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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디자인 실습생인데 화장실 청소도 하라고”…‘지금 소희’들의 눈물

등록 2023-03-24 07:00수정 2023-03-28 14:23

<다음 소희> 관객 10만 명 돌파
실적 압박, 학교의 방치, 갑작스런 해고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현실은 ‘그대로’
2016년 당시 교육당국은 취업률로 직업계고를 평가하고 예산을 배정했다. 직업계고가 전공과 무관하게 현장실습을 내보내곤 했던 이유다. 영화 &lt;다음 소희&gt; 속에서 소희의 담임교사 역시 “거기서 우리 학교 애들 안 받는다고 하면 어떡할래?”라며 힘들어하던 소희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내려 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2016년 당시 교육당국은 취업률로 직업계고를 평가하고 예산을 배정했다. 직업계고가 전공과 무관하게 현장실습을 내보내곤 했던 이유다. 영화 <다음 소희> 속에서 소희의 담임교사 역시 “거기서 우리 학교 애들 안 받는다고 하면 어떡할래?”라며 힘들어하던 소희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내려 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시각디자인 전공을 살려서 간판제작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는데요. 간판 디자인 업무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랑 다른 현장실습생 친구에게 ‘웬만하면 청소까지 하라’고 해서 화장실이랑 계단 청소, 사내 카페 앞 담배꽁초 줍는 일까지 해야 했어요.”

지난달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가 누적 관객수 10만명을 돌파하며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화는 2017년 1월 직업계고 3학년생 홍수연씨가 엘지유플러스(LGU+)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실적 압박을 호소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다음 소희’들의 처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21~2022년 현장실습을 경험한 직업계고 졸업생들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 소희가 겪은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6년 전 홍수연씨가 해지 고객 관리를 하며 받았던 ‘실적 압박’이 대표적이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현장실습을 ‘직업 현장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 과정’으로 정의하지만, 현장실습생들은 교육·훈련이라는 목표가 무색하게 성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실적 압박’을 받는다. 2021년 9월 웹페이지 제작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한 지아무개(20)씨는 웹개발이라는 자신의 전공과 맞는 업무를 했지만, 제대로 된 직무교육도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됐다. 지씨는 “출근하고 한달쯤 되자 성과 압박이 시작됐다”며 “업체 대표가 ‘네 실력은 100점 만점에 5점밖에 안 된다’고 타박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3개월 만에 살이 20kg 쪘다”고 말했다.

‘일이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학교의 요구도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장면이 아니다. 지난 2021년 11월 한 문구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한 김미성(20)씨는 “힘들다고 알려진 업체로 실습 나가는 애들한테는 취업 담당 선생님이 ‘후배들 생각해서 힘들어도 버티라’고 하셨다”며 “힘들게 발굴한 취업처인데 우리가 일한 지 얼마 안 돼 그만두면 나중에 후배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간판 제작업체 등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한 바 있는 김아무개(19)씨는 회사에서 현장실습생으로 겪은 고충을 학교에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 회사가 이상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선생님들이 ‘주변 사람들 말 듣고 그러는 것 아니냐’ ‘네가 생각을 똑바로 해야 한다’고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생들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도 쉽게 노출된다. 김씨의 경우 학교 졸업시험을 치르고 출근한 날 오후에 대표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현장실습 기간이 한 달 이상 남은 시점이었다. 회사는 김씨의 성실함이 부족하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지만, 김씨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김씨는 “아침에 청소하느라 일찍 출근했고, 잘해보고 싶어서 다른 현장실습생 친구랑 늦게까지 남아서 간판 시안을 만든 적도 있는데 불성실하다고 하니 자존감이 떨어지더라”며 “대학 진학을 결심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학생’ 신분인 현장실습생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제한)가 적용되지 않아, 현장실습 업체가 비교적 손쉽게 현장실습을 끝내버릴 수 있다.

김경엽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장은 “정부가 직업훈련을 통한 교육이라는 현장실습 제도를 만들어놓고 그 운영은 학교와 민간업체에 맡겨놓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현장실습생들의 안정적 직업훈련을 위한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장실습생도 엄연한 노동자인데, 근로기준법 전체가 아닌 일부만 적용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용 조항을 ‘찔끔’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현장실습생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문제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기사가 나간 뒤 김미성씨와 지아무개씨가 속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한겨레>에 “부당한 대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이나 졸업생에게 무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아래는 특성화고 노조 페이스북 주소.

▶️ 특성화고 노조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2018youthunion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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