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인근에 고인이 된 담임교사의 추모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교육당국이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상황’을 지목하며 학생인권조례 때리기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보수 성향 시교육청과 자치단체가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당장 정부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해당 교사의 사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21일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며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며 “시도 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가운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이하 서울시학생인권조례 기준 제5조), 휴식권(제10조), 사생활의 자유(제13조) 등 조항에 문제가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학생들이 누워서 잠을 잔다든지 휴대폰 소지 문제 등으로 교육 활동이 제한받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수장이 이끄는 경기도교육청과 서울시의회도 ‘학생인권조례 때리기’에 편승하고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1일 ‘학생인권조례 개정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모든 학생의 학습권 및 교원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면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지난 2010년 김상곤 교육감 시절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상징성이 큰 지역이다. 같은 날 서울시의회에선 국민의힘 소속 김현기 의장이 “원점에서 학생인권조례 등 서울 교육의 모든 제도를 재검토하겠다”며 “무너진 교권 회복 방안을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실현할 수 있도록 각 시도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로, 전국 6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동성애를 조장한다’거나 ‘학생 인권만을 강조해 교권을 붕괴시킨다’는 공격을 받아왔다.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공분이 커진 상황이 되자 교육당국이 그 책임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며 또 한번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학생 인권 강조가 교권 붕괴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두고 교육계에서는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활동 침해는 악성 민원이나 제도적인 공백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데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함께 신장돼야 하는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함께 신장해야 하는 관계”라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시도는 6곳뿐인데,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교권 침해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란 주장 역시 비논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세부적인 개정 방향을 놓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학생인권조례 관련 업무를 담당한 적 있는 한 교육계 관계자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이 프라이버시(privacy)일 만큼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은 필요하다”며 “이 조항이 휴대폰 사용과 관련해 거론되지만, 학교 생활 규정 등을 통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휴식권 역시 학생들이 정규 수업 외의 교육을 강요받지 않도록 적절하게 쉴 권한을 준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차별금지는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말자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 교원단체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 일부 조항에서 논란이 일었던 대목을 이번 기회에 정비하자는 반응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미국 뉴욕시교육청의 경우, ‘뉴욕시 학생 권리 및 책임 장전’에서 학생의 권리에 따른 의무와 책임 조항을 매우 자세하게 규정한 반면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권리만 수없이 나열했을 뿐 책무는 선언적 문구에 그친다”고 짚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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