교육 당국이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아동학대 면책권을 주겠다는 단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본다.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 모두 존중받을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연혜원 활동가 대중교통을 예로 들면 여유로운 버스보다 빽빽한 버스에서 갈등이 생길 여지가 더 크다. 여기에 필요한 고민은 어떻게 더 대중교통을 늘릴지와 같은 지원책이다. 그런데 정부의 초점은 처벌 강화에 맞춰져 있다. 갈등을 줄이려면 결국 학교 현장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 교사 인권을 비롯해 학생 인권도 강화돼야 한다.
이하영 교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동료와 더 많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다. 사실 지금 학교가 교사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 다른 노동자 등 모든 구성원에게 인권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다. 이 주체들이 각자도생으로 몰려서 서로를 적으로 돌리게 만드는 대책은 지금의 문제를 더 키우는 일이다. 어렵고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학교를 인권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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